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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그림속 여백을 걷다] - 그림을 통해 돌아보는 나의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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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속 여백을 걷다
김정숙 지음 | 북포스 | 2012. 5

여백의 美, 흔히들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여백의 미를 언급한다. 말 그대로 남겨져 있는 부분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여백의 미는 순백의 달항아리에서 절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옛 그림 속에서도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책 제목이 '옛 그림 속 여백의 아름다움'이었다면 아마 식상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여백을 걷는다는 말이 와 닿는것은 그 동안 그림 속 여백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학자와 주부의 경계에서 일반인도 공감할 수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이 책을 썼다고 술회하고 있는데, 저자의 말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윤용, <협롱채춘>, 종이에 수묵담채,                                       윤두서, <채애도>, 비단에 수묵,
           27.6x21.2cm, 간송미술관                                               
30.2x25cm, 개인소장
윤용의 그림은 할아버지인 윤두서의 그림 속 오른쪽 인물과 자세가 비슷하지만 좀 더 사실적이며 사색적이다. 그림 속 여인이 나물을 캐다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이 그림을 보며 남자가 될 수 있다면 다른 소원이 없으며,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책속에 파묻혀 늙어가고 싶다고 상상한 농암 김창협의 딸인 운정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꿈이 있으나 펼칠 수 없고 재주가 출중해도 소통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 눈에 익숙한 그림을 소개한다는 점이나 저자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은 여느 책에서 본 듯하나 각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림의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발췌하여 흥미를 이끈다는 점에서 몰입도를 높인다.


신사임당, <초충도>8폭中 수박과 들쥐, 종이에 채색, 33.2x28.5cm, 간송미술관
신사임당은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결혼 후에도 재능과 인격을 존중해주는 남편을 만났기에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 이 그림과 관련하여 발레리나 강수진의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강수진은 평소 흉한모습인 자신의 발을 내보이지 않았으나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강수진의 발은 남편이 연애시절 그녀의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해주고자 촬영하여 선물한 것이다. 사람은 존중받을 때 콤플렉스조차 자부심으로 승화되고 자존감도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그림에 대한 소개나 작가에 대한 설명만을 쉽게 했다면 이 또한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제목에서 말하듯 그림속의 여백, 즉 그림 속 한 구석을 거닐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강세황, <자화상>, 비단에채색, 88.8x51cm, 개인소장
'저사람은 누구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구나
머리에는 오사모를 쓰고
몸에는 야인의 옷을 입었네
여기에서 볼 수 있다네
마음은 산림에 있지만
이름은 조정에 오른 것을
가슴에는 많은 서적을 간직하고
필력은 오악을 뒤흔드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나 홀로 즐길 뿐
늙은이의 나이는 일흔이고
호는 노죽이라네
이 자화상은 나 자신이 그린것이고
글도 나 자신이 지었다네'

야인의 복장에 관모를 쓴 강세황의 자화상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데, 화제를 통해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을 보며 나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게 되는데 이름, 나이, 사는 곳, 하는 일을 말한다고 해서 그게 나일까?.. 윤두서의 <자화상>도 그러하고 옛 자화상을 보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양팽손, <산수도, 종이에 담채, 88.2X46.5cm, 국립중앙박물관

그런가 하면 내 주변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하는 그림이 있으니 바로 양팽손의 <산수도>이다. 양팽손은 안견파의 화풍을 계승한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 전하고있는 작품의 수가 많지않으며 잘 알려진바가 없다. 그러한 양팽손의 일화 중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감동을 준다. 양팽손은 여섯 살 위인 조광조와 함께 벼슬살이를 하며 우정을 나눴는데, 기묘사화때 조광조를 위해 항소하다 관직이 삭탈되었으며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조광조의 시신을 손수 수습했다. 어명을 받고 죽은 역적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불법이었으나 시신이 들판에 버려져 짐승의 해를 입는것을 막았던것이다. 이 그림은 나에게도 양팽손과 같은 벗이 있던가 생각해 보게끔 하는데, 일화를 알고 난 후 보는 그림은 사뭇다르게 와닿으며, 그림에 적힌 오언시의 내용또한 은둔 선비로서의 심정을 짐작케 한다.


정약용, <매조도>, 비단에 담채, 44.9x18.5cm, 고려대학교박물관
시집간 외동딸이 그림 속 새들처럼 행복하게 살라는 당부를 그림으로 나타냈다.

'그냥 누가 그린 그림' 정도로만 알고 지나칠 수 있는 그림을 좀 더 입체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데, 정약용의 매조도 또한 그러하다. 인도에서는 원숭이 잡는 법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목이 가는 두꺼운 유리병에 땅콩을 넣어 숲속에 두면 원숭이가 병에 손을 넣어 땅콩을 움켜잡고는 손을 빼지 못해 사냥꾼들에게 잡힌다고 한다.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는 원숭이의 모습에서 사람,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정약용은 그 땅콩을 놓고 자기 완성을 이루어냈다. 정약용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강진으로 유배되었는데, 귀양살이 시절 피해의식을 갖기보다는 정신적 안정을 회복하고 자기 완성을 이루어 냈다. 귀양살이 18년 동안『목민심서』와『여유당전서』등 500권에 달하는 책을 썼으며, <매조도>를 그려 시집간 외동딸에 대한 염려와사랑을 보여준다. 정약용의 이야기는 유배지에서 세한도를 남기고 추사체를 완성한 추사 김정희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힘든 시간동안 누군가를 원망하기 보다 자기 완성을 이룬 인물들의 이야기는 스스로를 반성하게끔 한다.

이 밖에 다양한 그림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데, 여백이 아름다운것은 생각할 여지를 그리고 여백속을 거닐 여유를 준다는 점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그림 속 여백을 직접 걸을 수는 없지만 그 여백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보게끔 한다는 점은 그림에 대한 흥미와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24.11.1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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