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윤, 김형국 엮음 『풀 바르며 산 세월 – 표구장 이효우 이야기』, 가나문화재단
구술을 정리한 이 책의 주인공은 인사동에서 50여 년 간 표구사를 운영한 낙원표구사의 이효우 대표다. 작품과 가장 근접하고,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이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과정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의 내력과 내공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표구(장황)의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고 해도 오랜 시간을 버텨 서화가 전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 테니 그 서화의 운명을 가름하는 중대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그에 더하여 완성된 서화에 단지 수동적으로 쫓아가는 것 이 아닌, 그림 제작 과정에 능동적 개입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청전 이상범과의 작업이 그러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서화와 친숙했던 환경에서 자란 이효우 대표는 육이오를 거치며 고향집이 파산하면서 지인을 통해 서울의 한 표구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의 나이 십대 후반. 군대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그 일이 천직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이 많지 않아 적산가옥에 도배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당시 인사동 표구계는 일본 사람의 영업 간판을 이어받은 박당표구사와 상문당 두 갈래로 나뉘었고, 전통적으로 조선미술표구사(여월현), 수송표구사 등 대여섯 군데쯤 있을 때었다. 이효우 선생은 당시 해운당, 상문당을 거쳐 동산방 박주환 선생께 배우면서 표구를 알아나가고 있었다. 도제식이었던 당시의 풍습과는 달리, 이 선생은 여러 선생님을 모신 덕분에 다양한 표구 방식을 접하고 장점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독자적으로 표구사를 운영한 것은 1960년대 초. 구술을 통해 그는 헨더슨이나 프랑스 대사, 통문관 등 고서점이나 골동상들, 고암 이응노, 영운 김용진, 윤치영 등의 유명 인사와의 일화를 밝히고 있다.
책은 전문적인 표구의 세계, 즉 개념과 범주, 표구의 세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들, 예를 들면 용어나 방법과 관련된 연구의 부족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보존과 관련된 연구에서도 표구의 기술적 부분과 역사에 대한 연구가 대단히 중요한데, 그것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옛날 걸 다 뜯어 없애지 말고 그걸 하나하나 분해해가면서 가능하면 그 천도 재생할 수 있게 하고, 그때 어떻게 했는지 연구해야 한다고요. 우리가 그림을 재생하기 위해서 뜯어보면 그림을 멀쩡한데 배접만 싹 찢어진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더 약한 배접지로 배접을 했다는 얘기인데, 그런 식으로도 그 앞 그림이 상하지 않게 배접을 했다는 얘기니깐 그런 것도 연구해볼만 하죠. 또 어떤 것은 분리해보면 풀이 덕지덕지 누렇게 말라붙은 한 층이 배접지 그림 뒤에 남아 있어요. 정제되지 않은 풀을 사용했기 때문에 배접지 사이에 누런 층이 생긴 거예요. 손으로 긁어보면 묽은 풀이에요.”
한국식 표구와 일본식 표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제 때 널리 퍼졌던 일본식 표구가 해방 후까지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죠. 그때 일본사람한테 배운 기술을 고집했던 분들도 있었구요. 한편으로 거기에서 벗어나려 했던 분들도 있고 그랬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왜못을 박지 않아요... 끌로 구멍을 파서 오동나무 틀을 접합시키는 것입니다... 뒤틀리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그걸 여러 번 발라 보관하면서 한번 반듯하게 잡아주면 다시 뒤틀리지 않아요...홈을 파서 그 홈에다가 가로목을 집어넣고 아교로 접합을 하는 일이에요.”
“일본인이 이왕가박물관과 덕수궁미술관을 관리할 때는 우리 표구를 그들 입맛대로 새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박물관에 계셨던 분들이 비단이라든지 형태라든지 풍대라든지 너무 일본 냄새가 난다고 떼버리고 진열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일본 냄새 난다고 해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창피한 역사도 역사는 역사니까..”
이 외에도 풀, 비단, 종이 등 소재와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 아파트가 늘어난 요즘 표구사의 달라진 일감들, 작품의 손상과 복원 일화, 진위와 관련된 민감한 이야기, 손재형, 김응현, 장우성, 정탹영, 송영방 유명 서화가들의 표구 취향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함께 우리나라 표구사의 처우에 대한 현실도 짚고 넘어가고 있다.
다양한 연구와 교육이 이어져야 하는 분야일수록, 일차적으로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인 분들의 소중한 기록들이 빠짐없이 남겨지는 일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끌어올리는 일은, 당장 주의를 끌고 돈이 되는 일에 우루루 몰려가는 게 아니라 지킬 것이 지켜지도록 하고 묵묵히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