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2015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전시기간 : 2015.4.24~2015.5.31
전시장소 : 이천 세라피아
글 : 김세린(미술평론가)
표현과 소통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 중 하나이다. 언어는 그 수단이지만 언어의 형태는 다양하다. 글자부터 조형까지. 작품은 작가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조형 언어이다. 매끄러운 표면과 정형화된 형태, 명확한 쓰임새가 그간의 관습적인 도자 언어였다면 현대도자 는 과감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간다. 그 언어 속에는 직설과 은유가 공존하며 실용과 사유의 경계는 명확하면서도 무뎌졌다.
전시장 입구
올해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는 세계 74개국 1,470명의 작가들이 응모해 이 가운데 97점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수상작은 실용에서 시작해 환경, 설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다. 종교, 인종, 예술 등의 담론에서부터 현대의 물질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 전통 문화의 계승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도자라는 조형 언어로 표현돼있다.
니일 브라운워드 <국보(National Treasure)> 2013년
1870년대 스톡 온 트렌트마을의 전경
이번 공모전 대상은 영국작가 니일 브라운워드(Neil Brownsword)의 <국보>가 차지했다. 작가는 사실적으로 표현한 장인의 작업장과 작품을 제작하는 영상을 통해 도제식으로 전수가 이루어졌던 과거를 회상한다. 회상은 영국의 체셔주에 위치한 스톡 온 트렌트(Stoke-on-Trent)마을에서 시작한다. 스톡 온 트렌트는 영국 왕실에 식기를 납품했던 민튼(Minton)사를 비롯한 유수의 도자기 공방들이 위치했던 마을이다. 산업혁명 이후에도 전통방식의 수공업과 도제식 생산을 지속했던 지역이며 빅토리아여왕에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본차이나’를 제작하는 곳으로 극찬받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이곳을 방문했던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이 ‘곳곳에 있는 도요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라고 할 정도로 도자 산업이 왕성했다. 하지만 이후 기성품이 수공예를 대체하고 첨단기술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했다. 작가는 이를 현재 영국에서 실종되고 있는 장인 정신을 되새기며 이를 추모한 것이다. 아울러 무형문화재 기술과 문화가치에 대한 환기와, 전통의 지속가능성을 타진한다.
실방 띠루앙 <오차 범위(Margin of Error)> 2013년
입선을 한 프랑스작가 실방 띠루앙(Sylvain Thirouin) 역시 소멸중인 전통 기술과 장인의 현실에 대해 논한다. 관심에서 멀어지는 현실을 지켜보면서도 작업을 계속하는 장인의 모습을 가마와 소성을 위해 쌓아 놓은 그릇 구조를 통해 보여준다. 이들이 말하려는 ‘전통’의 현실은 한국의 전통공예가 처한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뮤얼 청, <구름 병 A(Cloud Bottle A) 2014년
니일 브라운워드와 실방 띠루앙이 전통공예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말하고자 했다면 입선작의 한국계 미국작가 새뮤얼 청(Samuel Chung)은 전통에 담긴 또 다른 본질을 은유적인 화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뮤얼 청은 현대적 조형에 조선시대 분청 병의 형태와 운문(雲紋)을 응용한 <구름 병 A>를 통해 자신 내부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담았다. 그리고 그 안에 ‘전통’을 자신의 근원에 대한 흥미와 이를 식별하고 확인하기 위한 모티브로 사용했다.
전시작품 중 다수는 소성과 시유를 최소화해 보여줌은 물론 물질과 물질의 결합, 형태의 해체와 파편화 과정을 통한 소멸과 창조,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유형의 조형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앤드류 버튼 <무너지는 것들(Things-Fall Apart)> 2014년
금상작가인 영국의 앤드류 버튼(Andrew Burton)의 <무너지는 것들>은 건축의 기본 단위인 벽돌을 사용한 작품이다. 벽돌이란 기본 단위 자체에 담긴 아름다움과 그들의 결합을 통해 창조되는 새로운 사물의 생성 과정과 그리고 어지럽게 흐트러져있는 파편을 통해 해체 과정을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브래드 테일러 <압축돼 둥글게 말린 입방체 덩어리(Mass, Compressed Rolled, and Cubed) 2014년
은상을 차지한 미국작가 브래드 테일러(Brad Taylor)의 작품은 보다 과감하다. 도자의 기본재료인 점토가 지닌 질감을 그대로 작품화해 재료 자체에 대한 탐구와 영속성을 표현했다. 점토를 있는 그대로 말아 둥글게 압축시킨 작품에는 재료 본연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으며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가 생생히 드러나 있다.
예심 베이락, <저녁 초대(Dinner invitation)> 2014년, 이우영 <설거지 거리(Dishes)>2014년
한편 일상의 기물을 재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작품도 있다. 터키작가 예심 베이락(Yesim Bayrak)의 <저녁 초대>와 한국작가 이우영의 <설거지거리>는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식기가 소재이다. 작품화된 식기들은 구성 과정을 거쳐 하나의 조형언어로 변신했다. 결혼한 여성 작가로서 가정에서의 역할과 작가라는 사회에서의 역할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고(예심 베이락), 귀찮다는 이유로 쌓아둔 설거지거리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이우영).
구조와 형상, 평면과 입체, 미디어아트까지 고루 활용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은 초대전과 마찬가지로 그간의 관습적인 도자의 역할을 넘어서, 다방면으로 확장되고 있는 도자 예술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상 수상작을 비롯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는 확장되는 도자예술 안에서 소멸될까 우려되는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한다. 이 고민들은 단순히 쓰임과 형태, 전승, 정신 등 전통에 대한 전형적인 화두를 넘어, 거대한 물질들과 사조가 넘실대는 현재와 과거의 문화가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현장의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