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다섯 개의 상 - 김현성展
장 소:갤러리아원
기 간:2014.5.14.-5.23
글 :박경린(독립 큐레이터)
전시장을 들어서면 정 가운데 놓인 나무로 만든 직사각형의 넓은 식탁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간다. 식탁 한가운데에는 나이프를 겹겹이 꽃아 놓은 형태의 촛대가 놓여있다. 그 안에 세워진 초의 심지가 타들어가면서 내는 빛이 촛대의 표면에 반사되며 식탁 위를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반사되는 빛은 주석으로 도금된 각각의 식기 위에서 다시 한 번 더 빛을 만들어내며 그 안에 담긴 음식들을 보다 먹음직스럽게 만들고, 조금은 부산스럽게 생기에 들뜬 저녁 만찬이 이제 막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김현성의 다섯 개의 상에 숨겨진 첫 번째 풍경이다.
서양식 만찬을 위해 만들어진 식기들 중 일부는 황동(구리)에 주석 도금을 해 음식을 담을 수 있게 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동으로 만들어진 냄비는 열전도율이 높아 요리를 하는데 섬세한 맛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 애용돼왔다. 가격이 고가인 경우가 많고 주로 유럽지역에서 많이 사용되어왔고 다소 고가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최근 요리에 관심이 많은 젊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그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김현성은 동에 주석으로 도금한 그릇에 관심을 옮겨왔다. 겉은 구리의 붉은 빛을 그대로 살려두고 그 안은 주석으로 도금하였다. 은의 순백색을 닮은 주석의 빛깔은 동의 붉은 빛과 대조되며 독특한 미감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김현성은 주석으로 도금을 할 때 내부를 칠한 붓자국을 정돈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차가운 금속 그릇이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릇으로 변모시켰다.
동에 주석 도금을 한 그릇은 형태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주석으로 내부를 칠한 그릇은 동이 가진 금속의 빠른 부식성을 보완하고 더운 음식은 따뜻하게, 차가운 음식은 더욱 차갑게 유지시켜 음식의 적정한 온도를 보다 길게 유지시켜 주는 특성을 지닌다. 이렇게 기능적인 식기는 전식 테이블위에서는 버터를 보관하는 식기로, 커피 테이블 위에서는 원두를 내릴 때 쓰이는 드리퍼로 혹은 작은 에스프레소 잔으로 쓰임의 자리를 바꿔가며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각각의 상 위에는 각양각색의 모양만큼이나 여러 자료가 사용되었다. 황동에 주석 도금 한 것 외에도 알루미늄이나 니켈, 스테인리스 이외에도 단풍나무와 가죽을 함께 사용한다. 이런 재료의 다양성이 하나에 담겨진 것이 주전자다. 손잡이 부분은 나무 중에서도 물에 강하고 단단하며 밝은 색을 띄는 단풍나무를 사용해 실용성을 높였다. 금속보다는 상대적으로 연마가 쉬운 나무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섬세한 조형성을 강조했다. 백동으로 만든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으로 두껍게 제작된 통은 격자로 땜질이 되어 있어 견고하다.
기실 은식기는 특유의 향균 작용과 독에 반응하는 특성으로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왔다. 이는 동서양 구분이 없다. 소반 위에 놓인 은수저세트는 한식 상차림을 위해 만들었다. 작가의 손으로 직접 망치를 여러 번 두드려 만들어 형태의 변형이 없도록 단단히 마무리 지었다. 젓가락은 끝은 양산된 젓가락보다 훨씬 가늘고 뾰족하게 만들고 손에 닿는 부분은 보다 넓고 편평하게 만들어 손에 안착된 느낌이 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여기에 놓인 이 모든 상차림은 무수히 많은 선을 그리고 그 안에서 형태를 발견해내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 것이다. 직선과 곡선이 마주하는 방법에 따라, 음식을 담고 먹는 방법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각각의 형태와 재료의 조합의 공식은 변화한다. 도자기에 밥을 담아 먹는 한국인들에게 사실 금속으로 만든 식기는 어찌 보면 다소 낯설다.
김현성은 흙이 아닌 금속을 자신의 재료로 선택해 만들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식기를 선택했다. 유년시절 맞벌이였던 부모님을 대신해 음식을 만들어주던 누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성장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해 자신이 직접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요리하면서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어 나누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다섯 개의 상위에 담긴 음식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 그 마음에 식탁 위의 보석을 만드는 김현성의 그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