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201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일정 : 2013. 9. 11-10. 20.
장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2동 201-1 (상당로 314) 옛 연초제조창
하나보다는 둘이, 국내와 국제가, 여성과 남성이. 이 얼마나 완벽한 조화인가! 201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대한 기대는 사실 ‘올해는 처음으로 1인 총감독에서 한국의 박남희 감독과 일본의 가네코 겐지 감독의 2인 체제로 전환했다’는 뉴스에서 시작되었다.
버려진 연초제조창을 전시공간으로 사용함으로써, 베니스 비엔날레의 아스날 지역처럼 ‘살아있는 공간에서의 예술’이 돋보인 지난 2011년의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차별성에 대한 고구책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이란 주제의 평이성에도 불구하고 공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감독에 대한 기대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였던 것이다. 따라서 익숙함과 새로움처럼 두 감독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조화’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운명적 만남 입구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전시는 조직위원회측이 제공한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8개의 전시로 이루어져 있다. 박남희 감독이 기획한 ‘운명적 만남’이란 제목의 기획전 1, 일본의 가네코 겐지 감독이 구성한 ‘현대공예에 있어서 용도와 표현’이란 제목의 기획전 2, 뤼뒤거 욥핀․우타 클로츠․자비네 빌프․모니카 개스가 감독한 초대국가관의 독일관전 그리고 입선 이상의 수상작이 전시된 공모전, 11개국 14개 단체가 출품한 국제산업관전, 대학이나 협회․공방이나 작가들이 부스 사용료를 내고 참여하는 거리 마켓, 500여명의 작가와 화랑이 참여한 국제아트페어 그리고 연예인 작가들의 스타크래프트가 그것이다.
공예가 담은 삶, 예술적 형태의 공예
<운명적 만남-Mother and Child)>의 ‘함께 살다: Care’, ‘다투다: Survive’, ‘넘어서다: Sublime’이라는 3개의 섹션은 삶을 유기적인 성장으로 파악하고 공예를 유비한 구분법이다. 대세인 ‘힐링’에 대한 감독의 집념을 엿볼 수 있었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삶의 단면을 개념화한 주제 때문인지 작품들은 다분히 고고학, 인류학적인 접근이 두드러진다.
오드 프란조 전시장면
‘함께 살다’에는 9명의 작가가 초대되었다. 혼합된 자연염색이 주는 독한 냄새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오드 프란조의 작품은 유기적 생명체의 상징 혹은 삶에 대한 은유를 보여준다. 케이트 맥과이어의 새 날개를 붙여 이어간 작업들은 이카루스의 추락이 의미하는 새로운 도전과 굴하지 않는 정신 하지만 죽음을 동반한 타나토스적인 요소가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한 조형이었다. 여성적인 재료와 방식이라 말해지는 뜨개질, 바느질 등으로 작품을 제작한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와 제럴딘 하비에르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관계라는 오래된 주제를 무한 확장하는 커다란 스케일의 조형으로 보여주었다.
신상호 "Frame of Reference"
신상호는 공간 전체를 선(禪) 혹은 명상의 이미지로 채웠고 이성근은 금속선의 짜기를 통해 공간을 내포하는 무게없는 구체들로 공간을 재구성하였다. 물질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장소위와 오래된 공예의 형상을 변형함으로써 조형적 선택을 강하게 드러낸 단테 마리오니의 작업은 대극점에서 같은 주제를 소화하는 유리공예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강효의 그릇들은 가마 안에 켜켜이 쌓이거나 달처럼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서 늘어놓음으로써 그릇의 형태를 드러내 보여주지만 그 양적 팽창이 지나치게 의욕적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케이트 맥콰이어 "브라이들"
