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Androgyny: part2
전시장소 : 아뜰리에 아키
전시기간 : 2016. 1. 8 ~ 2016. 2. 5
포스트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혼종성, 다양성으로 대변된다. 전통적인 장르의 개념에서 벗어나 영역의 경계가 확장되면서 희미해지고, 희미한 경계 안에서의 다채로운 표현법은 작품의 정체성을 강화시킨다. 한편으로는 정체성의 표현을 위해 사용되는 다변화된 영역과 경계의 모호함으로 인해, 각 분야가 가진 고유의 개성을 파괴하게 되는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한다.
정체성의 정의법 가운데 하나였던 장르의 고유 영역을 탈피하고,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 매개체인 작품의 형태와 의장이 표현방법과 장르의 적용에 따라 기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면서, 작가노트나 해석 등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소통의 부재를 낳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관람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는 사뭇 아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공예를 비롯한 현대 미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분명 가장 영향력이 큰 담론이자 사조 가운데 하나이다.
아뜰리에 아키에서는 'Androgyny' 라는 주제로 기획전이 진행되고 있다. 아뜰리에 아키는 전시주제인 ‘Androgyny’를 남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을 합성한 단어라 정의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본은 물론, 소통의 매개체인 매체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임의성과 유연성, 다양한 의미의 추구, 나아가 자기 반영성을 보여주며, 매체를 이해하는 동시에 예술의 본질과 변화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이 전시를 기획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전시는 2부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Part 1은 2015년 12월 10일부터 2016년 1월 7일까지는 회화와 조소를 중심으로 ‘평면화된 조각’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Part 2는 공예가 강준영과 서양화가 김남표가 참여했다. 입체인 도자기와 평면인 회화를 중심으로 한가지 주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과정에 집중했다. 참여작가들은 자신의 고유 영역이 가진 경계에서 탈피해, 평면과 입체라는 틀과 표현방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본 고에서는 공예가 강준영의 작품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강준영,<Pray For You> , 2015. ⓒ 아뜰리에 아키
강준영, <The First duty of love to listen 연작>, 2015. ⓒ 아뜰리에 아키
강준영의 작품은 ‘The First duty of love to listen' 이라는 대주제 안에서, 도자작품은 물론 회화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달항아리의 형태를 모티브로 유화로 그린 'Pray for you'와 전통적인 주병을 주구에 갈유를 시유하고 동체를 분청자의 분장기법을 활용해 제작한 연작은 작가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감성을 담았다. 자신의 작품에서 기본적인 장르 정체성인 도자를 바탕으로, 입체와 평면을 동시에 활용해 이 전시의 주제인 ‘전통적인 장르의 탈피’를 시도하였다. ‘항아리와 주병’이라는 기본적인 모티브는 표현방법과 관계없이 견지하면서, 각 장르에서 고유하게 사용되는 재료인 유화안료(회화), 도토와 유약( 도자)는 그대로 살려, 경계의 탈피는 시도하면서도 각 장르가 가진 고유의 정체성과 개성은 유지하였다.
강준영, <The first duty of love is to listen 연작>, 2015. ⓒ 아뜰리에 아키
강준영, <2000일간의 이야기> 연작, 2015.(유화) ⓒ 아뜰리에 아키
강준영, <2000일간의 이야기> 연작, 2015.(유화) ⓒ 아뜰리에 아키
중심면을 백유로 시유한 집과 그 위에 백유와 금채를 활용하여 표현한 나무는 따뜻한 작가의 집을 상징한다. 그리고 중심면에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작가의 마음이 금채를 통해 글자로 표현되어 있다. 도자기로 상징화된 집의 모습은 평면화된 두 점의 회화 연작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작품의 중심에는 흑과 백, 금색으로 표현된 집과 나무가 있다. 그리고 스티지 선이나 각도의 표현을 통해 좀 더 따뜻한 섬유작품적인 느낌을 더한다. 여기에 도자작품보다 좀 더 구체화된 문자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작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의도와 정체성을 완성한다.
전통적인 장르의 탈피와 경계의 흐림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을 표현하려 했던 이번 전시에서 강준영의 작품은 이채롭다. 강준영은 무조건적인 정체성의 표현과 경계의 타파가 아닌, 각 장르가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각 장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좀 더 잘 살릴 수 있는 장르를 취사선택해 작품에 활용한다. 이러한 선택은 작품에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공예와 회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되었다.
탈경계라는 담론은 비단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 속에 존재하는 예술 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영역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장르 고유의 정체성을 잃은 채 탈경계에만 몰두하다 무의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탈경계의 흐름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한 발전과 상생의 지속은 물론,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탄탄한 기본도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전시는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