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얼굴
조선미 지음 | 사회평론 | 2012. 6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이다. 어떤 인물이 당선될지 궁금한 것만큼 역대 왕들의 모습도 궁금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사료를 통해 어떤 정치를 펼쳤으며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지만 그 못지않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외적으로 어떤 위엄을 가지고 있었는지이다.
이러한 이유로 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데 어진이 특히나 중요한 이유는 그 시대 최고의 화가가 동원되어 수준 놓은 작품이 탄생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실의 복식이나 공예자료로도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평안남도 용강군 남포시 와우도에 있는 감신총 인물 벽화>
왼쪽의 인물은 왕의 옷인 홍포와 흑나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벽화 배경에는 '왕'자가 쓰여있어 고구려 왕의 초상이었을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옛 초상화는 털끝 하나라도 틀리면 그 사림이 아니다 라는 논지하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왕의 얼굴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태조 어진> <조선시대 임금이 앉았던 용상>
1872년 이모된 어진 어진 속 용상과 유사하다.
어진 제작은 도사(圖寫), 추사(追寫), 모사(模寫)등 세 종류로 구분되는데 도사란 군왕이 생존해 있을 당시 모습을 보며 그린 것이고, 추사란 사후에 그린 것, 모사란 이미 그려진 어진이 훼손되었을 경우 범본으로 신본을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순종의 어진을 그리고 있는 이당 김은호
선발을 통해 뽑힌 어진 화사는 직업화가들에게 있어 최고의 영예였는데, 얼굴부분을 담당했던 집필화사, 또는 주관화사와 임금 몸체의 주요하지 않은 부분을 담당한 동참화사, 채색을 도운 수종화사 등 세 등급으로 나뉘어졌다.
제대로 보관된 왕의 초상이 거의 없듯 왕자의 초상도 거의 없다.
이 작품은 가슴에 대군만 착용할 수 잇는 기린 문양이 있어 왕자의 초상으로 추정된다.
<철종 어진>
전해지는 어진이 대부분 인선관본인데 반해 유일한 전복본(융복본)이다. 한국전쟁 때 부분이 소실되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왕들은 거의가 어진을 제작하였는데, 다만 인종은 생전에 어진을 그리지 않았을 뿐더러 사후에도 그리지 말라고 유언을 남겨 제작되지 못했으며 연산군이나 광해군의 어진은 제작여부를 알 수 없다. 그 외 인조, 효종, 현종은 어진 제작에 대한 기록이 없고 숙종 이후부터는 활발하게 어진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어진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에도 한국전쟁 때 상당수가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현존하는 어진의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외국인이 그린 고종
일본인이 그린 고종과 명성황후
고종은 비중없이 그려졌고 명성황후는 우키요에 미인도 식으로 그려졌다.
현재 전해오는 어진은 태조어진 1점과 영조어진 2점, 철종어진 1점, 익종어진1점, 고종 어진 몇 점과 초본 상태인 순종 어진 2점이며 외국인 화가에 의 해 그려진 고종의 초상이 전해오고 있다. 일본인이 그린 작품에서는 왕의 모습이 왜곡되어 그려졌으며 기록화에 임금의 모습은 형상화되지 않던것과는 달리 그림속에 고종의 모습이 그려져 고종 연간에 오면 이전의 관념이 희박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군주상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군주의 초상화에는 시대의 미감이나 나라의 정세 등이 담겨져 있어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다면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것 같다.
한국, 중국, 일본은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해있고 예술에 있어서도 공통된 부분이 있지만 차이점 또한 있듯이 한국의 어진, 중국의 황제 초상, 일본의 천황 초상에서도 비슷한 면이나 다른 면을 확인할 수 있다.
