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예술과 유가미학
임태승 | 이경자 | 정숙모 | 신은숙 | 이주형 | 김희정 | 최영희 | 채순홍 | 민병삼 | 차명희 | 강유경 지음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3. 4
공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공자가 말한 최고의 덕목으로 인(仁)이 제시되었다는 것밖에 공자의 사상과 가르침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공자의 철학에 대해 알고자한다면 어렵고도 어렵다.
그래서 공자를 빼놓고 말할 수없는 유가미학이라는 말도 어렵기 그지없다. 다만 이 책에서는 시(詩), 서(書), 화(畵), 악(樂), 무(舞), 금(琴)등을 주제로 동아시아 예술 속에서 유가미학의 가치기준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니 읽어보는 수밖에.
일단 우리가 어떤 작품을 좋다고 할 때 유가사유가 주류이데올로기였던 시기에 예술에서 중시되었던 것은 가치적 아름다움이었던 듯하다. 유가미학의 체계는 미적 가치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도덕적 가치를 합일하는 구조를 갖는다.
정조대왕, <국화도>, 보물 제 744호, 동국대학교박물관
조선후기 왕실 문인화의 특징을 살펴볼 수있는 작품으로 모진 시련이 닥쳐온다 해도
국왕으로의 품위를 지키고 백성을 위해 자신의 뜻을 펼치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담겨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개혁군주이자 학문과 예술을 사랑해 문화의 황금기를 이룩했는데 명필가로 알려질 정도로 글씨를 잘 썼으며 회화에 대해서도 높은 식견이 있어 직접 그림을 남기는 등 예술적 소양이 풍부했다. 정조는 회화와 학문을 서로 다른 장르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회화 속에 학문이 혼재된, 또는 일치된 예술로 인식했는데 정조가 추구했던 학문의 근본은 유학인 육경학(六經學)이었다. 육경은 유교의 최고경전으로 요순삼대(堯舜三代)의 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유가사상을 담은 원시유학의 기본서로 이러한 학문적 경향이 정조의 회화관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정조는 공자사상을 인용하여 학문과 예술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나아가 그림을 수신(修身)의 한 방편으로 활용했는데, 윤리적으로 모범이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 내용을 <오륜행실도>로 제작해 백성들에게 배포하고 감계적 효능을 통해 국가기강과 민심을 바로 잡고자 했다. 이는 심미교육을 덕육, 지육과 관련지어 예술과 정치, 윤리의 관계를 강조한 공자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조대왕, <파초도>, 보물 제 743호, 동국대학교박물관
정조 문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본래 파초의 미학코드가 자강불식(自强不息)임을 봤을때
늘 쉼없이 학문에 정진하고 덕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양동마을의 안산, 성주산
한국 유가의 종택과 서원에는 수려한 산을 주산 또는 안산으로 삼은곳이 많은데 성주산은 목형산의 정체를 이루고 있다.
목성의 기운이 서려 있어서 인지 양동마을에는 손소와 손중동, 이언적 등 문장이 뛰어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왕인 정조에 관련한 글을 예로 들었을 뿐, “인한 마을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인한 곳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라는 공자의 뜻에 따라 인한 곳(풍수적으로 좋은 곳)에 거처를 정했던 한국 유가의 터 잡기에 관한 글이나 유교적 봉건질서라는 문화권 하에서 화가로 활동했던 서위와 멸망한 왕족으로 유민생활을 해야 했던 팔대산인이 예술 추구의 변화를 시도하거나 새로운 삶을 추구하려다 광인 예술가로 평가된 이야기, 시(詩)·서(書)·화(畵) 삼절 중에 서와 화에 비해 관심에서 멀어진 시에 관한 이야기 까지 다양한 글이 책 한권에 담겨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의 검무
궁중에서 추어진 춤 종목 가운데 검무는 1493년(성종 24) 왕명에 따라 제작된
악전(樂典)인『악학궤범』에서는 보이지 않고조선 말기의 무보의 일종인『정재무도홀기』에서 발견할 수있다.
궁중 기록으로 검무가 등장하는 것은 정조 19년에 제작된 원행을묘정리의궤이다.
유교 경전 가운데 하나인『예기(禮記)』의「악기」편에는 “대저 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외물(外物)에 접촉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소리가 되어 나타난다. 소리가 상응하여 변화가 일어나면 곡자가 되는데 이를 음(音)이라한다. 음을 조화롭게 연주하고 그에 맞추어 춤추는 것, 이것을 악(樂)이라 한다.” 하였는데 교방의 춤 이야기나 선비들의 거문고 이야기도 유가미학에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어 흥미롭다.
다만 철학박사들의 글인지라 편히 읽고자 한다면 어렵기도 하지만 그 어려운 글을 근근이 읽어갈 쯤 다른 주제의 글이 시작돼 이 또한 상쇄된다. 한 권을 읽고 나면 어렴풋이 유가미학에 대해 알 것도 같은 건 책이 주는 효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