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의궤와 미술사-조선국왕 초상화의 제작과 모사
이성미 지음 | 소와당 | 2012.1
지난 해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의궤 덕에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가 남긴 의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의궤는 국가적 행사의 세세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형식의 기록이므로 어진의궤라 하면 어진을 그리는 행사를 치르고 남긴 기록을 의미한다.
<태조어진 太祖御眞>. 1872년(고종9), 비단에 채색, 220×151cm. 보물 제931호.
조선왕조에는 유교를 국시로 삼아 충과 효를 국가적으로 강조하면서 어진이 활발하게 제작됐고, 훼손된 어진을 보수하고 새로 제작하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됐다. 어진 제작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어진도사도감의궤, 영정모사도감의궤 등에 남아 있는데, 저자는 이 중 현재 남아 있는 어진 관련 의궤 11건 중 9 건의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미술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결과물을 단행본으로 펴 낸 것이다.(저자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의궤 연구와 반환에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을 받은 바 있으며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의 부인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어진의궤들을 숙종대, 영조대, 19세기, 갑오경장 이후 네 시기로 구분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고, 뒷 장에서는 어진의궤 제작에서 어떻게 유교적인 이념이 발현되었는지, 화사의 선정과정이나 급료 등 화원제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 마지막으로 오봉병과 어진을 묶어서 살펴보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국왕의 초상화를 지칭하는 ‘어진’이라는 말은 언뜻 중국에서 온 한자말 같지만, 실제로는 중국 한문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식 한자어로, 임금의 초상화를 가리킬 때 여러 가지 말을 사용하다가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어진제작을 위해 설치된 도감의 도제조(최종책임자) 이이명의 제안으로 결정되어 사용된 것이라 한다.
숙종대『영정모사도감의궤』(1688)는 태조어진의 모사 과정이 기록된 것으로, 전주 경기전에 있던 태조의 영정을 모시고 올라오는 일이 큰 일이었던 듯, 전주를 출발하여 서울로 올라오는 중간의 과정에서 필요했던 지방 관청 간 의논된 일들이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숙소, 복장에서 맞이하는 예식까지 자세히 표현돼 있다.
『영정모사도감의궤』 (1748) 반차도 3-4면 규장각.
신여(神與)라고 되어 있는 가마가 영정을 봉안하여 창덕궁 내에서 궁궐 정문(돈화문)까지 이봉하는
작은 가마이다.
7박8일만에 서울 도착. 책에서는 의궤에 표현된 중간 지점들을 구글 지도상에서 표시해 보여주는 세심함을 보여준다 전주에서 천안까지는 지금의 국도. 천안에서 서울까지는 경부고속도로와 비슷한 경로로 오다가 과천으로 들어와 거의 일직선으로 서울로 오고 있다.
『수선전도』(19c) 상에 표시한 1748년 숙종어진 이봉 행렬 경로.
심지어 영정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서 안치할 때는 세 겹으로 보자기에 싸서 흑장궤(黑長櫃)에 넣는데 싸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 도감에서 각종 원역들의 급여용으로 필요한 쌀, 광목, 기타 비용으로 필요한 돈에 관해 임금에게 품의한 기록, 급여 명세 등도 나와 있다.
필요 물건을 기록하는 것에, 영정 축 양쪽 끝을 장식하는 옥은 평안남도 성천에서 산출되는 옥을 썼고, 채색시 사용되는 사기접시도 고급의 정결한 것만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화사들의 복장도 정해져 있어 검은 모시, 검은 각대, 버선 등도 지급요청된 기록이 있다.
『영정모사도감의궤』 (1748) 반차도 7-8면.
가장 중요한 숙종의 초상화를 봉안한 가마인 신연(神輦)이 12인의 가마꾼에 의해 이동되고 있다.
『영정모사도감의궤』 (1748) 반차도.
중앙에 등장한 정연(正輦) 즉 국왕을 태운 가마.
