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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린 공예전시리뷰] 유리로 빚어낸 빛의 건축-허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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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빚어낸 빛의 건축-허혜욱

 

사각형의 유리 판형들이 여러 겹 겹쳐져 하나의 건축물 같이 보이는 형태로 단상 위에 서있다. 그 유리들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얇고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유리와는 달리 두껍고 다소는 투박하며 묵직하게 느껴지는 낯선 유리의 모습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각각의 유리 판 안에는 거칠게 긁혀진 표면과 지금 막 물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숨을 작게 쉰 것처럼 몽글몽글한 기포들이 표면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듯하다. 현재 열리고 있는 허혜욱 개인전 에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An opening 3 - cast galss 390x80x330mm 2013


Move on 1 - cast glass 390x80x330 mm 2013



유리 작업에는 매우 다양한 기법들이 있지만 허혜욱의 유리조형 기법은 일반 사람들이 흔하게 접해온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유리와 함께 금속을 사용하거나, 건축적 구조물같이 판 형태를 조합해서 만드는 허혜욱의 작품은 주로 캐스팅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각각의 틀을 만들어 유리의 형태를 만들고 연마의 과정을 거쳐 유리의 투명성을 만들어낸다. 유리 공예를 시작하던 초기 허혜욱은 블로잉, 즉 불어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주로 했으나 각각의 면과 그 면들이 결합하는 방식 그리고 그 사이의 여백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조형을 탐구하면서 캐스팅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유리의 재료는 도자기보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유리는 원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알려져 있다시피 유리의 주재료는 70~80%가 모래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고열로 녹여 액체 상태로 만들어 형태를 만든다. 그리고 나머지 20~30%의 여러 성분, 즉 융제들의 조합 방법에 따라 각각의 유리가 가진 특성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유리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들마다 저마다의 조합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가들은 작업을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작품에 맞는, 즉 자신의 표현 기법에 맞는 유리를 찾기까지 인고의 시간과 성실을 요구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작품들을 서양에서는 마치 보석같이 집안의 중요한 곳에 놓고 보며 그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강한 불에 소성되는 유리는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낯선 문화이다. 또 한국 사람들에게 차갑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다시 허혜욱의 작품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유리가 만들어내는 형과 색의 특별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그 형과 색은 작품을 제작하는 순간부터 수학적으로 계산되어 마치 하나의 건축물과 같이 구조적으로 완성된 것이지만,

 

또한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한다. 각각의 형태는 제작 초기부터 완성된 형태를 철저하게 계산하고 만들어진 것이며, 그 안의 색과 그 조합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빛은 투과성을 띄는 유리의 본래 속성을 다층적인 구조를 통해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성과정에서 하나의 틀 안에 담겨진 조금씩 다른 유리 원료들이 섞이고 대립하는 치열한 순간들을 포착하여 우연성을 통해 자신들만의 개성을 드러낼 때 그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 비로소 완성된다. 형과 색 속에 마치 지문처럼 남겨진 유리 안에 정박된 기포들의 움직임은 가장 치열했던 작가의 시간의 방증이며, 유리와 불과 시간과 줄다리기를 하며 마주했던 시간들의 기록이다. 그 시간을 따라온 빛의 덩어리를 마주할 때 우리가 경외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박경린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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