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회화』
최근 역사학의 연구동향은 국가라는 울타리를 넘어 보다 넓게 세계 전체를 시야에 넣고 다양한 국제 관계 속에 파악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히스토리라고 부르는 이런 신경향이 등장하는 것은 1980년대부터로 다분히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무관하지 않다.
1 16세기 중엽의 이암 <모견도>와 중국 명 선종(宣宗)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모견도>(15세기 전반)
미술사도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역사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오성보다는 감성적 이해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특수할 뿐이다. 따라서 한국미술사도 근래 들어 이와 같은 신역사학적 경향을 따르고는 연구가 적지않게 눈에 띄이고 있다. 즉 어느 한 테마를 다루면서, 고려나 조선이라는 국가 단위 안에서 설명하기보다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중국와 일본 사례를 통한 횡적 연구를 시도하려는 노력이다.
한국 미술사에 있어 국제적 관계란 다름 아닌 문화권 개념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 방법론으로 문화권 개념이 정식 소개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이다. 이동주 박사는 한국미술의 흐름을 중국 문화권과의 소통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우리나라의 옛 그림』에서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이는 지적에 그쳤을 뿐 국내의 미술사연구 역량은 기존 작품의 정리와 해설에 급급한 정도였다.
2 뒤러 <류트를 그리는 제도공> 동판화
사정이 바뀐 것은 90년대부터이다. 이 무렵부터 미술사연구 인프라가 크게 확대되었다. 유학생 귀국에 이어 여러 대학에 미술사학과가 개설되고 자연히 연구자 수가 늘어나면서 연구 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시각도 다양해지게 된 것이다. 이 시대에 일선에서 활동한 제3세대 학자군 사이에서는 국제관계를 시야에 넣은 연구 즉 문화권내의 영향과 교류를 통한 미술사 이해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았다.
이런 관심의 반증이라 할 만한 잡지가 1995에 창간된 학술지 『미술사논단』이다. 『미술사논단』은 창간사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연구자들이 연대해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아시아지역의 미술문화를 논하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고 그 목표를 분명히 했다. 이런 성격의 학술지 창설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홍선표 교수이다.
3 <민화 <노송도>(19세기)와 경덕진 민요 <청화백자 송수문 접시>(18세기)
말하자면 홍선표 교수는 한국미술사 연구에 동아시아적 연구시각을 본격적으로 가시화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홍 교수가 그와 같은 연구시각 아래 여러 학술지에 발표해온 논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역은 것이다.
4 >민화 <금강산도>(19세기)와 18세기 경덕진 민요의 청화백자 사례
특히 제2장의 ‘조선회화의 대외관계’에 수록된 ‘15,16세기 조선화단의 중국화 인식과 수용태도’ ‘명말청대의 서학서(西學書)의 시각 지식과 조선후기 회화론의 변동’ ‘에도시대 조선화 열기와 그 영향’ 등의 논문은 모두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론적 시각에서 해석된 조선미술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
5 민화 <책거리도>와 경덕진 민요의 문방구문양 도자.
더욱이 그는 19세기 들어 크게 유행한 민화에 대한 해석에서도 중국 민간 회화의 영향을 거론하는 대목을 눈여겨볼만한다. 민화의 책가도는 이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청대궁중에서 그려진 다보각도(多寶閣圖)의 영향을 받은 것이 지적돼 있는데 홍선표 교수는 그뿐 아니라 민화화조화 민화 속에 보이는 일련의 도상에도 중국의 경덕진 민요에서 제작된 도자기 문양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