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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 소설을 읽으며 풍속화를 보다] - 판소리, 풍속화가 담고있는 조선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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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소설을 읽으며 풍속화를 보다
김현주 지음 | 보고사 | 2013-10

조선후기, 판소리와 풍속화는 신흥 예술 장르였다. 이는 시대적 이슈를 반영한 것인데 당대 사건과 배경보다는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사람들의 생활 감정, 시대감각이나 정서적 측면을 전달해주고 있다.



김홍도, <송석원시사야연도> 1791년, 한독의약박물관
중인 계층의 아회를 기념한 그림

문화부흥기였던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때는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성장을 배경으로 문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이 시기에 일어난 문예 부흥은 군주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이 상당부분 호흡하며 전 국가적으로 이루어 졌는데, 중인 계층과 신흥부민층이 문예 취향의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많은 문예 장르 중에서 판소리와 풍속화는 당대 문예 부흥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데 모두 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장르이다. 여기에는 당대인들의 삶의 내용이나 사유구조, 예술의 사회 문화적 의미와 기능 등이 응축되어 있으며 당시 인상군상과 삶의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하나의 예술로 형상화했다.


판소리는 청각예술이자 언어예술이라면 풍속화는 시각 예술로 표현 매체가 서로 다른 장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매우 흡사한 것은 특별한 현상으로 판소리는 회화적 상상력이 발동되고 풍속화는 삶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판소리적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이 동질적인 성격을 갖게 된 배경에서 무엇보다 결정적인 원인은 그 예술의 담당 주체인 광대와 화공이 상당 부분 동질적인 성격이나 지향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판소리 광대는 천민 출신부터 사대부 출신의 양반 광대에 이르기 까지 다양했는데 동지니 선달이니 참봉이니 하는 벼슬이 주어지기도 했고 명창들 사이에서 인정하여 국창이라는 칭호를 받는 이도 있었다.

조선 시대 화가 또한 양반 사대부 화가, 도화서 화원 외에 조선후기에 오면 무명 서민 화가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패트런으로서의 임금과 사대부는 판소리와 풍속화의 애호 감상자이자 비평가 또는 감평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역할을 했고 예술은 이들을 충족시키는 것을 향해 나아갔다.



작자미상, <평양도>부분, 19세기
판소리가 관민의 대동놀이로서 가능했음을 알 수있는 그림이다.
명창 모흥갑이 중앙에서 창을 하고 둘레에는 일반 서민이 구경하고 있다.


애호 풍조는 부유해진 기술직 중인이나 아전·서리와 같은 하급 관료 및 요호부민들에게까지 확산되었고 서민은 판소리 광대들이 성장하고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하고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면서 패트런 집단으로 형성되었다.


"용렬한 뺑득어미 생긴 거동 볼작시면, 되박이마, 빈대코, 뱁새눈, 메주볼탱이, 동고리 가슴,
북통 배아지, 절뚝다리, 조막손이...(생략)"
박이정,『심청전』4


김홍도, <빨래터>, 국립중앙박물관


내용적인 면에서 보자면 판소리와 풍속화 둘 다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흥미를 위한 골계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춘향가>에서 방자, <흥부가>에서의 흥부와 놀부, <심청가>의 심봉사와 뺑덕어미, <적벽가>의 조조와 정욱 등이 그러하며 풍속화에서는 여인들이 빨래하는 광경이나 목욕하는 광경을 훔쳐보는 사람을 설정한다던지 움푹 패인 나무의 형상을 빌려 여근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처럼 춘화나 <춘향가>, <적벽가> 등에서 성적 표현을 자유분방하게 노출한 것 또한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유행한 유흥문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체 사회 분위기가 성적 개방 풍조로 흐르자 유교사회에서 금기시하고 억압했던 성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벽 위를 둘러보니 온갖 그림 다 붙었다. (중략) ․ ․ ․ 또 저편을 바라보니 상산사호(商山四皓) 네 노인이
바둑판 앞에 놓고
어떠한 노인은 백기를 들고 또 어떠한 노인은 흑기를 들고
또 한 노인은 구절죽장에 호로병 매어 에후리쳐 질끈 집고
요마만큼 하여 있고 ... (중략)
광충다리 춘화 그림을 역력히 그렸는데 구경을 다한 후 이도령이 춘향다려 이른말이.."
박이정,『춘향전집
』4


작자미상, <상산사호도>, 개인소장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상산에 숨은 네 신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사인물도


작자미상,《건곤일회첩》中 <춘화첩>, 개인소장

춘화의 유행은 풍류가 지나쳐 확산된 방만해진 성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에서는 이와 같은 설명과 더불어 <춘향전>이 담고있는 회화성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그림인 <삼고초려도>, <상산사호도>, <이백급월도>등의 고사인물도를 통해 당시 부벽도화 취향을 살펴보고 춘향의 방에 붙어있던 춘화를 통해 유행풍조까지 확인할 수있다. 또한 춘향이 그네를 타는 장면이나 목욕하는 장면 등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연상케한다.  

판소리와 풍속화, 유사한 듯 하지만 어떤 부분이 유사한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았다면 이책을 통해  세세하게 확인 할 수있다. 조선후기 사회의 여러 모습을 통해 판소리와 풍속화의 이면을 볼 수 있고 반대로 판소리와 풍속화를 통해 조선 후기 사회를 읽을 수 있음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판소리의 구절은 예상치 못했던 재미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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