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민화의 맛』
아트북스, 2019.05 | 382쪽
어딘가 어설프고 우습고 친숙하면서도 낯선 그림 민화. 이를 ‘회화’라는 시각예술의 관점을 벗어나지 않고 본다면 어떤 식으로 감상하게 될까. 동시대 시각예술 특히 회화 비평을 업으로 하는 저자가 전적으로 자신의 시각과 취향에 기대어 80점의 민화를 대상으로 선택하고 감상한 기록이다.
화초도 10점, 화조화 14점, 문자도 15점, 산수도 9점, 책가도/책거리 5점, 어해도 5점, 인물화 5점, 작호도 5, 감모여재도 1점 이렇게 총 80점의 민화를 회화적인 매력으로 어떻게 감상하고 비평할 수 있는지의 예를 보여준다.
민화에 대한 기존의 글들이 민화 속 도상의 상징성이나 배경을 해설하는 데에 초점을 둔 것에 반해 이 글들은 민화를 회화 작품으로 보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작품을 마주 대했을 때 멀리 보고 가까이 보고 흐름을 보고 돋보기를 대고 움직여가면서 하나하나 보듯이 차근히 그림의 시각적 요소를 언어로 디테일하게 표현하여, 민화를 감상하는 사람에게 세밀한 안내가 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서민민화라고 보기에는 조형성과 회화적 완성도에서 상당한 수준을 보여 준다. 거의 궁중민화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탁월한 솜씨를 지닌 이가 그린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 위에 한 쌍의 새가 마주 보고 있다. 꿩과에 속하는 새가 분명해 보인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다. 분명! 다소 수다스러운 왼쪽의 새를 바라보는 오른쪽 새의 표정을 보라. 그 표정은 조잘거리는 암컷 새의 방언 같은 무수한 말을, 재잘거림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동시에 그 난망함에 대한 표정 관리이자 그럼에도 포용하고자 하는 배려로 다스려진 얼굴이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몸통을 보면, 이 새의 너그러움과 포용의 정도를 조금은 예측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새들의 꼬리는 있는 힘껏 펼쳐져 마치 화면의 경계를 찢고 나갈 것만 같다. 대단한 기세가 느껴진다. 특히나 꼬리를 단일한 선으로 쭈욱 밀고 나간 것도 아니다. 하나의 선이 지나가고, 그 선과 함께 점이나 자잘한 터치를 감각적으로 뒤섞어 깃털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검은색 점과 붉은색 점으로 변화를 주었다....”
"8폭 병풍 중에서 고른 세 점의 화조인물화다.... 세 점 모두 탁월하다. 꽃과 나무, 새의 묘사도 훌륭하지만 그 사이에 자리한 인물의 독특한 도상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꽃 속에 자리한 한 마리 꿩을 바라보는 듯한 남녀의 모습이다. 그런데 실은 이 남녀는 서로 손을 잡고 몸을 밀착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 아마도 민화 중에서 손꼽을 만한 수작의 하나일 것이다. 민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도상의 맛이 가득하다. 하단에 처리한 바위 선이 보통이 아니다. 어떻게 저토록 무심하게 선을 직직 긋고, 그 안에 아주 흐린 먹색을 뭉개서 산과 바위를 조성했을까?...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처리가 압권이다...."
"...새우는 그 대상을 그렸다기보다 새우를 빌려 작가가 마음껏 변형하기 위한 구실로 삼은 매개체다. 새우 몸통 위로는 대나무가 자란다. 일부분만 보여 주고 나머지는 과감히 생략했다. 가는 선을 가지런히 그어 대나무 몸통을 표현했는데 마디와 선을 상당히 규칙적이고 정확하고 바르게 묘사했다. ... 예민한 먹선을 균질하게 조성하여 대나무의 섬유질 표면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민화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사람마다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그림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공통의 요소가 있고 생명력을 가지고 현대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는 만큼 민화를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하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민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빠짐없이 열거하는 방식으로 그 생명력의 근거를 찾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새우는 그 대상을 그렸다기보다 새우를 빌려 작가가 마음껏 변형하기 위한 구실로 삼은 매개체다. 새우 몸통 위로는 대나무가 자란다. 일부분만 보여 주고 나머지는 과감히 생략했다. 가는 선을 가지런히 그어 대나무 몸통을 표현했는데 마디와 선을 상당히 규칙적이고 정확하고 바르게 묘사했다. ... 예민한 먹선을 균질하게 조성하여 대나무의 섬유질 표면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민화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사람마다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그림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공통의 요소가 있고 생명력을 가지고 현대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는 만큼 민화를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하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민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빠짐없이 열거하는 방식으로 그 생명력의 근거를 찾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책 안에 소개된 80점의 민화는 2018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과 세종문화회관미술관에서 이어진 <판타지아 조선> 전시의 중심이 되었던 한 개인의 소장품 민화 중에서 선택된 작품들이다. 민화 중에서도 특히 그 소박함과 미숙함이 특징이 되는 그림이 많이 포함되었는데, 저자는 이 그림들에서 어린아이의 솜씨 같은 순박하고 꾸밈없는 것에 매혹되기도 하고, 기본적인 틀을 마음대로 파괴한 제각각인 형태에 새로움과 재미를 발견하고, 어눌한 솜씨 안에서도 스스로 터득한 준법으로 대담하게 먹을 사용한 부분, 정교하고 세심하게 표현한 부분, 나름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부분들을 찾아낸다. 성공의 요소를 찾아가는 세밀한 탐구를 위해 서양미술이나 현대미술과의 비유도 더하고 있다.
계산되지 않은, 완벽과는 거리가 먼, 충동적인 그림이지만 반복적인 작업에 의한 노련함으로 독자적인 형태미를 수립한 증거를 찾아 그것이 민화의 강점이라고 역설한다. 민화의 전반에 대한 이해와 맥락을 찾기는 어렵지만 민화를 감상하는 자세한 안내로는 매우 친절한 지도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