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컬렉터들 - 한국의 근대 수장가와 수집의 문화사
김상엽 지음 | 돌베개 | 2015.4
미술 작품이 있으면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어느 시대나 유명한 대수장가가 있게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적인 고난과 더불어 우리 미술품도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경우가 많았고 그 때의 수장가들은 단순히 개인의 욕망 때문이 아닌 복잡한 이유로 미술품을 수집해 왔을 것이다.
오랜 기간 근대의 미술품 수장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모아온 저자는 근대의 유명 대수장가들의 모습과 미술품 시장을 꼼꼼히 살피고자 하였다. 『미술품 컬렉터들』은 근대의 미술사에서 미술품이 가지던 위상,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따른 수집 문화의 변화 양상을 여러 유형의 수장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고미술품을 경매한 유일한 단체인 경성미술구락부는 충무로와 명동을 아우르는 지역인 '남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남촌은 일본인의 중심 거주지역이자 주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1920년도 무렵 설립 논의가 시작된 경성미술구락부 초창기 주주의 대부분은 일본의 토목건축업자들이었다가 1938년 무렵에는 주식 총수의 과반수를 고미술업자들이 갖게 되어 명실공히 고미술업자들의 회사가 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로 넘어가면서 미술 작품이 시장 상품으로 존재하게 되고 서화가 경매장에 내걸리는 변화를 겪게 된다. 책에서는 이 때의 여러 상황, 경성미술구락부라는 경매 조직과 이의 경매도록을 통해 미술품이 거래된 바를 분석하고, 조선명보전람회, 조선고서화진장품 전람회 등 당시 자료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세세히 짚었다.
이후 수장가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근대 수장의 풍경이 어떤 것이었는지 보여준다. 중인 가문에서 태어나 언론인, 미술사가이기도 하면서 근역서화징과 근역인수를 엮어낸 오세창, 일제 치하에서 한평생 부와 권력을 누렸던 박영철, 최고의 감식안을 가졌던 치과의사 함석태, 친일파의 아들로 국무총리까지 지냈던 대수장가 장택상, 막대한 양의 수장품을 큰 차액을 남기고 팔았던 이재에 밝았던 의사 박창훈, 조선의 마지막 내시이면서 뛰어난 감식안으로 최고의 수장품들을 보유했던 이병직, 문화재들을 거액을 주고 사들여 최초의 사립미술관을 세웠던 간송 전형필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수장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이사이에 그 당시의 신문과 매체에서 다뤘던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실어 당시의 분위기를 십분 전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근대 미술품 수장의 한 축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일본인 수장가들의 한국 미술품 애호와 투기의 모습 등을 살펴본다.
왼쪽 위부터 오세창, 김용진, 박영철, 김찬영, 함석태, 장택상, 오봉빈, 유자후, 이병직, 이한복, 박창훈, 한상억, 손재형, 박병래, 전형필, 김양선, 이인영 등 우리나라 근대의 주요 미술품 수장가들이다.
우리나라 근대의 수장가들이 민족문화의 애호가, 수호자의 모습 뿐만 아니라 투기꾼 친일파까지 다양한 군상이었다는 사실은 저자의 말대로 이 과정이 때로 답답하고 불편하고 괴롭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감당해야 하는 몫인 듯하다.
1. 위창 오세창 2. 오세창의 아버지 역매 오경석. 3.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의 오세창.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년간 복역했을 때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4. 일본 망명 시절 손병희, 양기탁 등과 함께한 오세창. 앞줄 맨 오른쪽. 5. 오세창의 부음을 기사화 한 동아일보. 6. 오세창이 쓴 글씨. <화광동진>은 자기의 재능이나 지혜를 감추어 나타내지 않고 세속을 따른다는 의미.
저자는 올해 초 일제강점기 경매도록을 엮은 『한국근대미술시장사 자료집』을 낸 바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 미술사를 파악할 때, 미술시장의 모습과 그 주체 중 하나인 수장가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여러 시도들을 계기로 우리 근대미술이 더욱 활발히 연구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상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