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권 개념으로 본 한국미술의 단면, 동아시아 회화교류사
한정희 지음 | 사회평론 | 2012. 5
헌팅턴이란 국제정치학자는 냉전 이후의 세계를 묘사하면서 문명對 문명이 충돌할 것이라고 한 적이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의 주요 문명으로 7개 내지 8개를 꼽았는데 세계지도 위에 색깔로 분류한 이 문명들을 보면 한국은 중국과 함께 중화 문명에 속한 것으로 칠해져 있다.
민족국가 개념에 익숙한 현대의 한국인으로 보자면 적이 받아들이기 힘든 분류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더욱이 그는 고립된 문명이기는 하지만 일본 문명을 따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보았으니 말이다) 국제정치학에서 보는 이런 시각으로 한국미술을 이해한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국제정치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이기도 했던 이동주 교수는 한국미술을 소개하는 책을 쓰면서 첫머리에서 문화권 얘기를 끄집어냈다. 한국은 중국문화권에서 속해 있으면 늘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한 것이다.
강세황(姜世晃) <방공재춘강연우도(倣恭齋春江煙雨圖)> 29.5x19.7cm 개인
즉 한국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풀이하기 위해서는 문화권내의 공통사항을 외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근세 들어 오래 동안 단절되어온 중국과의 교류 그리고 미흡한 연구 성과 등으로 인해 한국미술 속에는 문화권적 시각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강세황(姜世晃) <죽도(竹圖)> 53x32.4cm 개인, 유덕장(柳德章) <신죽(新竹)> 57.5x39.5cm 개인
이 책은 동아시아(90년대 들어 문화권이란 말 대신 사용하는 용어이다)라는 틀 속에서 한국미술을 살펴본 논문들을 수록한 것이다. 여러 학술지나 학술대회에 발표한 논문을 다시 모은 것이라 다소 중복되는 내용도 있으나 한국미술을 한중일이라는 보다 확대된 틀 속에서 규명하고자 한 글들이라 일독의 가치는 있다고 본다.
김희성(金喜誠) <방김영국신선도(倣金明國神仙圖)> 30x55.3cm 삼성미술관 리움
전체 논문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중국 벽화와의 연관성을 지적한 글들과 18세기 이후 한국회화에 보이는 중국과의 교류 문제를 다룬 글들로 나눌 수 있다. 그중 한편을 소개하면 동양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방작(倣作) 문제이다.
정수영(鄭遂榮) <방자구산수도(倣子久山水圖)> 101x61.3cm 고려대 박물관
이는 중국에서도 주로 명대 동기창(董其昌)에서 시작돼 당시 중국통으로 유명했던 심사정(沈師正), 강세황(姜世晃)에 의해 한국에 정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동기창은 창작은 모방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방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명대 이후에 방작의 대상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작가는 원나라 작가 황공망이고 이는 한국에도 그대로 전해져 심과 강에 의해 되풀이 된다고 했다.
이의양(李義養) <방다니 분초 산수화(倣谷文晁山水畵)> 1811년 131.3x54.5cm 부산박물관
그런데 강세황의 경우는 이런 중국 작가의 방작 이외에 한국작가로는 공재 윤두서의 산수도와 수운 유덕장의 묵죽도를 방(倣)하고 있어 자의식이 분명한 작가로 풀이한 점이 이색적이다. 또 통신사를 수행한 이의양(李義養)은 특이하게 중국작가가 아닌 일본의 남화가인 다니 분초(谷文晁)의 산수화를 방하고 있어 당시 방작의 범위는 중국 작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소개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라 권하기에 어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