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고연희 | 김동준 | 정민 외 | 태학사 | 2013-11
사도세자가 그렸다고 전하는 개 그림이 한 점 있다. 사도세자가 개를 길렀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궁궐 내에 개가 있었음은 기록(『승정원일기』)을 통해 알 수 있다.
傳 사도세자, <개그림>, 종이에 먹, 37.9x62.2cm, 국립고궁박물관
큰 개를 향해 반갑게 달려가는 개와 무덤덤한 큰 개는 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싶은 사도세자와
부자가 아니라 군신관계로만 대하며 엄격했던 영조의 관계를 표현한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 사도세자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 속 개와 흡사한 개 그림이 몇 점 더 전하는데 이러한 개를 그린 작품은 대부분 18세기 중반 궁궐 주변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변상벽, <개그림>, 18세기, 종이에 담채, 25x20cm,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사도세자는 그림에 관심을 가져 화원에게 명령해《중국소설회모본》이라는 화첩을 제작하기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애견을 그리고 주위 화원들에게 그리게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삶 자체만으로도 주위를 끄는데, 그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그림 속 개에 대한 이야기는 사도세자의 애완견으로 짐작되어 그림 속 분위기와 함께 여러 상황을 상상케 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주제로 시작된 이야기는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로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게끔 한다.
그림 속 미각을 주제로 한 글을 보면서는 그 동안 음식에 관한 그림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림들을 다른시각으로 보게되는데, 미각적 감상의 대상이 된 그림 속 식물들은 그 당시 진귀하여 쉽게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황집중, <포도>, 16세기, 모시에 수묵, 35x30cm, 간송미술관
고려의 이색은 <수정포도>라는 시에서 그 맛을 산첨미(시고 단 맛)이라 하였다.
김인관, <산수화훼축>'게'부분, 17세기,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먹음직스러운 상상의 열매 반도는 장수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미감을 자극했으며 그림에서 길상의 의미를 지닌 게 또한 실상은 좋은 술안주로 선비들 사이에서 술과 게는 상류사회의 고급선물이었다. 안중식은 장승업의 게 그림위에 게를 그려 안주로 삼아 술상을 벌이다 보니 그림이 완성되었다는 제발문을 남겼으며 김인관의 게와 물고기 그림에 강세황은 게를 밥반찬으로 삼아 입맛을 다셨다는 내용의 글을 남겨 그림 속 주제에 대한 미감을 나타냈다.
장승업, <화외소거> 부분, 19세기, 종이에 채색, 서울대학교박물관
그런가 하면 사연이 있는 그림을 주제로 한 단락도 있다. 소옹을 소재로 한 고사인물화는 사마광이 소옹을 기다리며 지은 시를 도해하여 작은 수레를 타고 꽃구경하는 화외소거(花外小車)와 두목이 지은 시를 도해하여 수레를 멈추고 앉아 석양의 단풍을 감상하는 장면을 그린 풍림정거(楓林停車)가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장승업의 작품 중 <풍림정거>로 알려진 그림은 주인공이 동자가 미는 수레에 탔고 꽃이 만발한 봄날임을 봤을 때 <화외소거>가 옳을 것으로 보았다. 이밖에 조선후기 화가인 김석신과 이수민은 동일한 호(초원蕉園)를 사용하여 후대에 혼돈되었으나 작품을 검토하여 바로 잡은 글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인상, <검선도>, 1654년이후, 종이에 담채, 96.7x61.8cm, 국립중앙박물관
선배 서얼인 유후를 위해 그린 그림으로 왼쪽 하단에 칼자루와 그 밑부분만이 살짝 그려있는 모습은 유일무이하다.
칼은 서얼들에게 신분적 불평등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는데 칼 집 속에 든 칼, 즉 무용지물인 칼로 자신들의 불우한 처지를
한탄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의 뽑혀있는 칼은 이 역설을 뒤튼것으로 서얼의 슬픔, 절말, 좌절감, 억울함, 불평의 마음,
자기 연민의 감정이 베어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몰골도라 불리며 서얼화가의 입장에서 서얼에 의한 서얼을 위한 서얼에 관한 그림을 남긴 이인상과 대나무 그림에 인생 전체를 걸어 명성을 얻고 독자적 화풍을 이루어낸 유덕장에 관한 글은 세속적인 장벽을 넘어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킨 힐링 메세지와 무슨 일이든 하나로 이름이 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창덕궁 인정전 유리건판사진과 봉황도
알고보니 신기하고 흥미롭고 깨닫게 되는 글 속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창덕궁 인정전의 봉황도에 관련한 주제가 그러하다. 20세기 초반에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들을 보면 일월오봉도가 있어야 할 창덕궁 인정전에 한 쌍의 봉황이 그려진 패널이 설치되어 있어 의문을 자아낸다.
1925년 이전에 일월오봉도 대신 봉황도가 부착된듯 한데, 한일합병을 거치면 순종은 융희제에서 이왕(李王)으로 격하되고 1907년부터 192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창덕궁에 기거하였기 때문에 한일 간의 주요 의정서는 창덕궁에서 체결 되었었다. 일월오봉도가 창덕궁에서만 제거된 것도 이 때문인 듯한데 1908년 일본인 건축가들에 의해 창덕궁 인정적인 개축되었을 때 메이지 황궁을 본뜬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봉황도가 제작·설치 된 것도 이 시기 전후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봉황이 단독으로 군왕을 상징할 만큼 우위에 있지 않음을 인식한 일제에 의한 선택이었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표장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봉황문에 관련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1967년 봉황표장은 대통령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표장과 관련한 조례로 명문화 되었다. 이를통해 역사적 전통이 사실상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임을 생각해보고 상징이 가진 권위를 의심해봐야함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마음, 감격, 사연, 표상, 소통을 키워드로 한 이 책은 각 키워드마다 전달하는 바가 크다. 전공이 다른 32명의 저자는 그림을 읽고 문화를 그린다는 이 책의 소제목에 맞게끔 그림을 통해 그린이의 마음부터 그림에 담긴 방대한 그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끔 한다. 신기한 것은 읽으면서 저자의 전공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는 것인데 더 신기한 것은 32명의 전문가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어쩜 이렇게도 잘 이해되고 읽는이의 흥미를 이끄는지. 이는 저자들의 글이 가진, 이 책이 가진 마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