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New & Classics 핀란드 디자인공예展
전시기간 : 2015.10.29.-2016.1.24
전시장소 : 서울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글 : 김세린(공예평론가)
한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공예품을 특산품으로 한 생산시스템은 전통 시대부터 존재했다.대개는 관련 재료가 풍부하고 땔감으로 쓸 나무가 많으며 아울러 교통로로 사용되는 물길이 닿아있는 곳에 이와 같은 마을은 발달했다. 그리고 이들 공동체와 마을은 생산이 늘어날수록 외부에서 유입되는 장인이 들어오면서 더욱 규모가 커졌다. 아울러 도제식의 저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해지면서 확장을 거듭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과 공동체는 전통 시대에 기간산업으로 발전한다. 이런 마을들 가운데 현재까지 공예품 제작이 활발한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의 청화백자 특산지인 강서성 경덕진과 나전칠기와 흑유 자기가 발달한 강소성 길안이 그러하다. 한국의 통영과 이천, 여주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에서는 길드제를 통해 재료를 공동으로 채취, 구입하고 함께 사용하면서 점차 공동체 단위로 공예품을 제작한다. 길드라는 명칭만 없을 뿐 한국이나 중국의 마을, 공동체도 생산 양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료이다. 현재 공예분야를 나누는 기준 가운데 하나인 재료 단위 역시 이와 같은 전통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과거 경덕진이나 이천, 여주처럼 국가에서 요구하는 제작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창작자의 주체적 의지에 바탕을 둔 장인들은 끊임없이 기술과 기형의 개량을 이뤄냈고 또 그 속에서 조화로운 변형도 이뤄냈다. 오늘날 경기도자비엔날레와 같은 전시만 보더라도 전통을 계승한 현대 작품은 전통시대의 조형과 기형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전통 기형과 현대의 모던한 풍모는 물론 공간과 작가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설치예술까지 등장한다.
Anneli Sainio, <MAKU Cup>, 2004.
Ari Turnnen, <Egg shell>, 2012.
‘New & Classics: 핀란드 디자인 공예전’은 중세부터 길드제 도자공예를 이어왔고 현재도 예술가 마을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피스카스 마을의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도제식으로 직업을 이어나간 작가에서 이 마을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협업하는 디자이너,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있다. 이 전시는 비단 핀란드 뿐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도 산재하는 과거 ‘마을’ ‘공동체’ ‘지역’ 단위의 작업과 이를 계승해 현재를 더한 모습을 단편적으로 읽을 수 있다.
전시된 작품의 맥락은 현재 남아있는 전통적인 마을의 성격과 동일하다. 현대적인 요소를 담은 디자인적 실용품에서 사유적 요소로 꽉 짜여있는 설치 작품까지.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피스카스 마을의 특산인 양질의 흙, 즉 재료가 가지고 있는 질감이자 전통적인 마을의 개성을 보여준다. 작품에는 다양한 질감, 색채 그리고 이들을 변화를 가능케 하는 ‘불’의 조절 즉 소성의 변주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다양한 면모의 작품들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마을의 개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Antti Siltavuori & Barabro Kulvik, <Light Bowl>, 2013.
Camilla Moberg, DoReMi, <Light Sculpture>, 2014.
이러한 ‘마을의 개성’은 과거부터 한 공간이 보지(保持)해온 기술력과 창작전통을 유지,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지역사회와 전통공예의 연계’ 노선도 크게 보면 이와 맥을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경덕진이나 영국의 체셔(왕실전용 도자기를 생산하는 민트(Minton)社의 본거지) 등 역시 계승되어온 기술이 현대 작가들과 연계돼 성공적으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지역들의 좋은 본보기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피스카스 마을의 활동 또한 공동체와 공예 전통의 문제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