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옷, 그 아름다움의 비밀
권혜진 지음 | 혜안 | 2012. 5
지금의 서양식 드레스도 그러하지만 연지곤지 곱게 찍는 혼례 날은 여자의 일생 중에 가장 화려한 옷을 입는 날이다.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화려한 장식과 치장이 엄격히 절제되었던 조선시대에도 혼례복인 활옷에는 아름다운 복식 자수를 하였고, 엄격한 신분사회였음에도 혼례 날 만은 궁중예복의 착용이 허용되었다. 혼례는 인륜지대사인 만큼 ‘예외’라는 것이 적용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활옷을 통해 그러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궁중의 활옷과 민간의 활옷은 구분되지만 모두 자수라는 장식기법이 사용되었고 귀한 예복의 색으로 여겼던 홍색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모든 계층에서 향유할 수 있었던 복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활옷에 대한 연구서로 자수무늬의 변화를 분석하여 그 과정 등을 설명함으로서 활옷의 아름다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먼저 궁중 여성 혼례복을 살펴보면 적의, 노의, 장삼, 원삼 등을 들 수 있는데, 왕비 이하 후궁, 공주에까지 해당하는 혼례복은 장삼과 노의 두 가지 이다. 옷감과 색상의 차이점은 없지만 그 구분은 표면 장식을 통해 이루어 진 것으로 추측된다. 노의의 경우 ‘금원문’이라는 명칭이 항상 붙어 있고 명확한 무늬의 형태, 직금이나 금박으로 제작된 금장식의 예복이라면 장삼은 자수를 비롯한 장식에 소요되는 재료의 기록이나 무늬의 특징을 찾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궁중 홍장삼인 복온공주 활옷에 나타난 바와 같이 자수와 금장식이 모두 사용되었으며 유려한 곡선 형태였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조선초 실록의 기록에는 노의가 장삼보다 높은 격의 예복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조선후기『궁중발기』의 기록을 통해 격차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복온공주 활옷
현재 전하고 있는 국내 소장 활옷유물은 궁중활옷과 민간 활옷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어 구분이 어렵다고 한다. 다만 궁중활옷으로 확인되는 유물은 순조의 제2녀인 복온공주가 1830년 가례에 착용했던 유물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창덕궁에 보존되었던 궁중활옷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다만 그 복제본이 이대박물관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복온공주 활옷은 일반적인 활옷의 특징인 홍색 겉감에 청색 안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겉감은 두 종류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다른 활옷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복온공주 활옷의 자수무늬는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문자무늬나 길상무늬 대신 다양한 꽃무늬와 나비무늬 보배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이 활옷은 노의가 아닌 궁중 홍장삼 유물로 판단할 수 있으며 금박과 자수 장식이 공존하여 활옷이 자수로만 장식되기 이전 단계의 궁중 홍장삼의 유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창덕궁 활옷 복제품,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창덕궁 활옷 복제품, 단국대 석주선 기념박물관
또한 창덕궁 활옷과 같이 자수로만 장식된 궁중 활옷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여러 상징성을 지닌 자수무늬가 더해지면서 금장식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시카고 필드 박물관 소장 활옷
시카고 필드 박물관 소장 유물 중 유물번호 33157활옷은 자수와 금박 두 가지 장식 기법이 사용되어 복온공주 활옷과 비슷한 조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카고 필드 박물관 소장 활옷
시카고 필드 박물관 소장 유물 중 유물번호33156 활옷은 앞 길에 시문된 구봉무늬가 창덕궁 활옷 구봉무늬에 나타난 새끼봉황의 수와 배치가 서로 동일하다. 또한 활옷 뒷길 중앙에 시문된 복숭아무늬에서도 같은 도상을 찾을 수 있으며 복숭아무늬 위로 나타나는 서각과 장승의 배치또한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서양의 컬렉터들에게 수집되어 해외로 유출되어 해외박물관에 소장된 활옷은 복온공주 활옷이나 창덕궁 활옷과 도안이 유사함을 살펴볼 수 있다.
자수로 장식한 활옷은 조선말기 왕실에서 양반가, 민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혼례에서 착용하였는데 혼례복을 대여해 주었던 대의풍속으로 인해 조선왕실의 붕괴 이후에도 혼례복으로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었다.
자수박물관 소장 활옷
전체적인 자수무늬는 궁중 활옷의 무늬와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유난히 짧은 앞길과 긴고름, 긴 동정과 한삼위에 덧댄 옷양목 조각등 민간 활옷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궁중 활옷을 재활용해서 만든 유물인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려대박물관 소장 활옷
궁중 활옷과 무늬의 구성이 거의 동일하나 무늬에 있어서 순박한 민간 활옷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다. 소재의 사용과 자수실의 색상, 자수도안 등 근대 이후 민간에서 제작된 활옷으로 추정된다.
민간 활옷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궁중 활옷의 조형성을 모방한 것으로 문자무늬와 동자무늬 등 길상무늬가 더해진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근대 이후의 활옷으로 사생풍의 회화적 도안이 특징이다. 근대 이후 일본 자수의 영향이 일부 발견되기도 하지만 민간 고유의 정서와 미감을 드러낸다.
청주대박물관 소장 활옷
연분홍, 연보라 등 전통자수에서는 볼 수 없는 색상으로 이루어져 근대 자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물결과 파도에 둘러싸인 오리는 일본 자수의 영향을 받은 일본 회화풍 도안으로 판단된다.
활옷에 나타난 무늬는 궁중 활옷과 민간 활옷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궁중활옷의 경우 도안이 치밀하고 일정한 도식적 양식이 지켜지는 반면 민간 활옷은 도안 양식과 구조의 변화가 커 다양한 도안 형태가 존재한다. 책에서는 활옷에 새겨진 무늬를 비교할 수 있도록 도판을 첨부하여 설명하고 있어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연구서인 만큼 가볍게 읽기에는 다소 어렵지만 기록에 의거한 고증이나 무늬 분석, 유물 비교를 통해 활옷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저 활옷은 예복이라는 간단한 지식에서 벗어나 활옷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무늬를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