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준, 『나의 한국미술사 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2022.07.
안휘준, 『한국의 미술문화와 전시』, 사회평론아카데미, 2022.07.
1970년대 원시림과도 같았던 한국미술사학계를 개척해 오늘까지 이끌어 온, 현재 한국의 미술사와 문화재 분야에서 최고의 원로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간의 연구, 저술, 교육, 사회에서의 활동을 일차 정리한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첫 번째 책 『나의 한국미술사 연구』는 그간의 저술 중에 연구 업적과 미술사 관련된 일에 대한 활동들을 기록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2006년 정년퇴임 기념논총에 실렸던 ‘미술사학과 나’, 주요 저서인 『한국 회회사 연구』 뒷부분에 실렸던 ‘나의 한국회화사 연구’ 등 학문에서의 업적을 썼던 글들이나 대학교나 학회 기념 발간물에 실렸던 글 등 학문 관계된 봉사에서의 업적을 정리한 글, 각종 저서의 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은사 두 분-김재원 박사와 김원용 교수에 대해 썼던 글들이 한 챕터로 묶여 있고 <천수국만다라수장>과 <공재 윤두서>를 주제로 한 새 논문 두 편이 포함되었다.
신문이나 잡지, 기관과 단체에서 청탁을 받아 쓴 기타 서평이나 수필, 논설 등 이른바 잡문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안 교수의 학술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집필한 이러한 짧은 글 중에서 연구나 저술과 관련된 것은 『나의 한국미술사 연구』 에, 칼럼이나 전시평 같이 미술문화나 전시와 연관된 글들은 두 번째 책 『한국의 미술문화와 전시』에 모아 실은 구성이다.
사실 그는 2000년에도 이러한 형식의 정리를 한 차례 한 바 있다. 시공사를 통해서 낸 책 두 권 『한국의 미술과 문화』와 『한국 회화의 이해』가 그것인데, 2000년 이후에 낸 글들을 마저 꿰어서 흩어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대학과 박물관, 문화재 관련 기관에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도 수많은 일들을 해낸 원로 학자의 기록이기에 개인의 기록이기라기 보다 ‘한국 미술사학의 역사’를 통째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국회회사라는 미개척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대학자의 정리 기록인 만큼 다 다른 시기에 다른 목적으로 쓰여졌던 글일지라도 이야기책을 읽듯 넘기다보면 전설처럼 남아 있는 전시나 사건이 흥미롭게 재구성됨을 느끼게 된다. 지금은 당연하고도 쉽게 들여다보는 논문이나 저서가 없던 시절의 믿을 수 없는 환경이다.
이 두 권의 책에는 실제 내용물이라 할 수 있는 안휘준 교수의 학술 저작과 논문 본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꼼꼼히 정리된 목록으로만 들어 있다). 계획하고 있다는 새로운 저술도 있다고 하고 전집의 형식으로 원로 학자의 학문적 업적을 정리하는 것이 마땅한데(아마도 진행되고 있을 텐데), 너무 시간이 지체될 것을 염려해 미리 정리된 것을 출간해 한국 미술사와 회화사의 연구나 저술 흐름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게 한 출간이다.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교에 자리를 잡았을 때. 교육과정 체계도 없고, 학회도 없는, 아직 근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학계에 서 있던 젊은 학자 안휘준은 어떤 마음가짐이었을까. 눈앞에 있는 수많은 ‘해야 할 임무’가 있고 나를 믿고 도와 준 은사와 제자들의 믿음에 부응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고 해도 누구나가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했겠지만 얼마나 많이 걸렸을지 모르겠고, 또 전혀 다른 현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특이하게도 두 책의 맨 앞, 표지를 넘기자 마자 색깔있는 내지에 몇 가지 항목의 선언문 같은 것들이 적혀 있다. 『나의 한국미술사 연구』의 경우 다음과 같다.
나는 어떤 학자가 되고 싶었는가_안휘준
1. 학문과 예술을 똑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학자
2. 넓은 식견과 높은 안목을 겸비한 학자
3. 공평무사 공명정대를 중시하는 학자
4. 이학보국以學報國을 지향하는 학자
일반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파란’ 니트를 사서 입어도 그 ‘셀룰리안 블루’를 고심해 만들어낸 디자이너들의 존재를 알 수 없듯이, 우리가 오늘날 윤두서 조영석 김득신으로 이어지는 풍속화의 계보를 전시장에서 만나고 즐기게 되기까지 학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와 논의를 거듭하는지 알지 못한다. 한국미술사 속에 제대로 편입되지도 못했던 전통 회화의 위상이 지난 50년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도록 해 준,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즐기도록 해준 분들께 특히 경의의 마음을 가져본다.
특이하게도 두 책의 맨 앞, 표지를 넘기자 마자 색깔있는 내지에 몇 가지 항목의 선언문 같은 것들이 적혀 있다. 『나의 한국미술사 연구』의 경우 다음과 같다.
나는 어떤 학자가 되고 싶었는가_안휘준
1. 학문과 예술을 똑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학자
2. 넓은 식견과 높은 안목을 겸비한 학자
3. 공평무사 공명정대를 중시하는 학자
4. 이학보국以學報國을 지향하는 학자
책을 읽기 전에는 다소 의아했던 이 다짐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해가 된다. 그 마음으로 계속 다잡고 활동한 결과가 이 업적임을 명시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과 함께, 후학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맨 앞에 적어 둔 것이다.
십여 년 전과만 비교해 봐도 미술사를 공부하는 환경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졌고, 수많은 논문들과 저서들이 쏟아져 한국미술사학계를 풍부하게 만든다. 노학자는 이들이 더 넓고 더 깊이 연구해 자신이 세운 틀의 내면과 외연을 넓히라고 요구한다. 젊은 학자들에게 이 책은 채찍질과도 같다. 학자는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상대적으로) 젊은 몸뚱이의 내가 너무 게으르게 살고 있나, 반성하게 만드는 부수적 효과 또한 있다. 일반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파란’ 니트를 사서 입어도 그 ‘셀룰리안 블루’를 고심해 만들어낸 디자이너들의 존재를 알 수 없듯이, 우리가 오늘날 윤두서 조영석 김득신으로 이어지는 풍속화의 계보를 전시장에서 만나고 즐기게 되기까지 학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와 논의를 거듭하는지 알지 못한다. 한국미술사 속에 제대로 편입되지도 못했던 전통 회화의 위상이 지난 50년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도록 해 준,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즐기도록 해준 분들께 특히 경의의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