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시간을 만들어내는 색, 시간의 흔적, 허명욱전
전시기간 : 2015.12.05.-12.20
전시장소 : 서울 갤러리토스트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의미와 쓰임을 담고 있는 사물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소멸한다. 소멸을 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사물이 가진 고유의 물성과 궤적은 진솔하다. 아름답게 꾸밀 수 없는 과정이기에 가지고 있던 본래의 쓰임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과정은 흔적을 남긴다. 인간의 손길이 더해지는 시간 동안은 사물의 의미가 더 명확해지거나 변형되기도 하지만 소멸 과정에서는 결국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다.
공예품은 형태와 의장이 갖춰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각각의 판재를 다듬어 재료를 만들고 그 재료를 하나로 조립을 하고 또 마지막으로 칠을 해 완성한 것이 가구라는 사물로 완성되는 것처럼 공예품 본연의 역할과 의미, 사회적 통념에 의한 의미와 가치를 받아 일상에 놓여진다. 사람들의 손길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본래의 의미가 변화하기도 하지만 소멸의 과정에서는 결국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Scale 1788>
공예를 전공한 사진작가는 이런 일상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는 공예가 공예로써 형태와 쓰임이 온전하게 갖춰지고 나서의 모습을 ‘기호화 된 사물’로 해석한다. 공예가와 디자이너가 탄생시킨 공예품의 형태와 의장을 사용하는 사용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매체’적인 성격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 모습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아 소멸하는 과정까지 추적한다. 일상의 공예품으로 살아가든, 파인아트의 오브제로 변모하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작가는 하나의 공예품이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결국 소멸이 가속화될수록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기록한다. 소멸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움과 흔적으로 보고 작가는 그것이 가진 본래의 가치에 다시 집중한다. 형태와 물성의 소멸,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갈라짐과 변색. 상처. 그래서 그의 작품은 흠집과 퇴색,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외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Scale 1747>
<Scale 1708>
전시에는 장난감과 상자가 주요 오브제로 등장한다.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를 통해 느끼는 소멸의 과정을 통한 본질은 흥미롭다. 장난감으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았을 자동차의 색이 점차 사라진다. 색에 덮여 있던 물질의 민낯은 세월과 함께 처음 만들어졌을 때처럼 서서히 돌아간다. 이 장난감을 처음 가지고 놀았을 아이도 어느 정도 컸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동차가 점점 세월의 흔이 입혀진 것처럼, 아이에게도 몸과 마음에 세월의 흔이 담겼을 것이다. 본래의 색과 꾸밈은 점차 사라지지만, 장난감 자동차였다는 본래의 모습과 용도는 남아있다. 소멸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본질’. 예술적인 면모에만 치중해 본래의 모습이 흐려졌다 하더라도, 결국 공예는 전통시대에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일상’에서의 쓰임이라는 본질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Scale 1808>
작가는 사진을 통해 ‘공예적 가치를 따르는 삶’ 안에서의 사색과 원류를 찾는데 집중한다고 말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함께했던 공예의 지난 시간이 흐려지고, 축적되었던 가치가 퇴색되고 예술의 의미에만 몰두하고 있는 요즘. 사진이라는 수단을 통해 공예의 본질에 접근하는 작가의 작업은 현대 공예의 지금 현실에 대한 생각을 반추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