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림의 전통
안휘준 지음 | 사회평론 | 2012.2
한국미술사가 연구되기 시작한지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역사 속에서 역대 미술사학자의 연구와 노력에 의해 이제는 어느 정도 기틀이 잡혔다고 할 수 있다. 한국미술사 중에서도 특히 회화사가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안휘준선생은 조선시대 회화편년을 초기(1392-약1550), 중기(약1550-약1770), 후기(약1700-약1850), 말기(약1850-1910)로 나누어 화풍의 변화를 설명했고, 후학들은 이를 바탕으로 각 시기 회화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회화사라는 개념의 기틀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던 저자의 39번째 책인 『한국 그림의 전통』은 1988년 출간된『한국회화의 전통』을 수정 증보해 출간한 책으로 종전에 저술했던 책이나 여타의 책들과 차별성을 띠고자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재미있고 흥미롭게 저술된 책들이 출간되어 일반인들에게 한국회화의 재미를 알려주었다면 이 책은 개설서이자 연구서의 성격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만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한문 혼용의 문장을 한글 문장으로 바꾸어 부담을 줄인 부분에서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한국회화 총론으로 시작하여 삼국시대의 산수화, 통일신라 및 발해의 산수화, 고려시대의 산수화, 조선시대 산수화(초기, 중기, 후기, 말기)에 대한 양식적 특색과 변천에 대한 기술은 저자의 여타 책을 통해서도 습득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후학들의 학문적 성과를 각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하여 연구자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이장손, <산수도>, 15세기, 견본담채 최숙창, <산수도>, 15세기, 견본담채 서문보, <산수도>, 15세기, 견본담채
각 39.6x60.1cm, 야마토분카칸 소장
조선초기 작품으로 남종화풍과 관련된 고극공계 미법산수화풍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정근, <미법산수도>, 16세기, 지본수묵, 23.4x119.4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중기에 남종화가 소극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명대 미번산수화의 영향을 수용한것으로 보여진다.
정선, <인곡유거>, 18세기, 지본담채, 27.3x27.5cm,간송미술관
겸재 정선은 남종화법을 수용하여 진경산수화의 새로운 면모를 개척하기도 하였는데, 노년기에 그려진 <인곡유거도>는 전령적인 남종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심사정, <방심석전산수도>, 1758년, 지본담채, 129.4x61.2cm,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은 남종화풍과 북종화법이 혼함된 절충화풍을 구사하였는데, 근경의 서옥과 그 안에 독서하고 있는 선비, 원경의 주산과 근경의 언덕묘사, 수지법등에서는 남종화법을, 왼편 중경의 절벽 표현에서는 북종화법인 부벽준을 구사하였다.
강세황, <벽오청서도>, 18세기, 지본담채, 30.1x35.8cm, 개인소장
강세황은 중국화보를 통해 화풍을 형성하였는데, 이 작품은『개자원화전』에도 실린 명대 오파의 개조(開祖) 심주의 작품을 방(倣)하였다.
이인상, <송하관폭도>, 18세기, 23.8x63.2cm, 국립중앙박물관
이인상은 화보를 참조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는데, 조선후기 남종화의 발달에 적지않게 기여했으며 남종화가들 중 격조 높은 경지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전기, <계산포무도>, 1849년, 지본수묵, 24.5x41.5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말기의 남종화는 김정희 일파에 의해 적극적으로 구사되었는데 이 작품에서 거칠고 소략한 칠법과 간일한 구성은 김정희의 세계와도 상통하는 것으로 이 시대의 남종화의 일면을 대변한다.
남종화에 대한 장에서는 남종화가 18세기경에 처음 전래되어 수용되었고 수용되자마자 유행한 것으로 보는 보편적 경향과는 달리 그 보다 훨씬 전에 수용되었음을 밝히고자 남종화의 전래 및 수용에 대해서 설명하며 수용문제에 관해 검토하였다. 남종화에 대한 설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국회화에 대한 내용과 중국에서 전래된『고씨역대명인화보』,『개자원화전』,『당시화보』,『십죽재화보』등 화보의 영향인데 이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가장 먼저 남종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공재 윤두서를 시작으로 남종화를 수용하고 소화하여 새로운 면모를 개척한 화가들에 대한 설명이 남종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필자미상, <감로도> 부분, 1649년, 마본채색, 220x235cm, 국립중앙박물관
연희 장면 중 줄광대등이 풍속화들과의 친연성을 보여주어 상호연관성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문인계회와 계회도의 변천에 대한 설명과 보는 이의 흥미를 끄는 풍속화편은 조선후기에 집중되어 무심히 지나쳤던 조선시대 이전의 풍속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며, 불교회화 중 감로도 하단의 장면들도 일반 풍속은 아니나 다시 한 번 눈여겨 볼 기회를 제공한다.
