전 시 명 : 동중동․정중동(動中動․靜中動)-이예승展
전시기간 : 2016.2.12-3.3
전시장소 : 서울 갤러리 아트사이드
글 : 김세린(공예평론가)
섬유는 씨실과 날실을 교차해 만들어진다. 반복적인 교차 행위 가운데 한 부분을 두텁게 짜내거나 움직이는 패턴을 변형해면서 문양을 넣기도 한다. 문양이 없는 천에는 교차의 흔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조직이 완성된다. 이것은 섬유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흔적이자 섬유 공예의 개성이라 할 수 있다. 종이 역시 마찬가지로 흐트러져있는 조직들을 떠내고 굳히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고유의 조직이 구성된다.
이런 흔적에는 제작과정의 역동적인 행위와 물질이 구성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완성된 모습은 지극히 고요하고 안정적이지만, 그 속에는 역동적인 행위가 내재돼 있다.
설치미술가 이예승의 작품은 물질이 지닌 이런 개성에 대한 작가적 고찰이 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움직임이 있고(動中動), 조용히 있는 가운데 어떤 움직임이 있다(靜中動)’라고 말한다.
전시는 수작업을 한 섬유, 한지 등을 메인 오브제로 사용하면서 영상과 조명을 활용해 이들이 지닌 동적인 모습을 끌어내 보인다. 섬유와 한지만이 가지고 있는 고요한 모습을 프린트를 통해 문양을 전면에 드러내거나 조명을 비추는 등의 행위를 통해 그것이 가지고 있는 패턴과 문양을 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칠기나 도자 등 입체적인 공예품에 비해 비교적 정적인 공예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들의 동적인 모습을 끌어내고 있다.
이예승, <정중동>, 장지에 디지털 프린트, 2016. ⓒ 갤러리 아트사이드
이 작품은 장지에 원형의 패턴을 프린트하고 그 위에 나무에 칠을 한 정사각형의 프레임 64개를 각각 이어 붙여 커다란 프레임을 완성했다. 프린팅된 평면의 한지에 프레임을 붙이면서 경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동시에 64개의 조각, 개별적인 작품들이 완성된다. 이들은 분명 하나의 작품이면서도, 또 하나하나 개별적인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종이가 완성되었지만 오리거나 붙이거나 하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하나의 종이가 각기 다른 다수의 종이로 재탄생하는, 너무 당연해 잊고 있었던 종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예승, <동중동 1>, 철제프레임, 디밍라이트, 직조섬유, 2016 ⓒ 갤러리 아트사이드
이예승, <동중동 2>, 철제 회전구조체, 스크린, 직조섬유, 2015 ⓒ 갤러리 아트사이드
전시장의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 <동중동> 연작은 고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물질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을 더욱 전면에 부각시킨다. 직조로 완성한 레이스섬유를 프레임에 걸치고, 그 안에 조명을 넣어 벽에 비춤으로써, 섬유가 가지고 있는 문양을 벽면 전면에 투영시킨다.
조명을 품은 레이스 구조물이 멈춘 상태에서 각각의 벽에 투영된 <동중동 1>은 정지된 상태에서 레이스의 문양과 조직을 조명을 통해 확장시킨다. 나아가 <동중동 2>는 구조물 자체가 움직인다. <동중동 1>과 달리 <동중동 2>는 레이스 자체를 위에서만 고정을 시킴으로써, 구조물이 움직일 때 흩날리는 하단 직물의 모습까지 조명에 투영해 확장시킨다. 이를 통해 섬유의 면에 내포되어 있는 문양과 조직 고유의 모습은 물론, 일상에서도 볼 수 있는 섬유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더욱 부각된다.
벽에 붙어있고, 창에 걸려있고, 하루 종일 책상에서 사용하는 등 우리의 일상과 늘 함께 하는 섬유와 종이. 일상생활품은 물론 공예품에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이 물질들에 대해 항상 보이는 완성된, 정지된 모습이 어쩌면 당연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제작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완성된 문양과 패턴,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예승의 작품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간과했던 공예과 물질에 대한 본성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