<당 고조 입상> <당 태종 입상>
<송 인종후 좌상>
중국의 황제상을 살펴보면 후대에는 대부분 좌상을 그리지만 당 고조와 당 태종 상은 입상으로 그려졌으며 송 인종후 초상은 단독상이 아니라 양쪽에 시녀를 대동하여 마치 삼존불 형식을 연상케한다. 중국의 황후상은 송대 이후 청대까지 고루 전해오는데 이는 한국이나 일본과 다른점이라고 할 수 있다.
<칭기스칸 초상> <순종의 부인 다기의 반신상>
원대 초상화의 특징인 사실적인 묘사를 볼 수 있다.
<명 선종 행락도>
<명 영종 정통제의 좌상>
원대에는 사실적인 묘사가 이루어졌으며 명대에는 다양한 유형이 제작되었는데, 사회가 안정되고 생활이 풍족했던 선종조에는 제왕의 행락도가 제법 나타난다. 그리고 영종의 초상이후 정면관이 본격 도입되어 명, 청대의 황제 및 황후 조상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났으며 사대부 계층의 초상화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황제상에 풍속화적 요소가 도입된 것을 볼 수있다.
<청 태조 좌상>
황제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는 조복을 입고 있다.
<강희제 조복상>
강희제 연간부터는 조복의 문양과 색채가 이전보다 화려해진다.
<강희제 편복 사자상> <이하응 초상>
문방청완 취미를 반영하는 초상화 형식은 이하응 초상 등 18-19세기 조선시대 사대부 초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옹정제 반신상>
유럽인의 모습으로 등장한 모습
낭세녕이 그린 작품에서 건륭제는 문수보살로 등장한다.
청대에는 위엄 있는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조복상 외에도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는 모습, 말은 타거나 수렵하는 모습, 가족과 어울린 일상생활 등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또한 다른 인물로 꾸민 분장초상화가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져 눈길을 끈다.
<하나조노 천황상> <하나조노 법황상>
천황 자리에 있을 때의 하나조노 천황상과 출가후의 초상
일본의 천왕상을 살펴보면 천황으로 재위할 동안에만 그려진 것이 아니라 상황의 신분이 된 이후나 출가를 한 후 절에 들어가 법황이 된 이후에도 그려졌다. 그리하여 속체상과 법체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속체상은 천황 재위 때나 상황일 때 그려진 작품을 말하며 법체상은 출가를 한 이후에 그려진 작품으로 스님 진영과 마찬가지로 법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고토바 천황상>
간단한 선묘로 인물의 특징을 잡아낸 니세에 방식
<도쿠가와 이에야스 초상>
배경에 휘장이 있고 휘장 뒤로는 신비로운 풍경이 보이는데 이는 신격화되는 인물의 초상에 사용되는 방식이다.
천황상을 지칭하는 미에이는 천황의 초상화 외에 덕이 높은 고승이나 위대한 인물의 초상화를 지칭하기도 하며, 열 명의 여자 천황이 있었음에도 모두 남자 천황의 조상화만 전해 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천황, 섭관, 대신 영도권>
군주를 비롯한 실제 지배에 참여했던 이들을 모두 포함한 기록용 초상으로 한, 중, 일 삼국 가운데 군주상을 한 두루마리에 집어넣은 것은 일본만의 특수한 현상이다.
일본 천황상은 전신부좌상이 대부분인데, 많은 인원이 참배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사찰에서 명복을 빌거나 추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아담한 크기가 많다. 이는 한국의 어진과 중국의 황제상이 조정에 의해 봉안, 향사되고 있었던 점과 차별되며 정면관이 시도되지 않은것 또한 차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한, 중, 일 군주의 초상화를 보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것은 별 의미없을지도 모르나 비교되는 점들이 눈에 띄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거기에 적절한 설명과 각 나라의 초상의 특징을 정리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강점이다. 게다가 덤으로 서양의 군주 초상도 함께 볼 수있으니 더할 나위없다.
이 책은 저자가 강연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라고 하니 강연으로 들었다면 얼마나 더 재미있었겠는가 싶다. 그러나 즐거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이렇게 출간되었다는 점은 강연을 놓친 이들에게 크나큰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