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현대 한국 공예미술 |
최윤정, 지금 나는 여기에 Space & Now
2012.09.19-09.24, 갤러리 이즈
백자 자기소지로 이루어진 원기둥 오브제들과 구체적 지명이 들어있는 도판 작업으로 최윤정은 담백한 자신만의 서사를 구현하고 있다. 때로는 백색으로 때로는 검은 빛으로 드로잉이 올려진 백색의 오브제는 조용한 입체 그림같다.
백색의 원기둥들이 각각 다른 크기와 넓이를 한채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거리를 두고 보았던 그 원기둥들에 다가서면 표면에 드로잉을 해놓은 듯 오돌토돌하게 선형이 각을 새기고 있다. 각자 다른 모양이다. 집의 일부같기도 하고 창문같기도 한 이들 형상들로 위로 도시 한 곳의 영상이 물들면서 예기치 못한 풍경을 만든다. 높다란 건축구조물들이 세워진 도심 한 켠을 담은 벽면의 영상은 이들 원기둥들과 도시의 경험 또는 기억을 재현하는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 작가의 기억 풍경의 실험은 구체적인 지명이 지시된 도판으로 드러난다. 도판이라 편의상 칭하지만 벽에 걸리는 구조 말고는 높낮이가 다른 표면과 다시 그 위에 드로잉과 텍스처를 더하여 오브제로서의 강한 인상을 전한다. 움푹 경사지게 안으로 들어간 이 오브제는 기억 또는 체험의 다른 크기를 담아놓듯 형식과 내용이 일체된 것이다.
작가에게 이처럼 경험세계에 대한 기억과 기록의 반응은 더할 수 없는 정체 확인의 순간순간과도 같다. 작가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자신이 현재하는 지표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정체감을 확인하는 매우 직접적인 방식인 까닭에 그곳에서 스스로를 확인하는 중이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몸이거나 정신이거나 아님 둘 모두가 기거하는 기억의 단서로서 특정 지역의 이미지들이 백자에 간결한 인상으로 그려지고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시간중 가장 의미있는 것은 지금’이다. 즉 작가는 지금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순간의 현존성이 곧 정체감을 확인하는 여정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간 백색 자기 소성의 오랜 노하우로 간결한 형태와 표정의 사유와 기억을 재현한 것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표면과 깊이, 드로잉과 오브제, 멈과 가까움, 체험과 기억의 여러 상황들을 도자의 형식적 한계와 극복의 실험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