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 한국의 국보 | 컬처북스 | 2014
사실 우리 세대는 '문화재'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 후손에게 떳떳하지 못하다.
역사의 한 흔적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일부러 완전히 없애버렸으며, 보물인 낙산사 동종을 녹였고, 심지어 국보 1호인 숭례문을 태웠다. 그것도 부족해서 부랴부랴 복원하다가 단청이 다 떨어지고 현판이 갈라지는 꼴을 만들었으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는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05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복원된 낙산사 원통보전.
아래왼쪽은 화재 이전의 낙산사 동종. 아래오른쪽은 낙산사 동종이 불타고 있는 모습.
불행한 운명에 처한 문화재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약탈 문화재의 반환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많이 높아지고, 문화재가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많이 높아졌다.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만 할 것이 아니라 국내외에 많이 소개하고 알려야 한다는 필요가 생겨 보존이나 활용이냐에 대한 갈등도 최근 불거진 바 있다.
전통방식에 따라 복원되고 있는 숭례문.
화재로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숭례문 현판(왼쪽)과 수리 후 복원되어 처음 매달린 상태의 현판(오른쪽).
이렇듯 다양한 문화재와 관련된 이슈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얻기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우리 선조가 남긴 국가적인 보물, 문화재에 대한 충실한 정보제공이 이 책의 역할이다.
국보는 무엇이고 보물은 무엇인지, 왜 숭례문이 국보1호로 지정된 것인지, 문화재를 값으로 매긴다면 얼마 정도 할런지, 석굴암 전실은 원래 어떤 모양이었을지, 조선왕조실록의 스케일은 어느 정도인지 국보와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엮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문화재의 발굴에 의해 어떻게 무참히 깨지게 되었는지, 최신 업데이트된 문화재 소식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가짜 거북선별황자총통. 1996년 발굴3일만에 국보274호로 지정되었다가 가짜로 밝혀져 국보에서 해제되었다. 아래는 가짜 거북선별황자총통 세부. 문구도 임진왜란 당시 사용표현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기자로서 저자는 문화재가 훼손되었을 때 어떻게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이 좋을지의 기준과 딜레마, 그간의 예는 어떠했는지도 심층 분석기사 다루듯 자세히 다루고 있다. 최근들어 문화재를 실생활에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고궁의 경우 2009년경 부터 고궁을 관광자원화 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창덕궁 달빛기행"이나 경복궁과 창경궁의 봄 가을 야간개장의 인기를 보면, 문화재가 그간 보호에만 힘쓰느라 일반에게 다가가는 데에 수동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보존과 활용이 양립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활용(개방)을 하는 순간 훼손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존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즐기게 하기 위함인데 아무도 보지 못하고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게 꽁꽁 감싸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훼손을 최소화하며 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해야만 또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보존에 더 노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특별전 '황금의 나라, 신라(2014)'에 출품된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의 아름다움과 매력, 그 영광과 수난의 역사까지 모두 다루며 우리 사회 내에서 문화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상황을 있는 그대로 풀어헤치다 보니 다소 예민한 부분도 눈에 띈다. 어떤 방향이 옳고 그른지는 독자가 판단해야 될 부분이지만, 저자는 객관적인 사실 나열을 넘어서 옳다고 여겨지는 방향을 신중하게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책 후반부에는 국보 비교 감상 챕터가 있어 명품들을 비교하면서 아름다움과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불국사에 있는 국보23호 청운교 백운교와 국보22호 연화교 칠보교를 비교해 보고, 원각사지 10층석탑과 경천사지 10층석탑, 유명한 국보 78호와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등등을 보면서 특징을 더 뚜렷이 이해할 수 있다.
국보9호 정림사지5층석탑과 국보289호 왕궁리5층석탑.
왕궁리석탑은 정림사지석탑을 계승한 것으로 더 우직하고 힘이 있다.
청소년이나 어르신들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다. 예전에 배웠던 국사책의 내용에서 한참 더 업데이트 된 내용들이 많아 일일이 미술이나 문화재 소식을 눈여겨 보지 않은 독자라면 새롭게 여겨지는 내용도 많을 것이다. 국내 여행을 전후해 그 지방의 문화재에 대한 사전 지식을 찾아보고 가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