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청주공예비엔날레 리뷰 1
전시기간 : 2015.9.16.-2015.10.25
전시장소 : 청주 옛 연초제조장
글 : 김세린(미술평론가)
공예 제작에는 도구가 필요하다. 나무로 된 것을 장식할 때는 조각도가, 도자기의 기형을 만들 때는 물레가 필요하다. 조각도나 물레에는 나무와 철과 같은 재료가 사용된다. 도구는 쓰임을 전제로 가공되면서 형태와 기능이 부여된다. 기능이 부여된 도구는 제작에 쓰이면서 재료가 가진 본래의 모습을 환골탈태시킨다. 공예의 본래 목적, 현대 공예의 본질에 대한 화두는 말할 것도 없이 ‘기능, 쓰임, 용도’이다.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전 ‘잇고 또 더하라’ 전은 작업도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제작에 사용되는 도구. 기능이 부여된 기물을 공예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제작도구는 다분히 공예의 범주에 속한다. 현대 공예는 기계에 의해 생산되는 대량생산품을 배제하면서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수공예품만을 공예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양상이다. 그리고 기능과 꾸밈의 반영에 뒤따르는 디자인을 동반 영역으로 삼는다. 전통시대의 의궤에 수록된 공예품의 도설(圖說)과 유사한 관계이다. 도구의 제작에는 디자인이 함께 한다. 기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정교한 설계와 아름다움을 위한 외형의 꾸밈. 도구 역시 디자인까지 포함되는 공예품의 모든 제작 공정과 동일하게 진행된다. 이는 현대와 전통 시대가 동일하다.
김준용의 도구, 유리
하지만 이런 제작 도구의 범주에 대해 논의는 생각보다 거의 없는 편이다. 민속학에서는 1990년대부터 공예에 사용된 도구를 민속품으로, 나아가 형태와 장식에 따라 예술 미감이 적용된 공예의 범주까지 보려는 시각이 더해졌다. 따라서 현재는 일반적인 공예품으로 인정하는 편이다.(그렇기는 해도 공예사에서 도구 자체를 단독 주제로 한 연구는 많지 않다) 이러한 학계의 흐름과는 달리 제작 도구에 대한 공예로의 인지는 일반적으로는 아직 어색한 쪽이다.
장식과 기능 그리고 형태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어 태초의 공예품으로 여겨지는 빗살무늬토기의 공예적 의미와 범주를 반추해보면, 제작 도구 역시 얼마든지 공예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제작 수단으로만 여겨져 온 제작 도구를 공예의 ‘시작’으로 보고 본격적으로 포함시킨 이번 시도는 당연히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전시는 ‘도구: 예-술 그리고 노동’ 이라는 소제목으로 기획전 참여작가인 박순관(도자), 김준용(유리), 박홍구(나무), 조효은(제본) 등 4명의 도구를 배치했다. 형태와 장식 외에 작가들이 제작에 사용하는 기능과 이와 같은 도구를 통해 탄생되는 공예품을 ‘예술 그리고 노동’이라는 제목으로 함축했다. (다른 테마전에는 이들 작가들의 전시가 소개되고 있다)
박순관의 도구, 도자
전시된 도구들은 일반적으로 가마와 같이 도자 제작에 연상되는 도구와는 별개이다. 그보다는 성형을 할 때 면을 다듬는 각종 헤라와 집게, 칼과 같은 세부 도구들이 주를 이룬다. 제본 공예를 하는 조효은의 도구 역시 쌓아놓은 종이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실 틀과 각종 접착제, 명주실 등 이다.
조효은의 도구: 제본
이와 같은 도구에 대한 전시는 단순히 제작에 쓰이는 도구를 보여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관람객에게 공예제작에 쓰이는 도구를 소개함으로서 도구를 통해 공예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설명해주는 기능을 내포한다. 박순관의 도구를 보면서 작가가 도자기의 형태와 장식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조효은의 도구를 통해 하나의 책이 묶여지고 아름다운 책 외형이 갖춰지는 풍경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장소에 도구가 작품과 동일하게 놓임으로서 작업도구가 단순한 도구인지 아니면 공예 영역까지 진출할 수 있는 지를 보는 사람들의 자문자답을 유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박홍구의 도구: 나무
공예의 영역과 범주를 어디까지로 설정해야하는지는 시대에 따른 공예의 양상, 제작 수단과 방법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가로놓여 있어 명쾌하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용도와 형태, 제작과 같이 근본적인 요소들만을 놓고 보아도 그러하다. 그리고 도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시는 도구를 전시 주제로 배치해 이들이 단순한 수단이나 방법적 역할에 그치는 아니면 그 자체로서 공예의 영역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서 현대 공예에서 오랫동안 논의가 되고 있는 작품으로의 기능과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한 물음을 다시금 묻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실제 기능을 간과하고 예술적 역할에만 치중했던 현대 공예에 대한 일침도 포함돼 있다.
단, 도구와 작품을 동일한 공간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 배치한 점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묻게 하는 밀도를 낮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