곽희, <조춘도>, 1072년, 견본담채, 158x108.5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회화교섭에 관한 장은 회화사를 나열한 책과 차별화를 두었는데, 한국회화사에서 제일 중요한 외국의 회화라 할 수 있는 중국회화는 동아시아 회화의 원류이자 근본이기 때문에 한국회화와의 관련성은 꼭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회화는 중국회화의 지역적, 지리적 특징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북송대에는 고려가 북송의 조정과 관계가 돈독하여 당시 북송의 대표적 화원이었던 곽희의 화풍이 전래되게 되었다. 이렇게 전래된 곽희의 화풍은 조선초기 안견과 안견파화풍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비롯하여 회화가 인물, 산수, 영모, 화조, 사군자 등으로 나뉜 것도 중국회화에서의 구분이 한국회화의 분류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회화는 중국회화를 수용하여 단순히 모방만 한 것이 아니라 독창적 화풍을 이룩하고 청출어람의 경지를 창출하였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을 점이라 할 수 있으며 일본회화에도 기여하여 동아시아 회화 발전에 이바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서일 외, <천수국만다라수장>, 623년, 견본, 88.5x82.7cm, 일본 나라 주구지
고구려 출신 가서일은 백제계 인물로 추정되는 야마토노아야노 마켄, 아야노누노 카코리와 함께 쇼토쿠태자의 명복을 빌기위해 이 그림의 밑그림을 그렸다.
20세기 들어서는 일본회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일본과의 회화 관계에서 우리측의 작품은 일본에 많이 전해졌는데, 삼국시대에는 다른 기술자들과 함께 화가들을 일본에 보내 그곳의 회화수요에 응했고, 고려시대의 불교회화와 사경의 상당수가 전해지고 있어 임진왜란이나 식민통치기에 반출된 것으로 추측됨과 동시에 당시 우호적인 절차에 의해 전해졌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슈분, <죽재독서도>, 무로마치시대 (15세기), 지본담채, 136.7x33.7cm, 일본도쿄국립박물관
교코쿠지 선승화가 슈분은 1423년 일본 국왕사의 일원으로 와서 1424년 2월 서울의 한강을 떠났는데, 당시 조선초기 산수화풍을 익히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명국, <수노인도>, 1643년, 지본수묵, 88.2x31.2cm, 일본 야마토분카칸
김명국은 1626년과 1643년 두차례 방일하였는데 밀려드는 서화구청 요구에 잠을 자지못해 고통스러워 울려고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승화가 슈분에 의해 조선 초기 회화의 영향을 일본 무로마치 화단에 전해지는데 기여하였으며, 양국을 오간 통신사 사행원에 의해서도 회화가 전해졌다. 일본에 파견된 화원들의 화풍은 조선 중기 화풍과 조선 후기 화풍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사행시기에 제작된 회화는 국내에서는 유작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화원화가의 화풍을 살펴보는데도 많은 참고가 된다.
김유성, <수노인도>, 1764년, 견본수묵, 85.5x27츠, 일본 곤게츠켄 소장
일본에 전해진 한국의 화적은 일본화단에서 참고가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일본 남화의 대가였던 이케노 다이가가 1764년에 방일했던 화원 김유성에게 쓴 편지는 조선 화가와 회화에 대한 관심을 대변해 준다.
한국회화의 시기별 특징과 함께 회화교섭에 관한 설명은 한국회화가 회화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속에서 발전되고 독창성을 이루어 갔음을 확인할 수 있어 회화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킨다.
마지막으로는 저자가 미개척 분야였던 한국회화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그 과정에 대해 회고 하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어 반평생 열정을 다했던 한국회화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 한국회화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여 한국회화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음에도『한국회화의 전통』에 실려 있던 한국의 소상팔경도는 별도의 책으로 펴내기 위해 뺐다고 하니 이 원로 미술사학자의 계속되는 한국그림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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