‘다투다’에는 6명의 작가가 초대되었고, 세계의 직조기와 해주백자들이 특별 전시됐다. 섬유를 이용한 종교적 도상의 재구성을 보여준 오화진은 도전적이며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공예의 현재를 노정한다. 도자기와 끈의 조합으로 팽만한 힘을 보여주며 생성, 변화, 혼란을 보여준 스텐 입센, 새로운 생명체처럼 보이는 현란한 유리그릇을 창조해낸 데일 치훌리는 물질의 특성을 극대화한 조형성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전통 중국의 인체를 왜곡시켜 현재를 반성적으로 사유하는 루빈창이 보여준 사회교과서를 전통종이에 점자로 새겨 넣은 <세계를 만지다>는 무한한 도예의 조형성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한다. 도자와 테라코타로 말을 만든 주락경, 나무로 배를 만든 다카시 키쿠치는 자연을 기반으로 역사를 반추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오화진 "붉은 방"
2개의 콜렉션도 포함되었다. 이세키 카즈요의 ‘세계 직조기 컬렉션’은 아프리카와 일본 오카나와 원주민 그리고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직조기를 통해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는 단순한 행위가 문화적으로 어떤 차를 생산해내는지에 주목하게 하였다. 최봉영의 ‘해주백자 컬렉션’은 단순하면서도 해학적인 화면이 근대기 한국 도예의 새로운 문화로서 이 지역의 도자를 재조명하게 한다. 도자와 섬유라는 공예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를 다루는 전시로서 손색이 없을 콜렉션은 개방적인 ‘해주백자’에 비해 폐쇄적이며 한구석에 치우친 ‘직조기’라는 전시방식에 의해 양자의 비중 혹은 대상에 대한 감정이 다르게 작용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미와 큐세츠 "고대, 왕의 무덤"
‘넘어서다’에는 결국 장인정신이 예술에 이르는 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영근의 미세입자로 이루어진 세계를 조명하는 듯한 나전칠기와 나무의 성질을 최대한 드러낸 헌트 클라크의 유기적 형태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유추케 한다. 고고학적 발굴현장에 위치한 자신과 부인의 묘소를 황금빛으로 드러낸 미와 큐세츠의 패티시한 감각과 궁극의 소멸을 작품의 주제로 선택한 루빈의 도자는 같은 재료가 영원과 소멸의 이름으로 이해될 수 있는 그 가능성에 주목하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자궁>과 <스탬프>로 인도의 정치적 현실을 비판한 리나 사이니 칼라트의 방에서 공예의 여성적 속성과 그것을 넘어서는 그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도전을 만나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최영근 "신의 지문"
공예의 용도와 예술, 구조와 발전의 논리
가네코 겐지 감독은 ‘현대공예에서의 용도와 표현’이라는 주제 아래 4개의 섹션을 두었다. 제1섹션은 도자, 유리, 금속, 목조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작가들에게 현대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아래 생산된 작품들로 구성된 ‘현대의 새로운 용도와 표현’이다. 일본의 코마츠 마코토, 니사토 아키오, 와다 아키라와 핀란드의 크리스티나 리스카, 카티 토미넨 니티라, 영국의 고든 볼드윈은 도예 작업을 보여주었다. 미국인의 신분인 보이드 스기키, 호주의 톰 무어는 유리를, 영국의 데이비드 클락과 크리스 나이트 그리고 독일의 시몬 템 홈펠은 전통적인 은세공을, 영국의 클레어 매릿은 산업물질인 캔을 두들겨 변화시킨 조형의 세계를 보여준다. 한편 아일랜드 작가들인 존 리, 죠셉 월시, 샤샤 샤이크스와 미국의 존 세대퀴스트는 나무를 이용한 현대적인 조형의 가구를 자신의 방식으로 생산하였다.
클레어 매릿 "The Nature of Production"
제2섹션은 ‘용도에서 표현으로, 두 갈래 길: 일본과 영국의 도예’이다. 일본의 ‘하기’요에서 생산한 현대 도예작품들은 오래된 유약과 태토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릇의 구조를 유지한다. 반면 설치쪽으로 나아간 영국의 도예를 수평 비교함으로써 용도에서부터 예술적 표현으로 나아가는 도예의 두 가지 방식을 고찰한다. 세 번째 섹션은 ‘염색과 직물, 용도에서 조형으로’라는 주제로 도예와 마찬가지로 섬유예술의 예술화한 과정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염색에서 조형으로 나아간 일본과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 같은 직물에서 입체작품으로 나아간 폴란드의 작품들을 연구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시모토 마사유키의 커다란 단금작품을 ‘용도의 구조에서 궁극의 표현으로’로 갈무리한다.
