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우는 옛그림
손태호 지음 | 아트북스 | 2012.2
그림을 보면 눈이 즐거워진다. 즐거워지면서 그 내용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며 동시에 누군가가 그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그림을 즐겨서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은 그림을 보면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세우는 옛 그림』은 조선의 옛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배운 저자가 글을 통해 전공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옛 그림에 대하여 쉽게 마음을 열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옛 그림을 보는 것은 나 사진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들어가는 말을 시작하고 있다. 그만큼 옛 그림이 저자의 마음을 돌이키는 데 큰 몫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절망으로 피워낸 꽃’, ‘그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삶’,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행복하기를’ 이라는 3부로 나누어진 이책은 작품을 통해 느낀 그리움, 자신감, 비움, 설렘, 쓸쓸함, 충직함 등의 마음을 소주제로 나누어 감상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옛 그림과 친해지기’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미술전문용어에 대한 풀이를 해줌으로써 이해를 돕고 있다.
공재 윤두서(恭齎 尹斗緖)의 작품은 두 주제에서 등장하는데 자신감과 엄격함이라는 제목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말 그림의 일인자였던 윤두서의 그림을 통해 어느 중년 선비의 자신감이라는 주제로 흥미 넘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두서 <유하백마도>, 비단에 담채, 34.3X44.3cm, 18세기 초, 해남 윤씨종가
윤두서 <수하준마도>, 종이에 수묵, 20.6X14.4cm, 국립중앙박물관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와 <수하준마도>는 윤두서의 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며 사실감 넘치는 표현력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유하백마도>를 볼 때마다 백마가 윤두서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백마를 통해 상서로움, 단정함, 당당함과 의연한 풍모를 통해 선비다운 윤두서 자신의 모습을 말하려던 것 아니었을까.
윤두서 <자화상>, 종이에 수묵담채, 38.52X20.3cm, 1713년경, 국보 제 230호, 전남 해남 윤씨종가
‘엄격함’이라는 주제에서는 윤두서의 <자화상>을 다루는데 자의식이 굳센 남성의 느낌과 동시에 느껴지는 형형한 눈빛 속에 담긴 연이은 슬픔 등을 통해 윤두서의 지나온 삶과 성품을 드러내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묻고 있다.
김정희 <수식득격>, 종이에 수묵, 27X22.9cm, 간송미술관
'이는 가늘게 치는 법식으로 했으니, 난 치는 데 가장 제격을 얻기 어려운 것이다. '라는 말처럼 난엽을 가늘게 그리기란 어려운 것이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수식득격(瘦式得格)>은 『난맹첩(蘭盟帖)』에 실려있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가늘게 난 잎을 치는 ‘수식난법’의 전형적인 예이다. 어쩌면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직접 붓을 들어 난을 쳐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어려움을 통하여 무거워지는 것보다 가벼워지는 것, 즉 비움의 철학을 알려주고 있다.
안견 <몽유도원도> (부분) , 비단에 담채, 38.7X106.5cm,1447년, 일본 덴리대학교 박물관
안견(安堅)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걸작, <몽유도원도(夢遊桃原圖)>는 일본의 덴리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어 대여가 까다롭다. 그런데 지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기념으로 <몽유도원도>를 10일 대여해 주었고, 그것을 보기 위해 반나절이 넘게 기다려서 겨우 10분 내외로 관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책에서는 작품의 주제인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와 자필 찬시 등의 언급을 통한 역사적인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주제로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정약용 <매화쌍조도>, 비단에 채색, 44.7X18.5cm, 1813년, 고려대학교 박물관
가지 위의 새 두 마리가 눈에 띄이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매화쌍조도(梅花雙鳥圖)>는 딸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귀양살이를 하는 중 혼사를 치른 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운 마음을 담아 딸 내외를 두 마리 꾀꼬리가 정답게 지저귀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어머니가 윤두서의 증손녀였다는 점과 윤두서가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할 정도로 윤씨 가문에 대한 예술적 품격에 큰 자부심이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천 원 신권 도안 / 정선「퇴우이선생진적첩」중 <계상정거도>, 종이에 수묵, 25.6X40.1,1746년, 개인소장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새 지폐 ‘1000원짜리’에 인쇄된 겸재 정선(謙齎 鄭敾)의<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은행에서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 뒷면에 새겨진 <계상정거도>에서 보여지는 곳을 ‘도산서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저자는 이곳이 ‘도산서원’과 조그마한 야산 하나를 사이에 둔 ‘계상서당’이라고 하였는데 <계상정거도> 정선이 71세에 그린 그림으로 58세의 퇴계선생이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산서원이 만들어지기 전의 계상서당이 표현 된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정선과 퇴계이황의 인연에 대한 내용 또한 흥미롭다.
작자미상 <감모여재도>, 종이에 채색, 116X90cm, 개인소장
‘사무침’이라는 주제에서는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를 다루어 제사문화와 함께 조상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마음, 부모님의 사후에 자식의 그리움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외에도 진중함, 취흥, 간절함, 통렬함 들의 다양한 마음을 다루어 인간의 감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며 그와 더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와 재미와 감동을 준다.
그림을 즐겨보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림이라고 정해진 것 뿐만이 아닌 TV나 영화 속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멋진 인물들, 출. 퇴근 길에 지나는 거리의 모습들, 그 거리에서 본 예쁜 어린 아이를 보면 우리의 눈이 즐거워지고, 마음이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한번 마음을 열고 그림에 접근해본다면 어느새 그것을 쉽게 즐겨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세우는 옛 그림』, 이 책은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데 한 몫하고 있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들 때 옛 그림을 통해 마음을 바로 잡고 싶은 사람에게 꼭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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