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 특별전-파리, 일상의 유혹
전시기간 : 2014.12.13 ~2015. 3. 29
전시장소 :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글 : 김세린(미술평론가)
미술이 공간과 생활의 실용적인 도구이자 향유를 위한 예술품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던 때가 있었다. 20세기 이전, 특히 그 모습이 상당수 알려져 있는 17~19세기의 미술은 그 면모를 유감없이 뽐낸다. 당시 미술은 향유하고 과시하는 예술품이자 동시에 생활용품이었다. 사용하는 물건이지만 최대한 아름답게 꾸몄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사랑방, 청나라 황실의 서재, 유럽 귀족의 살롱 등 유럽과 동아시아 상류층의 일상공간에서 나타나는 경향이었다. 시대에 따라 향유층이 바뀌고 개성도 변화하지만 이러한 미술의 소비는 회화, 공예, 조각 등 전 영역에 걸쳐 두드러졌다.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의 특별전 <파리, 일상의 유혹>에서는 이 가운데 18세기 프랑스 상류층의 공간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는 그들이 향유한 공간의 ‘꾸밈’과 사용된 ‘물건’을 당시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 살롱, 침실, 화장실, 컬렉션룸 등의 공간에는 벽의 구획에 맞춰 전면에 로코코풍의 유화와 시계, 정교하게 짜인 태피스트리가 배치되었다. 그리고 가구와 각종 물건들이 각각의 용도에 따라 공간에 놓여있다. 이 공간의 모든 것을 하나로 보면 분명 그들의 일상생활공간이다. 하지만 공간에 배치된 물건들과 벽에 붙은 유화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것들은 우리가 책에서 본 로코코시대 프랑스의 미술품들이다.
일상공간. 18세기 파리 귀족의 거실과 놀이방
18세기 파리와 베르사유의 상류층들이 향유한 공간. 그들의 일상생활 공간에는 오늘날 예술 작품의 반열에 올라선 미술품들이 스며있다.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에서는 이를 ‘일상예술’이라 소개한다. 전시된 공간에는 당시 상류층의 생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일상예술’의 산물이 그대로 드러난다. 로로코풍의 회화작품과 정교한 공예품들이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일상공간 치고 화려하다는 느낌은 받지만 미술품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생활용품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공간에 배치된 식기와 전시장에 진열된 식기
파리는 당시 유행의 중심지였다. 심지어 1850년대 초창기 만국박람회에서는 한동안 영국과 독일 등의 출품작 가운데 프랑스 공예품을 모방한 작품들이 상당할 정도로 오랜 시간 프랑스풍 공예품에 대한 열기는 대단했다. 17~18세기 부르봉 왕조부터 명성이 구축된 고블랭 태피스트리, 세브르 도자기, 파리의 금속공예에 대한 전 유럽적 선호와 모방이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것이다. 컬렉션, 미술관, 만국박람회 등의 전시에서 이 공예품들은 아름다운 예술품이었다. 그러나 생활의 공간에서 이들은 일상생활용품이었다.
회화 역시 다르지 않았다. 회화는 파리의 공방에서 제작된 벽시계, 고블랭 태피스트리와 함께 벽의 민낯을 가리고 공간을 꾸미는 역할을 담당했다. 전시는 당시 이러한 미술의 역할을 두 가지 전시방법을 사용해 알려준다. 전시장 중심에는 회화와 공예품을 당시 사용한 모습 그대로 배치한 일상공간들을 전시했다. 공간전시 주변에는 공간에 전시된 공예품들을 전시장 안에 하나하나 진열해 이들이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님을 인지시킨다. 파리의 귀족이 식당 안에서 밥을 먹을 때 사용했던 접시와 나이프, 포크가 아름다운 예술품임을.
전시된 18세기 당시 도안들과 19세기 근대도안
(프랑스 크리스토플사 디자이너 에밀라이버Emile Reiber:1826~1893의 개인도안집에 수록된 일본공예품을 모티브로 한 공예도안)
한편 전시는 일상공간에서 사용된 공예품들이 상당한 공을 들여 만들어진 것임을 당시 제작된 ‘도안’을 통해 알려준다. 이번 전시에 나온 도안들은 18세기 당시의 공예도안으로 매우 세밀하다. 선만을 이용해 최대한 평면화시켜 공예품의 형태를 표현하고, 중심문양과 차별화해야 할 부분은 전체도안 옆 공간에 세부 도안을 작성했다. 이와 같은 세밀한 도안은 상류층의 일상에 들어가 ‘일상예술’을 구현한 공예품들이 설계단계인 도안단계에서부터 정교하게 작업이 들어간 일상생활용품이자 작품이었음 말해준다. 그리고 이 정교한 공예도안의 작법은 기계생산과 수출 수공예품의 제작을 위해 작성된 유럽의 근대 공예도안의 모본이 되었다.
회화와 공예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단순히 전시만을 위한, 작가의 사유만을 표현한 작품이 아니다. 그들은 작품인 동시에 일상공간 속에서 ‘꾸밈’과 ‘쓰임’이라는 분명한 역할이 있었다.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의 관장 올리비에 가베Olivier Gabet도 전시도록 서문을 통해 이 점을 18세기 프랑스 예술의 특징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18세기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예술적인 일상 속에서 살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을까?”라며 의문을 표했다. 그들은 분명 삶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술을 향유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일상생활의 일부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예를 생각해봐도 비슷하다. 18세기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도 청화백자 연적과 필통, 문갑과 사방탁자 등의 목가구, 방에 걸려있는 사군자 등을 일상공간에 놓고 사용했다. 그들 역시 이것을 일상생활용품으로 생활공간의 꾸밈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예술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던 당시 동서양의 공간은 분명 현재와는 다른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