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
백인산 지음 | 다섯수레 | 2012.2
인터넷 속 수많은 질문들을 살펴보면 쉽게 설명해달라는 말을 꼬리표처럼 붙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뭐든지 쉽게 하는 것이 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필요한 순간은 있기 마련. 인생의 1순위 희망사항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항상 갈망하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쉽게 지식을 전달받는 일이다.
옛 그림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어렵다는 인식 때문인지 쉽게 다가서지 못하지만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만 해준다면 하룻밤사이 수많은 작품이 탄생하는 현대미술보다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미술, 옛 그림에 대한 쉽고 재밌는 책은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데 전공자들이 보기에도 약간은 심오하고 지루한 책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120페이지 남짓한 분량에서부터 손길이 가게끔 한다. 거기에 화훼영모와 사군자화를 중심으로 저술되어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으며, 화훼영모와 사군자의 시대별 변화양상을 저절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동식물이 그림의 소재로 꾸준히 그려졌음은 선사시대의 암각화나 청동기에 새겨진 동식물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영모는 화원선발 시험에서도 대나무, 산수에 이어 3등으로 배점되었다. 전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개 조선 시대에 그려진 것인데, 조선 초기에 안견, 안귀생에 의해 그려졌으나 전하는 작품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야 접할 수 있다.
공민왕, <이양도>, 비단에 옅은채색, 15.7,x22.0cm, 간송미술관
고려시대 그림이 드문 상황에서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하는 <이양도>는 정교하고 치밀한 묘사에서 공민왕의 작품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이런 양이 없다한들 볼모로 있는 동안 보고 그렸을 가능성과 함께 고려 문인들과 교유했던 원나라 화가 조맹부가 그린 <이양도>와의 연관성은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사임당, <수박과 들쥐>, 종이에 옅은 채색, 34.0x28.3cm, 국립중앙박물관
조속, <고매서작>, 종이에 먹, 100.0x55.5cm, 간송미술관
조속의 <고매서작>은 묵매와 영모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어몽룡의 영향이 느껴지는 매화는 봄의 전령사로, 몇 번의 붓질로 간략하고 생생하게 그려낸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길상적인 내용도 담고 있어 조선 중기 수묵사의화조화 가운데 독보적이다.
조선중기 작품으로는 신사임당이나 이암의 작품처럼 섬세하고 정교한 채색화와 수묵화풍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이징과 조속, 그리고 조속의 아들 조지운의 작품을 살펴보면 마치 사군자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성리학이 사회전반에 확산되면서 성리학의 가치와 미감이 그림에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화훼영모도 사군자화를 따라 고적함 정취와 담백한 풍격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유행하던 시기답게 사생성이나 생동감이 중시되었다. 김두량 변상벽에 의해 완성도가 높아지던 화훼영모화는 심사정에 이르러 새로운 전기를 맞는데, 주관적인 사의성과 시적 정취를 담아내고자 했던 심사정에 이어 김홍도에 의해 절정에 이른 화훼영모화는 사의와 사생을 넘나들며 완숙된 경지를 보여준다.
이후 조선 말기에 이르면 김정희와 제자들에 의해 문인적인 사군자화가 화단의 주류로 부상하며 회화성과 장식성이 강한 화훼영모화는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 장승업이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현란한 장식성이 강조된 작품들을 양산하며 퇴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우, <묵란>, 종이에 먹, 43.6x30.0cm, 삼성미술관 리움
이우의 <묵란>은 전하는 묵란화 가운에 제작시기가 가장 이른 작품으로 거침없이 뻗어나간 잎에서 난을 왜 그린다고 표현하지 않고 친다고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글 쓰던 붓으로 약간의 형상성을 가미하면 그림이 된 사군자화는 문인들에게 사랑받았는데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모습과 생태가 이상인 군자와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화원선발시험에서 1등으로 배점되었던 대나무는 사군자가 크게 선호되었음을 보여주며, 조선초기 세종, 강희안, 안견이 대나무, 매화, 난초를 그렸다는 기록이 전해져 사대부와 군왕, 화원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 인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정, <풍죽>, 비단에 먹, 127.5x71.5cm, 간송미술관
유덕장, <설죽>, 종이에 채색, 139.7x92.0cm, 간송미술관
어몽룡, <월매도>, 비단에 먹, 119.4x53.6cm,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매월만정>, 종이에 먹, 27.5x47.1cm, 간송미술관
매화 가지의 운동감을 중시하는 방식에서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매화 줄기를 사선으로 배치하여 개성을 더했다.
강세황, <난죽도>, 종이에 먹, 39.3x283.7cm,국립중앙박물관
성리학적 취향에 알맞은 사군자화는 조선 중기 이정, 어몽룡이 조선 사군자화의 기틀을 마련한 후 조선후기에 들어 이를 계승한 유덕장에 의해 명맥이 이어진다. 이후 심사정은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강세황은 이론과 실제를 완성시키고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한 화면에 구성하여 사군자화를 전개시켜 나갔다.
풍속화로만 잘 알려진 김홍도 또한 사군자화를 남겼는데, 당시 문화 절정기의 화려함이 반영되어 지조나 절개의 상징보다는 감흥을 실어낸 작품으로 탄생했다.
김정희, <불이선란>, 종이에 먹, 55.0x30.6cm, 개인소장
김수철, <석매도>, 종이에 옅은채색, 51.8x28.0cm, 개인소장
이하응, <동심여란>, 종이에 먹, 27.3x37.8cm, 간송미술관
민영익, 노근묵란, 종이에 옅은채색, 128.5x58.4cm, 삼성미술관 리움
사군자화는 조선 말기 김정희와 제자들에 의해 화단의 주류로 부상하였는데, 김정희는 그림과 글씨를 다르게 보지 않고, 그림 역시 글씨처럼 높은 정신성이 깃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조희룡이나 김수철의 그림처럼 개성적인 작품도 제작되었고, 이하응과 민영익의 격을 갖춘 묵란과 묵죽은 조선 사군화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지조와 절개의 의미를 담았던 사군자화는 옛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며 시대가 변해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화훼영모화는 동물과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쉽고도 깊은 옛 그림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넘겨야 할 책장이 없음을 깨닫게 될 무렵 “옛 그림은 학자들의 연구나 화가들의 작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사랑과 공감을 받아야 진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고, 그 의미와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저자의 후기를 보게 된다. 대중들도 관심 가질 만한 전시들은 옛 그림에 친숙해질 기회를 제공했고 많은 이들이 즐겼지만 아직도 옛 그림에 대한 인식은 어느 특정인들만 누리고 공부해야할 특권이 있다고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은 오랜만에 만나는 쉽고 재밌으면서 지식까지 전달하는 책이라 반갑기만 하다. 거기에 저자의 말처럼 옛 그림이 진정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끔 옛 그림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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