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류연희 금속 장신구전 - Drawing
전시장소 : 갤러리 아원
전시기간 : 2014.5.28 ~ 2014.6.6
글 : 박경린(프리랜서 큐레이터)
기실 금속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작업에는 재료 각각의 성질에 따라 제작 방법이나 색의 표출 등에 제약을 받는다. 이와 같은 제약과 싸워나가며 자신만의 기술과 조형을 구축해나가는 일이 공예작가들의 숙명이겠지만 때로는 다소 예상 밖의 새로운 재료와의 조우를 통해 작가의 개인성, 개인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도 한다.
류연희는 그 모험의 시작을 주제적으로는 자신의 일상에 깃든 감정과 관찰의 기억에서, 방법적으로는 자신의 취미 그리고 우연치 않게 조우한 재료에서 찾았다. 이러한 재료를 엮어마치 일기를 써내려가듯이 하루에 하나씩 작업을 완성했다.
그 작업일기의 첫 문장은 칠보 속에 녹아 있다. 금속공예 작업은 제작 과정의 특성상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시를 앞두고 생각한 것처럼 이번 작업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추적하며 표현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미세한 감정적 변화를 유연하게 잘 받아줄 수 있는 재료가 필요했다.
칠보는 다양한 색 표현이 가능하며 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형태를 마감할 수도 있는 재료이다. 더욱이 순간적이며 즉흥적인 감정과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색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칠보의 선택은 필수적으로 다가왔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작가에게 자연은 짐짓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도시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문득 바라본 하늘에서, 잠깐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서, 보도에 늘어서 있는 진한 초록빛 나뭇잎들 사이에서, 작은 틈을 비집고 얼굴을 드러낸 꽃들에서,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에서 내리는 소나기에서 자연을 느끼며 변화하는 하루의 감정을 읽어낸다. 작가는 삶의 묵혀둔 경험에서 떠오르는 일들을 그날의 일기를 대신해 채웠다.
마치 섬 안의 호수처럼 흰 빛과 푸른 빛 사이의 여러 색을 머금은 칠보를 은이 둘러싸고 있다. 그 둘 사이를 실이 단단히 엮어준다. 그리고 여기에 가죽을 덧대 마감한다. 금속과 실, 천, 가죽을 사용하는 것은 다소 파격적인 선택이다.
작가는 지금까지 금속 소재로 작업을 진행해오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했던 여러 제약을 벗어나고자 했다. 또 거기에 뜨개질과 수예 등을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과 몇 년 전 지인이 운영하던 구두 공장을 정리하며 얻은 가죽 조각이 우연으로 작용했다. 여분의 자투리 가죽을 활용해 하루를 무사히 마친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듯이 완성된 작품에 가죽을 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훈장처럼 조용히 빛난다.
실을 사용하는 것 또한 흔치 않은 방법이다. 금속과 금속을 물리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동일한 금속 재료를 사용하거나 때로는 아크릴, 나무와 같이 강하게 여물 수 있는 단단한 재료를 사용한다.
그런데 작가는 실을 선택함으로서 정말 드로잉을 하듯 작품 위에 점과 선과 다른 색을 얹었다. 비로소 작가의 머릿속에 있었던 하루의 작은 그림은 완성되었다. 딱딱한 금속과 반대되는 부드러운 가죽과 실 등의 재료가 작은 형태 속에 담겨 파격적인 실험은 언제나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 여러 점의 드로잉을 통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류연희는 완성된 이미지에 대한 일체의 상상 없이 작품을 시작했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그 과정이 전부, 단어 그대로 드로잉 과정이었다. 이 드로잉 과정은 하루를 기록하고 마무리하는 작가의 일기가 되었다. 하루만큼의 기억, 하루만큼의 경험, 하루만큼의 감정을 꽃같이 피워낸 소담한 장신구에서 일상의 소소한 여유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