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기간 : 2015.9.16.-2015.10.25
전시장소 : 청주 옛 연초제조장
글 : 김세린(미술평론가)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청화백자는 전통 시대의 유물로 조선 중후기 공예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기법으로 제작되고 또 비슷한 맥락의 문화적 함의를 지닌 현대 도자는 전통을 계승한 전통 공예의 범주 안에 별 이견 없이 집어들인다. 우리 문화에는 전통이 분명 존재하며 공예 역시 전통을 품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조선시대 청화백자는 과연 당대에도 전통 문화, 전통 공예로 여겨졌을까?
조선시대 청화백자는 15세기 세종시대만 해도 백토인 카오링과 코발트 안료를 사용해 제작한 신소재와 신기술이 결합된 최신 기물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조선의 백자로 우리의 전통공예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전통이라 불리는 공예 대부분은 애초에는 ‘전통’에 속하지 않았다. 생활과 문화 속에서 전해지고 발전하고 자리를 잡으며 확산되어온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유행이 되기도 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의 기획전 ‘확장과 공존; 잇고 또 더하라’는 이런 공예의 속성을 반추해보며 과연 현대의 공예까지 전통과 함께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기획이라 볼 수 있다.
전시는 제작 과정을 형상화하는 구체적 물체인 ‘도구’의 정체성에서 시작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공예 전시인 ‘유산’, 전통에 현대의 경향을 반영해 공예의 외형적, 문화적 확산을 보여주려 한 ‘확장’ 그리고 설치, 물성과 질감, 작가주의, 표현주의로 대변되는 현대공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공존’ 등 모두 총 4개의 소테마전으로 구성돼 있다. 기획의 뜻을 살려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개별 전시를 통해 확산 과정을 효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중복되거나 반복되지 않는 동선을 고려했다.
유산과 확장: 공예의 현재에 대한 전제와 개진의 여지
‘유산’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전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기획자가 염두에 둔 한국공예의 현재이기도 하다. 전통 공예의 위기론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형태와 쓰임이 분명히 드러나 일반에게 가장 공예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 아직까지는 전통 공예이다. 현대공예에 대한 인식도 다소 넓어졌다고 하지만 작가주의가 강한 작품들은 여전히 공예인지 설치인지 이견이 갈린다.
전시는 전통기법을 사용하는 현대작가들의 작품과 근현대 컬렉션으로 구성돼있다. 고려 청자, 조선의 분청사기, 입사공예는 이 전시에 없다. ‘유산’ 이지만 유산은 1900년대 이후의 공예로 한정되어 있다. 한국나전칠기 박물관의 나전칠기도 서대식 컬렉션의 도자기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서대식 컬렉션 <백자 술통(대전)> 1920년 전후 높이 25cm
서대식 컬렉션 <새우문 면기> 1950~60년대 구경 23cm
서대식 컬렉션에는 1930년대 이후 음식점에서 많이 사용했던 ‘새우문 면기’와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에 형태가 정형화 된 대형 술병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전통유산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는 공예품 가운데 가장 ‘최신’의 유산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옛’ 물건으로 취급받았으나, 어느새 ‘전통 유산’으로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있는 근대 공예인 것이다. 이는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의 출품작과 재단법인 예올의 전통 신발도 마찬가지이다. 근대기에 생활 속에 사용되던 물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유산이 돼 근대 공예로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가브리엘라 리겐자 <새털구름> 3D프린팅 나일론 2014
제주 갓 전시관 <갓–백립> 대나무.
하지훈 <호족 선반> 알루미늄 2014. <문 램프> 티크 2013.
이은실 <발... 쪽빛에 물들다> 일부 148x203cm 향라 옥사에 쪽염색 2015.
현대 공예로의 확장은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전통 공예의 기법으로 제작된 모던한 혹은 전통시대의 형태를 가진 작품과 3D 프린트 기술로 제작된 비슷한 모티브의 작품을 동시에 전시함으로써 그들이 공존할 때 어색한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어떻게 보면 3D 프린트로 제작된 작품이나 전통 공예기법으로 제작한 모던한 작품 모두 훗날에는 새로운 전통 속으로 구분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 100년 정도 지나 문화재로서의 등록기준까지 충족하게 되면 그렇게 되기도 할 것이다.
현재 전통과 현대공예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자연스러운 확장을 통해 하나의 트렌드이자 공예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의견을 ‘유산’과 ‘확산’이라는 두 테마를 통해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존: 작가주의 공예와 일상공예와의 공존 가능성
현대 공예의 가장 큰 화두인 ‘작가주의’는 비엔날레를 포함한 여러 전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테마이다. 2015 청주공예비엔날레도 이와 관련된 테마를 다뤘다. 작가주의 공예는 분명 현대 공예에 있어 한 축임은 분명하다. 작가주의는 사유(思惟)와 그를 드러내기 위한 미적 형태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예가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구성요소인 ‘기능’이나 ‘기능을 위한 형태’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다.
토마스 청, <귀환 – 림보랜드>, 가변설치, 혼합매체, 2013. <하우스>, 혼합매체, 2013.
유의정, <골드 문>,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 2015.
현대 이전에서도 이러한 공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완상과 수집을 위해 유행한 청대 고동기가 그런 역할이었고, 완상을 위해 제작된 청화백자에도 일정부분 그런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청대 고동기는 더불어서 실내에 향을 피우는 기본적인 역할을 해냈고 청화백자 역시 화병이나 기타 역할을 일정부분 가지고 있었다.
현대 작가주의 공예는 이러한 역할이 거의 없고 작가의 사유가 강조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를 공예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작가주의 공예 역시 현대 공예문화의 한 부분이고 현상이기 때문이다. 전시 역시 이러한 면을 위주로 작가주의 공예의 공존을 강조한다. 그리고 공예품에 사용되는 재료와 물성이 가진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해 공예가 가진 예술적 요소를 극대화한 것 역시 ‘공존’이 필요한 공예 분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짚어낸 흐름대로 현재의 공예도 언젠가는 근대 공예처럼 전통의 영역에 포함이 될 것이다. 지금의 문화가 스며든 공예품들은 전통의 ‘유산’으로 현재의 전통공예처럼 또 이어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현재의 공예가 훗날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끊임없는 의견의 개진과 방향 모색은 긍정적인 전통을 이뤄내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전통과 현대공예의 공존과 방향을 나름의 논리에 근거해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논의이자 전시였다. 또한 ‘알랭 드 보통’전을 비롯한 다양한 현재의 트랜드와 문화를 반영한 작품과 전시가 이뤄져 전시 자체도, 방향의 모색도 풍성했다.
다만, 전시방법상의 문제 때문인지 ‘확장과 공존; 잇고 또 더하라’라는 주제 자체에 의문을 더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사전 정보가 없는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그만큼 전시는 친절하지 않다. 전시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의의와 방향, 작품은 가치 있고 흥미롭다. 하지만 패널이나 캡션으로 충분한 설명이 없이 전통 공예와 컬렉션, 설치 공예가 혼재되어있으며 설명문조차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정보들은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전시만을 보러 왔을 때 당황스럽고 전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누구를 위한 비엔날레인가를 생각해볼만하다. 전시 기획을 관람객에서 강요하기보다 앞서 관람객에게 친절한 설명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