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이일수 지음 | 시공아트 | 2014-04-30
“화가에게는 화선지와 만나는 손보다 세상과 만나는 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저자의 글 中-
작자미상, <최북 선생상>, 종이에 채색, 65.5x41.5cm, 개인소장
그 동안 머리, 눈, 마음 그 어느 곳으로 그림을 보았는가 생각하면 첫째로는 눈, 둘째로는 머리 였던듯하다. 어느 시대 누구의 작품이고 어떤 화풍인지 마치 외우고 있는 것을 되뇌이듯이 어찌보면 머릿속 지식이 보는 눈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익숙해진 습관을 쉽게 바꾸기 힘들어 아직 마음으로 그림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음에 마음으로 그림을 본 책 한권을 들여다보고 소개하고자 한다.
이암, 모견도, 16세기, 종이에 담채, 73.2 x 42.4cm, 국립중앙박물관
이암, 화조묘구도, 16세기, 이암, 화조구자도, 16세기,
비단에 채색, 86.4x43.9cm 종이에 채색, 86x45cm, 삼성미술관
이암이 그린 동물소재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강아지 세 마리의 각각 다른 특성과 성격이 드러나 있다. 어미 개와 가장 닮은 검둥이는 움직임도 호기심도 적당한 순둥이 임을 알 수 있다. 흰둥이는 가장 호기심이 많고 씩씩한 성격인듯 한데 어미 품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젖 먹는 모습이나 방아깨비를 잡아 놀고 있는 모습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누렁이는 잠 든 모습이나 나무위의 고양이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통해 세 강아지 중에 몸이 가장 약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관찰력과 집중력, 화가의 애정 어린 눈빛이 없었다면 이토록 섬세한 표현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가만큼 애정 어린 눈으로 그림을 접하지 않는다면 그냥 어미 개와 강아지 가족으로 이 그림은 정지상태일 것이다. 그림 속의 동물을 마음을 다해 바라보니 어미와 같은 모습으로 자랐을 검둥이와 형제에게 먹이 감을 구해다 나누어 줄 씩씩한 흰둥이의 모습, 어미개의 걱정과 더 큰 관심 속에서 건강히 자랐을 누렁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상상된다.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은 그 사람의 삶을 짐작케 해주고 시대적 상황까지 이해한다면 그림 속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문인이 대세인 조선 시대에 무인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인 <석천한유도>는 무관의 사적인 시간을 엿 볼 수 있는 그림이다.
김희겸, <석천한유도>, 비단에 채색, 119.5x87.5cm, 개인소장
한 여름 더위를 피해 정자에서 매를 오른손에 얹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 전일상과 연못에서 말을 씻기는 하인, 시중을 들고 있는 세 명의 관기와 하녀. 개 두 마리가 화면에 등장한다. 어떤 인물이기에 이리 큰 규모의 정자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지 살펴보면 석천은 집안 대대로 5대째 무인이 나온 집으로 무과 급제 후 전라 우수사와 경상좌병사 까지 여러 관직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석천이 살았던 숙종부터 영조 시대까지는 큰 전란이 없이 안정적인 시기였다.
김희겸, <전일상 초상>, 18세기, 비단에 채색, 142.4x90.2cm, 개인소장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그림을 마주하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의도한 섬세한 표현 또한 살펴볼 수 있는데 <석천한유도>에서 여인들의 치맛자락과 정자의 기둥에 걸린 칼, 버들잎은 바람이 불고 있는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을 살펴보는 것 또한 그림 속에 숨어있는 소소한 재미이며 그저 종이에 그려진 사람의 형태가 아니라 바람을 느끼며 나부끼는 옷을 입고 바쁘게 움직였을 사람들이 그림 속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윤두서, 진단타려도 부분, 1715년, 윤두서, 자화상, 1710년, 종이에 담채,
비단에 채색, 111x68.9cm, 국립중앙박물관 38.5x20.5cm, 고산 윤선도 전시관
석천의 모습을 두 그림을 통해 살펴 본 것처럼 윤두서의 작품을 통해 윤두서의 모습을 유추해 보는것도 소소한 재미이다.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다 나귀에서 떨어졌다는 진단의 일화를 그린 <진단타려도>에 등장한 주인공의 모습을 윤두서의 자화상과 함께 살펴보면 둥근 얼굴형과 수염 모습이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윤두서가 살았던 숙종시대가 환국 정치로 당쟁이 극심했음을 염두 했을 때 좋은 시절을 희망하며 그렸을 그림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는 유머를 발휘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화가가 의도하지 않게 자신의 얼굴로 그렸다는 생각을 자유로이 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진재해, <연잉군초상>, 1794년, 보물 제 1491호, 조석진/채용신, <영조 어진>, 1900년, 보물 제 932호
비단에 채색, 150.1x77.5cm, 국립고궁박물관 비단에 채색, 110.5x61.8cm, 국립고궁박물관
그런가하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물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림도 전하는데 어진이라는 존재만으로도 귀한 영조어진이다. 왕자 일 때와 왕이 되었을 때의 모습, 21세와 51세 때 모습의 변화를 확실하게 확인해볼 수 있다. 영조는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숱한 죽음의 위기를 넘겨야 했다. 불안했던 시기에 위축됐을 왕자 때의 모습과 당당한 왕의 모습이 큰 차이이기도 할 것이지만 영조는 재위 동안 10년마다 자신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고 하니 초상화 모델로서의 경험이 한결 여유로움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도 당시의 시대상황과 관계되어 있는데 연잉군 때 초상을 그린 진재해는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진재해와 교유했던 노론 사대부를 죽음으로 몰고간 묵호룡의 초상화 제작을 거부하기도 했다고한다. 당시 연잉군은 노론의 지지를 받는 입장이었기에 진재해의 노론에 대한 태도를 보았을 때 연잉군 초상을 그릴 때 진실한 마음 또한 담았을거라 추측할 수 있다. 그림 속 인물도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이를 화폭에 담은 화가 또한 사람이기에 화가가 어떤마음을 가지고 그렸는지도 마음속으로 느껴본다.
신윤복, <기다림>, 종이에 채색, 소장처미상
여인이 들고 있는 송낙이라는 모자와 버드나무는 불가를 상징한다.
김홍도, <자리짜기>《단원풍속도첩》, 27x22.7cm, 종이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행상>《단원풍속도첩》, 27x22.7cm, 종이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을 마음으로도 보는 법. 익숙하지 않지만 그림에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에는 확실하다. 저자의 말처럼 머리와 머리가 만나고 가슴과 가슴이 만날 때 그림을 보는 즐거움과 감동은 배가되는 것처럼 화가가 가슴으로 그린 그림은 가슴으로도 보도록 하여 더 큰 즐거움을 느껴보도록 해야겠다. 이 책은 그림을 마음으로 보는 법을 보여주는 걸로 그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