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 영국 화가가 그린 아시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지음 | 송영달 옮김 | 도서출판 책과함께 | 2012. 7
각종 매체의 보도나 TV의 프로그램에서 종종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궁금해 하거나 외국인들이 한국의 것을 좋다고 말해주는 것에 신나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꼭 비굴한 모습은 아님에도 괜시리 짜증이 밀려온다. 우리 걸 좋아해주다니 하며 황송한 것일까? 마치 어른에게 인정받고 좋아하는 철부지 아이 같아서 자존감이 없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의 그림이 흥미로운 것은 단지 그런 철없는 뿌듯함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정월 초하루 나들이 New Year's Shopping, Seoul, 채색목판화, 25.7x37.5cm
그녀는 1915년 봄 일본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20여 년간 중국, 일본, 한국, 필리핀 등 여러 동양의 나라들을 여행하며 인물화와 풍속화를 남겼다. 당시 유럽에서 동양의 문화에 대한 동경과 오지여행이 유행이었다고 해도 그녀의 그림을 보면 특별한 경우임을 알 수 있다. 1946년 엘리자베스의 언니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Elspet Keith Robertson Scott)과 공저로 《올드 코리아 : 조용한 아침의 나라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을 뉴욕에서 출간하기도 하였다.
두 명의 선비Two Scholars 수채화
키스 자매가 한국을 찾은 것은 1919년이지만, 엘리자베스 키스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후에야 전북도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고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원저는 《동양의 창Eastern Windows》으로, 만 9년간 동양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린 그림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일본에서 자신의 그림 100여 점을 목판화로 만들고 1924년에 영국으로 돌아갔는데, 동양 각지를 여행하며 언니 엘스펫에게 보낸 편지와 그 판화들 몇 점을 실어 출간한 것이다. 동양 문화와 그녀 자신의 그림을 대중에게 소개하게 된 책이다.
원저에 포함된 그림은 12점이지만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옮긴이가 그림을 더하여 80여 점의 그림을 추가 수록했고, 옮긴이가 개인적으로 1차 사료를 수집, 연구하여 키스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해제를 추가했다.
키스의 그림은 다분히 일본 판화느낌을 주는데, 이는 그 제작방식과 관련이 깊다. 키스가 쓴 책의 머리말에는 그녀가 일본식 목판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씌어 있다.
“몇 해 전, 나는 도쿄에서 한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수채화 개인전을 연 일이 있다.... 그 전시회에 일본 목판화 출판업계에서 굴지의 인물로 꼽히는 사람(와타나베 쇼자부로 渡邊庄三郞 )이 왔다가 내 그림 중에서 <달빛 아래의 서울 동대문>이라는 수채화를 꼭 목판화로 만들라고 권하였다..... 이 책에 삽입된 그림은 대부분이 목판화로, 일본의 전통 방식에 따라 제작되었으며, 오랜 전통에 따라 장인들이 목판을 각인했다....”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 Moonlight at East Gate, Seoul, 1920, 채색목판화, 43x39.7cm
이 책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는 그녀가 낯선 문화들을 언니에게 수다스레 전달하는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결혼식 구경을 했을 때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온종일 제일 바쁜 사람은 신부의 어머니였어요. 훌륭한 한국 안주인 행세를 하려다보니 개중에 가장 지저분한 사람도 신부의 어머니였죠...다 먹은 뒤에는 신부 어머니든 누구든 음식 담당에게 그릇을 되돌려주죠. 그럼 그릇을 받아든 여자는 잽싸게 손을 놀려 국물은 커다란 국솥에 따르고, 건더기는 손으로 건져 국수 통에 던져 넣는답니다.”
신부행차Marriage Procession, Seoul, 1921, 채색목판화, 38x25.7cm
시골결혼잔치Country Wedding Feast, 1921, 채색목판화, 36x33.6cm
한국신부Korean Bride, 1938, 채색목판화, 29.5x41cm
함흥에 머물면서는 그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과 사람들에 대해서 꼼꼼히 적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그 당시의 모습이 더 궁금하다.
“장날이면 함흥은 활기를 띠어요. 키가 크고 허리가 꼿꼿한 여인네들이 머리에 잔뜩 물건을 이고 날라요. 너나 할것 없이 아름다운 붉은색 고추 다발을 이고 있더군요...”
“일본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 고도시의 아름다운 성문과 성벽을 부셔버렸답니다. 함흥에서는 전통 방식에 따라 도자기를 만들어요. 개중에는 서울의 박물관에서 본 전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들도 있고요.. 사람들 말이 함흥 사람들은 똑똑하고 용기가 있다는데 정말 그렇게 보인답니다.”
원산 Wonsan, Korea, 1919 채색목판화, 23.7x37cm
치마를 치렁치렁하게 입고 그림도구와 짐을 짐꾼에게 들리고 금강산을 찾아가는 호기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금강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금강산을 오르노라면 영혼이 몸을 벗어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 같다던 H씨의 말 기억하세요? 금강산을 오르다 보면 구름 위를 걷게 되는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영혼이 몸을 벗어난 척을 하긴 무리네요. 오히려 그 반대죠!”
금강산 절 부엌A Temple Kitchen, Diamond Mountain, Korea, 1920, 채색목판화, 26.7x34.5cm
금강산의 한 사찰에 도착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넓은 사찰 부엌은 참으로 매력적이에요. 벽을 등진 곳에는 무쇠나 동으로 만든 커다란 밥솥이 설치돼 있고, 부엌용품은 구리나 놋으로 만들죠. 우연히 문이 열려 있을 때 부엌 앞을 지나친 적이 있는데, 마침 해질녘이었어요. 하얀색 옷을 입은 사내아이가 물동이를 머리에 인 채 긴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고, 아이의 등 뒤로는 햇빛이 비추었지요....솥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올라왔고, 벽 위쪽에는 부엌 수호신의 형상이 아름답게 채색돼 있었어요....”
금강산, 전설적 환상The Diamond Mountains, A Fantasy 1921, 채색 목판화 17.6x36.5cm
“그 늙은 짐꾼의 따뜻한 마음씨는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험하디험한 언덕을 오를 때면 미소와 몸짓으로 줄곧 우리를 격려해주었죠....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불어난 냇물은 황톳빛으로 바뀐 채 격류를 일으키고 있었죠....그러다 큰 돌풍이 몰아치면서 산봉우리에 드리웠던 신비스러운 운무가 쓸려 내려갔는데, 그 광경이 어찌나 장관인지 겁에 질린 와중에도 꼼짝않고 서서 감탄해 마지 않았답니다.”
이밖에 중국에서는 북경의 사람들, 라마교의 승려들, 상해, 소주, 광동, 홍콩 지역의 풍물을 글과 그림으로 보여주며, 필리핀 모로 왕족, 일본 북해도 아이누 족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 사진보다 더 선명한 당시 한국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일 듯하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