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축적된 시간, 그리고 展
전시기간 : 2016.1.4 - 2016.1.8
전시장소 : 서울 성북예술창작터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기억의 종류는 다양하다. 시간의 흐름을, 공간의 모습을, 그리고 정지된 그 찰나의 순간을. 모든 것은 시간이 전제되어 있지만 기억 속에 일깨워주는 모티브는 다양하다. 좋고 나쁨, 아픔이라는 감정을 떠나 어느 순간 추억이 되어 버린 기억의 존재는 하나의 편린으로 축적되어 자리잡는다.
추억은 그 순간에는 일상이고, 현실의 순간이지만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수단은 다양하다. 음악과 사진, 드라마 등의 매체는 물론, 지나가는 순간 보이는 공간과 사물 그 모든 것들이 찰나의 기억과 감정이 조우하게 한다.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도 이러한 맥락에서 즐거움의 감정이 더해져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신진 작가들의 지원 시설인 서울 성북창작예술터에서는 새해 첫 전시로 <축적된 시간, 그리고>라는 테마를 택했다. 사진작가 박정훈, 서예가 변희정,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서효은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기억과 추억, 축적된 시간을 풀어냈다. 각기 다른 시각적 언어로 풀어놓은 이들의 시간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듯 친근하고 평화롭다.
서효은 <빙, 빙, 빙 - 마실 1>
특히 서효은의 작품은 주목할 만했다. 그녀의 작품 <빙, 빙, 빙-Chpater 2. 마실> 연작은 낙산 주변의 여러 마을에서 보낸 유년과 청소년기의 시간을 표현한 것이다. 그녀는 동네를 마실하듯 걸으며 모은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았다. 그리고 기억의 순간에 자리했던 공간을 떠올렸다. 일상의 공간, 즉 ‘방’이다. 방에는 기억 속에 있었던 시간은 물론 다양한 기물과 그 기물과 함께했던 일상이 존재한다. 그녀는 이와 순간의 흐름을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맞춰 나갔다.
서효은 <빙, 빙, 빙 - 마실 2> ⓒ 성북예술창작터
창에는 마을의 풍경이 담겨있다. 창은 마을에서 작가의 추억이 시작되는 순간을 알린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는 문과 기억의 조각을 재배치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함께 스크린에 비춰진다. 방에는 요즘 한참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비슷한 시기의 풍경이 담겨있다. 현재의 20대 후반 -30대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는 그 방이. 벽장과 우툴두툴한 하얀 벽지, 그리고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불. 작가는 그 방에 놓인 이불에 무엇인가를 놓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가진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배열하고 있음을 알린다.
서효은 <빙, 빙, 빙 - 마실 3> ⓒ 성북예술창작터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방의 물품들은 당시의 생활을 보여준다. 지금은 보기 힘든 솜틀집에서 솜을 우겨 넣은 솜이불과 양은접이상은 기억의 상징적인 오브제가 됨과 동시에, 방의 멈춰있는 시간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위에 놓여있는 조각들은 <빙, 빙, 빙 - 마실 2>와 데자뷰 되어 작가가 동네와 방에서 떠올린 기억의 조각임을 알려준다.
작가는 그 이상으로 자신의 기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구성한 공간과 사물, 기억의 조각을 통해 관람객이 그들만의 추억을 떠올리며 작품을 즐기는 것을 유도한다. 가장 일상적인 생활공간인 방에서 흔히 사용됐던 문과 솜이불, 그리고 양은 밥상을 통해 자신의 기억은 물론 관람객의 기억까지 작품과 함께하길 바라는 것이다.
서효은 <빙, 빙, 빙 - 마실 4> ⓒ 성북예술창작터
최근 공예전은 일상 공간을 배경으로 활용해 장소성을 결합시킨 디스플레이로 공예의 쓰임과 가치를 부각시키는 방법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기성품과 수공예품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간이나 부수적 요소의 적절한 활용을 통한 전시는 이들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보여 준다. 그리고 서효은의 경우처럼 공간속의 추억을 통해 오브제에 담긴 시간과 문화의 가치까지 보여준다.
<빙, 빙, 빙 - Chpater 2. 마실>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치미술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전시이지만 명확한 스토리라인과 공간, 적재적소의 오브제 활용은 ‘기억의 공유’라는 주제를 관람객과 충분히 소통케 한다. 아울러 오브제 자체가 가진 고유의 가치도 함께 알려준다. 물론 보는 이와의 소통과 공유가 전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도 새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