쓰임새를 위주로 한 공예가 그 기능을 최대한 잃지 않고 나아간 방향을 ‘구조’라는 데 두고 다양한 재료의 작품들을 섭렵한 점은 현대공예를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신선한 시각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도예에 대한 할애는 감독의 전공분야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감은 있다. 게다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왜 도자기의 다른 길목에서 영국과 일본이 대표성을 띠고 나타나는지, 또 폴란드와 일본의 직물이 비교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필연성이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점은 유감이다.
비엔날레 전체를 관통하는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전시관이 초대 국가관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도상의 새로운 해석과 변형,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용도를 떠나지 않는 독일공예의 모습은 오늘날 공예의 정체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주제에서 전제되는 익숙함을 기본적인 용도에 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독일 공예가 보여주는 작품 하나하나는 용도를 벗어나 구조에 천착할 때 당면하는 입체적인 조각과의 경계 혹은 타장르와의 혼용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당면과제로 삼은 현재 공예의 고민이 섣부르는 것임을 지적하는 듯하다. 그들은 용도에 충실할수록 아름답고 욕망하게 하는 아주 오래된 공예의 매력을 극대화하여 궁극의 가치에 이르게 하는 방향을 성실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시모토 마사유키 "과수원:과일 안으로 비치는 햇빛, 햇빛 속의 과일"
주객전도(主客顚倒)와 예의에 대하여
기획1의 전시실과 분명히 매우 일본 편향적인 시각인 기획2의 전시실에서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개인적 해석이 강하게 드러난다. 보편성과 시사성이 아닌 이들 감독 ‘개인’의 입장은 그동안 보아오던 비엔날레라는 구조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감독이 주제 선정자가 아니라 해석자로 보이는 것이다. 결국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는 조직위원회가 개설한 홈페이지에 접근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결과는 이들 감독은 비엔날레 전반의 감독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리라 상상했던 2인의 감독은 공모를 통해 당선된 주제전의 감독일 뿐 애초에 비엔날레 전체를 조정하거나 대표성을 띨 이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국제적인 비엔날레에 일본에 대표성을 부여한 듯한 주제 그리고 도예에 집중한 시각에 대해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거두어야 함을 알았다.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이란 주제 또한 “익숙한 기쁨 새로운 행복”으로 해석됨을 알았다. 전시행정적인 문구들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내수용임을 분명히 드러내주었다. 설마 해외에 대한민국 청주에서 진행하는 ‘국제적인’ 공예행사를 하며, 문화의 속성과 공예가 같은 것임을 주장하고, 중국 도자기의 변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그 논리를 증명할 리는 없었으리라 소망하면서 말이다.
이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국제포럼 주제가 ‘문화융성, 폐허에서 감성으로’라는데 그 식상한 구호의 재현조차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청공비’라는 단어에서 공노비, 사노비, 솔거노비 등 조선시대 노비의 종류를 떠올리는 본인의 빈곤한 상상력이 더욱 놀랄 뿐이다. 하기야 베니스비엔날레를 베비, 부산비엔날레를 부비라고 부르지 않았고 인천여성비엔날레를 인여비라 부르지 않았으니 ‘청공비’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준말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해서 크게 흠 잡힐 일도 아닐 것이다. 다만 문호를 개방하고 호기롭게 선정한 전시감독이 주제전의 한 부분만을 감독하게 함으로써 비엔날레 전체를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게 하는 데 상공한 것이다.하지만 외부에서는 기획전의 감독이 아니라 전체를 책밍지는 예술 감독으로 이들이 보인다. 결국 주제를 선정하고 비엔날레 전체를 운영하는 보이지 않는 주체는 성공한 부분이 커보인다.
전시장 입구 전경
전시실을 둘러보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두 여인의 아리아 ‘산들바람’이 울려퍼지는 것이었다. 공예의 예술성을 기반으로 한 비엔날레가 상품과 예술작품으로서의 공예를 구분하지 않고, 홍보하기 위해 벌린 행사에 비트 넘치는 음악에 작품이 소리없이 요동치는 상황은 주체인 공예와 그 외의 것이 도치된 상황이었다. 교활한 백작은 수잔나로 분한 자신의 아내 백작부인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바꾸어 입은 두 여인처럼 지금의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주체의 모호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비엔날레라는 아우라를 스스로 제거하기도 하고 문화융성의 구호와 강하게 혼성하기도 하는 현 상태는 적어도 주체에 대한 존재성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예의, 공예 자체에 대한 자각이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