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비숍 著, 『래디컬 뮤지엄』, 현실문화, 2016.3
미술관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뮤지엄 중에서 과거의 유물들을 다루는 박물관 외에 동시대의 시각예술을 다루는 미술관이 현재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사례에 대한 작은 빨간 책이 출간되었다.
『래디컬 뮤지엄』의 부제는 “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이다. 사실 컨템퍼러리라는 범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모더니즘 미술 이후의 미술을 대강 싸잡아서 컨템퍼러리라고 한다면 그 이후 세대의 미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부르게 될까. ‘같은’ 시대 즉 현재의 미술이라면 지금 이 순간의 미술이 곧 결론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떤 방향성과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재주의를 넘어서 컨템퍼러리 미술은 어떤 것인지 미술관에서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까. 또 이러한 미술관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변화될 수 있을까.
레이나소피아미술관. 마드리드.
전세계적으로 동시대미술을 다루는 새로운 미술관이 급증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공통적으로 화려한 공간을 가진 건축을 앞세우며, 어떤 미술관들은 소장품 없는 쿤스트할레로 자리잡았다. 과거 엘리트문화의 귀족적 기관이던 뮤지엄의 모습이 아닌 스타건축을 앞세운 포퓰리즘의 사원이 된지 오래. 최근의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대여 중심의 미술관 기획전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에 소장품으로 눈을 돌려 동시대의 미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미술관들을 살펴보고 이들에게서 새로운 미술관의 범주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작은 책의 목적이다. 세 미술관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소피아미술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반아베미술관, 슬로베니아 류블라냐의 메텔코바컨템퍼러리미술관이다.
슬로베니아 메텔코바 컨템퍼러리미술관
이 세 곳은 저자에 따르면 ‘역사와의 특정한 관계에 있어서 동시대 미술을 도전적으로 재사유할 수 있도록 제안하기 위해’ 각각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다소 급진적이라고 할 그 주제는 다음과 같다.
마드리드: 프랑코 시대와 식민주의에 대한 죄의식
에인트호번 : 이슬람혐오증과 사회민주주의의 실패
류블라냐 : 발칸 전쟁과 사회주의의 종말
네덜란드 반아베미술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관은 反헤게모니적일 수 있는가? 이 책에서 거론된 세 미술관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들은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처럼 현재의 예술 실천을 보다 폭넓은 시각적 경험의 장에 연결짓는 작업을 한다.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텍스트, 만화, 인쇄물, 사진, 예술작품, 인공물, 건축을 시적인 성좌 안에 병치함으로써 19세기 수도 파리를 되돌아보았다.”
“(이러한 시도는) 미래를 보는 시선으로 오늘을 이해하게 해주고, 국가적 자부심 또는 헤게모니가 아닌, 창조적인 질문과 문제 제기의 이름으로 말하는 능동적이고 역사적인 행위자로서 미술관을 다시 상상하게 한다. (여기서는) 개별 작품들을 아우라를 바라보는 듯이 관조하는 관객을 제안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관객은 작품을 독해하거나 논쟁할 만한 논거와 입장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관객을 말한다.”
이들은 건축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며, 미술시장에서 유행하는 비싼 값의 스타작가의 작품을 사고자 하지 않는다. 시각예술(소장품)을 활용하여 한 사회 안의 트라우마라고도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미술관의 역사적, 미술사적 실천의 예시들이다. 이들이 물론 성공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블록버스터 전시에 밀리고 사라져 가는 수많은 동시대의 역사들을 어떻게 미술관이 발굴하고 해석하여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관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의 집단적인 표현물이고, 우리의 가치를 반영하고 논의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심사숙고 하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