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전시기간: 상설
글 : 김세린(미술평론가)
금속공예품은 재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과 물성을 바탕으로 용도와 그에 따른 구조와 장식이 결정되고 장인의 손길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흔히 ‘낡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용하는 이의 손길이 더해지고, 광택이 무뎌지면서 물질이 삭아지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금속 본연의 물성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이 발산된다. 지난 1월 6일부터 재정비해 다시 선보인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은 전시구성의 개편을 통해 이러한 금속공예의 특성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의 내부전경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오른편에 삼국시대 금실과 조선시대의 금괴와 금박 등의 재료와, 금령총 출토 <금관>, <허리띠> 등과 같이 완성된 유물 등 각기 다른 재료의 활용과 효과를 유물을 통해 보여준다. 전시실의 중앙 일부와 그 외의 전시공간에는 공예품의 용도에 맞춰 전시 주제를 구분했다. 더불어 전시실의 중앙 후면에는 고려~조선시대 대표적인 금속공예의 장식기법 가운데 하나인 입사(入絲)를 주제로 전시를 구성했다.
쓰임, 사용자의 흔적과 미감
불교 공예품과 일상 공예품으로 나눈 전시의 구성은 공예의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과 금속공예가 가지고 있는 물성의 매력을 동시에 드러낸다. 공예는 예술이자 동시에 사용과 봉헌 등의 용도 그리고 목적을 전제한다. 삼한시대 성스러운 공간인 소도에 꽂혀졌던 새 조각도 상징적인 조형물이자 소도임을 알려주는 목적을 가진 용도가 있는 공예품이었다.
공예는 먼 옛날부터 사유에 따른 장식과 사람의 필요에 의한 사용과 목적이 함께 작용하며 구축되었다. 금속공예 역시 마찬가지이다. 색과 광택을 담고 있는 금속의 특성과 어려운 채굴과정, 많지 않은 재료의 양은 사용자의 폭을 한정시켰고, 이를 증폭시키는 속도도 더딘 편이었다. 하지만 공예가 가진 기본적인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되어 이어졌다. 이 전시에서는 이와 같은 공예의 정체성을 용도로 묶은 전시의 소주제를 통해 설명한다.
불교공예품 전시 일부(왼쪽). <청동 걸이형향로> 고려 12~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오른쪽)
전시실 중앙 첫 번째 공간에는 불교공예품들이 모여 있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사리구와 다양한 형태의 향로들, 향을 담는 향합, 정병, 종, 금속으로 제작된 탑 등 금속으로 제작된 다양한 공예품들이 전시되었다. 향유하던 이들이 살던 당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과 율법, 발원의 흔적은 조형과 장식, 명문이라는 상징을 통해 표출된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무언가를 담을 수 있게 한 향합의 구조, 사리를 담을 수 있는 사리병의 공간, 벽에 걸 수 있게 고리를 제작한 현향로의 형태 등은 사용자의 목적과 쓰임의 흔적을 보여준다.
일상공예품 전시 일부
전시실의 왼편에 위치한 일상공예품의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에 사용된 꽃이 활짝 핀 형태의 접시들과 제비의 꼬리모양을 가지고 있는 수저, 완은 많은 장식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균형 잡힌 조형과 실용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은제 도금 화형잔> 고려 12~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전 ‘복녕궁방’ 금제접시> 고려 12세기 리움
한편, 이번 전시에 소개된 고려시대 <은제 도금 화형잔>(12~13세기)는 국화와 연꽃을 새기고 구연을 도금한 잔의 장식과 형태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유사한 형태와 장식을 가진 접시인 리움소장 <전 ‘복녕궁방’ 금제 접시>(12세기)와 비교해보면 사용자 계층을 짐작할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리움소장 접시는 ‘복녕궁방고(福寧宮房庫)’라는 명문을 통해, 고려 숙종의 넷째 딸인 복녕 궁주(1096~1133)의 거처에서 사용한 접시로 추정되고 있다. 이 잔 역시 최(崔)라는 명문과 재료, 잔의 형태와 장식으로 당시 상류층의 기물임을 짐작하게 한다.
물성과 시간이 올린 색채 그리고 대비의 조화
쓰임을 보여준 전시공간에는 은과 동으로 제작된 공예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금속이 가진 물성과 시간이 만나 빚어낸 금속공예의 개성을 보여준다. 제작된 당시의 모습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손길에 의한 색채의 퇴색. 광택이 선명하던 금속의 표면은 시간이 지나고 손이 타면서 빛은 무뎌지고 녹이 쌓인다.
동의 표면에 입혀진 금은 하나 둘 사라지면서 다시 본래의 낯이 드러난다. 금속은 여기에서부터 자연스러운 발색을 시작한다. 본래의 빛과 퇴색된 색, 녹이 어우러져도 어색하지 않다. 광택이 소멸되어도 그 안에 그간에 쌓인 두터운 손길의 흔적은 은은한 질감을 자아낸다. 이는 쓰임이나 장식, 조형과는 관계없는 재료의 물성이 드러낸 개성이다. 입사공예품들은 색채의 대비로 이러한 개성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입사공예품 전시 일부
전시실의 중앙 두 번째 공간에는 가야의 환두대도(環頭大刀) 자루와 통일신라시대 <금동 은입사 병>을 시작으로 입사(入絲)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소 어두운 갈색에 가까운 적동과 시간이 지날수록 짙은 녹색이 퍼지는 청동,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검은 빛에 가까워지는 철. 어두운 색을 품고 있는 재료에 홈을 파고 밝은 색의 금과 은이 들어가 문양을 표현했다. 그리고 기물의 면과 높이를 맞춰 기물에 자연스럽게 흡수시켰다.
이러한 과정의 수고스러움 덕택인지 정말 이들은 하나인 것처럼, 금박을 붙인 것처럼 자연스러우며 각각 가진 본연의 색이 드러나 대비가 선명하다. 여기에 시간의 흐름과 사용자의 손길이 더해져 퇴색이 빚어낸 두터운 질감과 색의 변화가 문양과 기물에 함께 자연스럽게 입혀져 있다.
이번에 전시된 고려시대 <청동은입사정병>, <함평궁주방명향완>, <철제 은입사 촛대>(조선후기), 조선시대 문방구류와 담배합, 화로와 무구 등은 입사공예품의 다양한 형태와 용도를 알려준다. 얇은 선을 바탕으로 포류수금문과 같이 회화적 표현을 즐겨 사용했던 고려의 문양표현과 굵고 선을 이용해 선명한 기하학적이고 단순화된 문양을 기물 면에 가득 시문한 조선의 양상을 비교해서 보면 매우 흥미롭다. 더불어 시대가 지날수록 장식에 사용된 선의 굵기가 두꺼워지고 구획선과 세부문양의 표현이 선명해지는 기법의 흐름도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단단한 물성을 바탕으로 한 금속공예의 형태는 변형이 많지 않다. 전시에 나온 공예품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깨지고 찢긴 흔적은 있지만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본래의 색은 점차 옅어졌지만 켜켜이 쌓인 선명한 시간의 색이 본래의 색과 어우러진다. 형태는 제작 당시의 모습을, 변화된 색은 시간의 흐름과 쓰임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리고 만들어지고 사용된 당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