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조선의 나전, 오색찬란전
전시기간 : 2015.3.14.-6.30
전시장소 : 서울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글 : 김세린(미술평론가)
그들은 시간을 기억한다. 자개를 정교하게 마름질해 양감과 날렵함을 부여한 꽃과 동으로 만든 꽃을 감싼 유려한 넝쿨의 선을. 그리고 고려의 나전문화를. 시간은 흘러, 칠면에 다시 부착된 꽃은 형태가 변했고, 꽃잎에는 자연스럽게 갈라진 선이 더해졌다. 하지만 동으로 된 곡선의 넝쿨은 여전히 꽃을 감싸고 있고, 꽃과 넝쿨이 지닌 조화와 배치는 그대로이다.
고려시대 화당초문(花唐草紋) 표현 / 조선시대 화당초문 표현
조선시대 나전칠기(螺鈿漆器)는 문양의 면을 중심으로 곡선을 표현하는 기법과 문양소재, 배치 등 고려의 공예문화를 계승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여기에 확장된 문양소재와 더해진 기법, 다양한 기종의 구조에 따른 다채로운 문양의 배치는 조선시대 나전이 가진 또 다른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전시장의 입구와 전시실 내부
‘조선의 나전_오색찬란(五色燦爛)’전은 그간 열렸던 나전공예전 가운데 대규모에 속한다. 조선시대에서 근대기 나전칠기와 동시대에 함께 유행했던 화각, 대모, 어피기 등 총 87점의 유물이 2층과 3층 두 전시공간에 소개됐다.
나전매죽조문상자(螺鈿梅竹鳥紋箱子), 17~18세기, 호림박물관
나전산수문함(螺鈿山水紋函), 19세기. 호림박물관
2층 <木_나전을 입히다>는 조선의 나전칠기만으로 전시를 꾸렸다. 고려에서 내려온 기법의 전통인 줄음질과 금속선을 사용해 문양이면서도 문양과 공간의 요소요소를 연결하는 넝쿨문의 표현. 자개를 얇게 가공해 날렵한 선을 만들어 타닥타닥 기물 면에 촘촘하게 붙인 끊음질과, 자개의 휘어진 원 상태에서 가공을 더하지 않고 문양을 오려낸 후 망치로 면을 때려 문양에 자연스러운 갈라짐을 흡수시킨 타찰법을 비롯한 확장된 조선의 나전기법. 화당초문, 원문과 같은 기존의 소재에 화조문(花鳥紋), 산수문(山水紋), 어해문(漁海紋) 등 더욱 다채로워진 문양의 소재. 나무와 칠, 금속, 일부 나전칠기에서 등장하는 어피(魚皮) 등 다양한 재료의 활용 등 전시는 조선의 나전칠기가 지닌 개성과 테크닉 그리고 예술적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나전화조문연상(螺鈿花鳥紋硯床)>, 19세기, 호림박물관(왼쪽)
<나전화문팔각필통(螺鈿花紋八角筆筒), 19세기, 호림박물관(오른쪽)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한 고려의 문헌기록에는 붓을 담는 통(螺鈿筆匣), 함(螺鈿小函), 책상(螺鈿書案) 등 나전칠기의 여러 기능이 확인된다. 기록의 대부분은 왕실이나 귀족, 또는 중국에 보낸 물품 목록 등 상류층의 사용에 집중되어 있다. 조선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사용자의 층이 부를 지닌 상인층까지 확장되면서, 기물의 종류와 문양이 적극적으로 확대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18세기~20세기 초 다양한 형태와 기종의 유물들은 이러한 조선 후기~근대기 나전칠기의 전개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고려의 문화 즉,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반영된 조선 나전공예의 정체성 구축 과정을 따라간 것이기도 하다.
<나전귀갑문안경집 및 안경(螺鈿龜甲文眼鏡匣 및 眼鏡>), 19세기 말~20세기 초, 호림박물관(왼쪽)
<나전화문찬합(螺鈿花紋饌盒)>, 19세기 말~20세기 초, 개인소장(오른쪽)
전시에서는 이와 같은 조선의 정체성과 예술이 급진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완성되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고려의 공예문화가 스며들고, 그 위에 조선의 문화가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구축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전시 공간 안에서 조선과 고려가 공존하는 형태와 기법을 담은 유물들이 함께 전시되어 드는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만의 기법과 문양이 강하게 반영된 유물이라 할지라도, 공간의 문양 구성에 있어 전체적으로 여백 없이 직선의 문양을 강조해 한 공간을 구성하고, 동시에 다른 공간에서는 과거의 곡선과 면의 개성을 살리고 있어, 과거와 현재의 자연스러운 공존, 조선 나전공예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나전 아자문 붓(螺鈿亞字紋筆)>(20세기), 개인소장
<화각 화조용문 붓(畫角花鳥龍紋筆)>(19세기말~20세기초), 호림박물관
3층 <木_색을 더하다>에서는 조선 후기 나전칠기와 함께 화각과 어피장식의 목칠기(木漆器)를 함께 전시해 목칠기의 다양한 기법이 담고 있는 장식효과를 나전과 함께 비교하여 보여준다. 전시실 측면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나전아자문붓(螺鈿亞字紋筆)>(20세기)과 <화각화조용문붓(畫角花鳥龍紋筆)>(19세기말~20세기초)은 비슷한 시기 같은 형태의 유물에서 보이는 각기 다른 기법의 장식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의 뿔 표면을 가공하고, 그 위에 회화적인 느낌이 나는 문양을 안료로 그려넣는 화각과, 검은색 칠 위에 亞문만 반복적으로 부착해 장식한 나전. 전시는 같은 용도의 기물이라 할 지라도 표면의 장식이 주는 시각적인 효과와, 당시 사용자들의 다양한 취향, 그리고 그에 따른 기법의 활용을 유물의 배치를 통해 동시에 부각시켰다.
<어피 모란당초문 상자(魚皮牡丹唐草紋箱子)>와 세부, 19세기 말~20세기 초.
한편, 상어의 가죽을 말려 무두질을 해 가공하고, 기물의 백골면에 죽처럼 찐득찐득하게 만든 칠을 바른 후 가공한 가죽을 부착한 뒤, 그 위에 칠을 더해 기물을 장식하는 어피기도 이 전시에서 주목할 만하다. 어피기는 가죽에 칠을 한다 하여 칠피(漆皮), 가죽을 기물에 씌운다하여 과피(裹皮)라고도 한다. 두 명칭 모두 어피기의 특징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전시에서는 나전기법과 병용되거나, 나전칠기와 비슷한 문양소재를 표현한 어피기를 전시해 어피기법 본래의 효과와 나전과 결합했을 때의 효과를 동시에 보여준다.
<나전 국화모란매화문 상자(螺鈿菊花牡丹梅花紋箱子)>와 어피부분 세부, 17세기~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의 나전칠기는 분명 조선의 예술문화와 기술로만 구축되었다고 정의내릴 수는 없다. 그들의 제작 제도와 정체성, 초기 경향은 고려에서 출발하였고, 그들 역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한 문헌들에서 고려의 기억이 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고려의 기억에만 머물지 않았다. 시간을 기억하고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들의 정체성을 담아나갔다. 이 전시에 나온 나전칠기들은, 과거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 현대의 문화와는 다른, 기억을 바탕으로 또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고 개성을 드러냈던 조선의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반추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