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종, 『나는 朝鮮民畵 천재 화가를 찾았다』 아트북스, 2022
조선 말기, 이런 그림을 그린 화가는 도대체 누구일까. 책거리나 화조도 민화를 보면서 도대체 이 그림을 그린 익명의 화가가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해한 적이 꽤 있다. 어떤 집안 출신일까, 어떻게 그림을 접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일까,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식으로 그렸을까, 무엇을 원본으로 해서 그린 것일까. 천차만별의 수준과 다양한 카테고리로 자생하다가, 현대에 와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한국의 민화 세계는 그야말로 미궁이다.
저자는 민화 수집가로 잘 알려진 김세종 평창아트 대표. 2018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을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미술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대규모 순회전을 열며 민화 붐에 한몫했던 대규모 기획전 <판타지아 조선>의 컨텐츠가 그의 민화 컬렉션이었다. 민화에 반해 한 점 두 점 사 모으기 시작하다가 민화만을 수집하고 감상, 탐구하며 살아온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중 가장 주된 것은 19세기 말, 책거리와 화조도 민화 두 영역에서 각각 한 명씩의 출중한 화가가 있었고, 그들이 현재 전해지는 민화의 전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그림 중에서 십 여 점의 수작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이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조형유전자’를 뽑을 수 있다는, 즉 지문처럼 독특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민화를 작가론 관점에서 보고자 한 시각은 참신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작가가 대가의 작품으로 꼽은 책거리 그림들은 특정한 기하학적 문양을 변형해가며 세밀한 테크닉으로 그려내고(저자가 ‘바둑판 모양’이라고 지칭하는, 화문석이나 베갯모, 문살 같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직각의 문양), 책함을 기본으로 하는 탄탄한 화면 구성에 현대적 추상성을 갖췄다는 등의 장점을 부각하여 설명한다. (동일한 형태를 반복하는 일이 없다는 특징은 작가가 다르지 않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하니 증거가 될 수 없을 듯하다.)
오랜 세월 민화를 수집하면서 저자는 실제 작품을 구입하고 실패를 맛보기도 하는 수집 활동에 기반하여 그림을 면밀하게 보아 온 사람으로, 그의 시각은 그냥 즐기기만 하는 사람과는 분명히 다르다. 작품을 선정하고 다시 그 작품들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들을 이미지로 주목시키면서 논거를 이끌었다. 그런데 ‘천재화가’ 1인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 방식은 흥미롭지만 객관적 증거를 기대하면서 읽다가 미처 다 설득되지 못하는 독자의 입장에선 조금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근거를 확인하면서 따져가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책거리와 흥미로운 민화가 가득한 책이다. 민화 컬렉터인 저자의 민화에 대한 자부심은, 시카고미술관 소장품 도록의 한 면을 펼쳐 한쪽에는 우리나라의 책거리, 다른 한 쪽에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폴 세잔의 <사과바구니>가 실려 있는 모습을 세 군데나 소개하고 있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책에 실린 작품처럼 매력적인 민화들이 하나의 본(本) 역할을 하면서 이를 토대로 2차, 3차로 모방하여 그린 그림들이 아래로 아래로 희석되면서 퍼져나갔을 것이다. 아이들이 마구 그린 것 같은, 피식 웃음이 나올 만한 그림들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만, 창의적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거나 완성도가 낮은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완성도의 책거리 그림들을 보면서 그 위로 위로 원류를 찾아 올라가다 보니 마주치게 된 보석과 같은 작품들. 저자는 이들을 한 사람 대가의 것으로 가정하고 그 특징과 장점을 증거처럼 보여주고자 했다.
독보적 인물이 있어서 그가 한국 민화의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냈다는 생각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는 어떤 인물일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조형 세계를 이뤄냈을까. 민화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작가가 모조리 미상이고, 연대가 밝혀진 작품도 거의 없다. 이것이 어떤 문제를 가져오느냐.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 알려진 어떤 작품을 지칭하여 말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가져다가 눈앞에 놓지 않고서는 서로 의사소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 소장에 화조와 영모가 그려진 민화 8폭 병풍’이라고 길게 말해도 어떤 작품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이 책 속에서도 여러 작품들을 전체 그림, 각 폭의 그림을 확대하여 싣고, 다시 그림을 지칭하여 특징을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확실히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작품마다 특징을 포함한 타이틀을 정해주거나("누구누구 소장 사슴과 공작과 석류가 있는 책거리 8폭 대병풍 II" 등과 같이) 코드라도 부여해 적어 놓고 싶은 심정이다. 책에는 도판번호마저 없다....) 누군가 불러 주어야 꽃이 될 게 아닌가. 미술사에 끼워넣고 연구할 만한 가치있는 민화들 중 대표가 될 만한 것들을 누군가는 불러주어야 하고, 이를 계통화하고 연구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학자들의 책무인 듯하다.
고미술 전시 중에 민화만큼 대중의 인기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문화교실 같은 곳에서 그리기를 배우는 취미인구도 많고, 그림 속의 해학을 재미있어 하는 어린이 관객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미술사의 한켠을 아직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조금은 특이한 회화세계, 민화. 앞으로 민화가 민속이나 민예의 범주를 벗어나 창의성 있는 시각예술로 연구, 감상, 유통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