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훈, 『한국의 팔경도』, 소명출판, 2017
지방에 가 보면 그 지방의 자랑할 만한 명소를 ‘팔경’으로 소개한 곳이 많다. 명승에서 팔경은 우리에게도 친숙한데, 이는 중국의 《소상팔경도》에서 유래되었다. 《소상팔경도》는 북송의 송적(약 1015-1080)이 그리기 시작한 이래 널리 유행했는데, 이 그림이 유행하게 된 데는 팔경이 이상향의 표상으로 감상자들에게 자리잡게 되고 시로도 많이 읊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국립나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인 저자가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팔경도가 위치하는 자리와 그 비중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의 《소상팔경도》의 발달, 전개 과정과 시대에 따른 특징, 의의를 분석한 글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전래된 이후 특히 조선시대에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시와 그림으로 소상팔경을 표현하게 된다. 초기에는 안견파 화풍의 것이 발달하고, 이어 우리 실경을 대상으로 한 팔경도 이어지게 된다.
중기에는 화원 화가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소상팔경도》가 제작되는데, 가장 많은 작품이 전해지는 대표적인 화가로는 이징이 있다. 새로이 절파계 화풍이 유행하며 《소상팔경도》에도 그것이 반영됨을 볼 수 있다.
중기에 우리나라의 실경을 팔경 또는 십경으로 명명하여 시도 짓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풍조가 정착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경향이 실경산수화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소상팔경도》보다는 실경을 대상으로 한 팔경도 제작이 크게 유행하고, 한국적 화풍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겸재 정선이 중심이 되어 남종문인화풍의 《소상팔경도》 뿐만 아니라 이에 근거한 화법으로 실경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새로운 진경산수화풍을 만들어낸다.
후기와 말기에는 팔경도 형식이 보편화되고, 화원 뿐 아니라 문인화가들도 개성적인 팔경도를 활발히 제작하였다.
저자는 동아시아 삼국에 공히 나타나는 ‘팔경문화’가 삼국 회화의 연관성과 독자성을 살펴볼 수 있는 제재임을 밝히고 앞으로 심화된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전문 연구서이지만 일반 독자도 소상팔경의 유래나 산시청람, 연사만종, 어촌낙조, 원포귀범, 소상야우, 평사낙안, 동정추월, 강천모설 여덟가지 풍경의 제재, 제화시들, 주요 작품 등을 대하며 차근히 주제에 다가갈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다. 팔경과 연관되어 주요 화가들의 실경 산수나 진경산수화 등, 회화사에서 짚어낼 수 있는 부분을 그림을 중심으로 다루어 전개 과정의 이해를 돕는다. 머리말에서 책의 의의를 밝히기는 했으나, 조선시대의 소상팔경도를 갈무리하는 결론이 좀더 있었으면 일반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