숙종시대의 두 도감을 살펴보면 흑장궤의 제작, 병풍 제작, 초상화 제작 등을 위해 칠장, 소목장, 야장, 은장 등 38종의 각각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장인들을 고용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물품 목록을 통해 당시 초상화를 그리는 데 사용되었던 안료, 표구 시 사용되었던 비단의 종류, 축에 들어간 불건, 기법 등을 유추할 수 있다. 과연 어진을 그릴 때 화원들을 위해 주상이 직접 모델을 섰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뒷부분에 다루어주고 있다.
영조대『영정모사도감의궤』(1735)의 어람용본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었고, 분상용은 우리나라 장서각에 남아있었는데, 둘은 같은 내용임에도 형태와 정성에서 수준 차이가 있다. 어람용은 줄을 치는 것도 화원을 시켜서 한 것을 급여 명세에서 알 수 있다고.
『영정모사도감의궤(1735)』 어람용. 국립중앙박물관. 한불협약에 따라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영정모사도감의궤』(1735) 분상용. 장서각 소장본
1872년(고종) 『어진이모도감도청의궤』는 현재 현존하는 태조어진 모사 행사의 기록이다. 남별전에 있던 태조어진과 경기전 태조 어진을 새로 모사하였던 행사로, 현재 이 어진은 2006년 가을 새롭게 설립된 경복궁의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되었는데 그 때까지는 전주의 경기전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어진이 우리가 볼 수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의 어진이기도 하다. (함경도 영흥에 있던 태조어진은 현재 남아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어진이모도감도청의궤』(1872) 「도설(圖設)」 중 영정 상하축(上下軸), 원환(圓環) 등의 그림. 장서각.
『어진이모도감도청의궤』(1872) 「도설(圖設)」 중 일실, 삼실의 <흑장궤호갑 護匣>의 그림, 장서각.
1735 영조 때 세조 어진을 이모(移模, 옮겨 그리기)하는 행사가 있을 때는 문인화가들이 과연 어진을 모사하는 행사에 화사로 참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문인화가 자신들과 조정과의 이견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선비로서 영정모사에 참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주장을 굽히지 않아 벌을 받기도 했다는데, 선비로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한 유교적 이념이 임금을 향한 충보다 더 높게 여겨졌나도 싶다.
심사정이 신임사화와 연루되어 영조대에 처형당한 심익창의 자손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를 화사에서 제외해야 된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어진 화가는 실력이 출중하더라도 그 조상까지 들춰내어 티끌만큼이라도 왕실에 반하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 실격처리했음을 알 수 있다(사상검증?).
어진 화가들의 선택과정에서 군신간의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었던 숙종, 영조 두 시대와는 달리 19세기에는 어진화가들을 시재한 기록이 없으며 화가들에 관한 논의도 이전에 비해 활발하지 않았던 듯하다.
화사를 선정하는 과정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재주를 시험하는 테스트 시재(試才)에 의한 것이 기본인데, 영의정과 도감 최고 책임자 도제조, 그리고 상(上, 임금)의 의견이 종합되어 누가 어진을 그릴 것인가를 정하게 된다. 이 시험에는 지방에서도 화가들을 소집하여 참여토록 한 기록이 있다. 도감을 설치하고 도제조가 여남은 명을 추천하고... 다른 선비의 초상화 하나를 모사해 보는 시험을 거치도록 한다. 격의없는 토론 끝에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정하는 과정이 드러나게 된다. 채색을 잘하는 사람에게 시채조역(施彩助役, 색깔을 칠하는 조수)을 하도록 한 부분도 보인다.
급여와 관련되어서는 도제조 이하 모든 인원들에게 차등을 두어 지급되었다. 1748년 이후 경우 반차도 화원들은 어진화원들에 비해 쌀을 여섯 말 덜 받아 거의 반 밖에 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화원들이 공장(장인)들보다 훨씬 월등한 대우를 받았으며 내조역과 침선비의 보수가 가장 낮았다. 모군과 인거군의 보수와 화원의 보수를 비교해 보면 전자는 쌀은 4분의 1을 받았으나 포는 세 배 받았다고 한다. 결국 어진모사에서 급료체계에서는 화원이 월등히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진관련 의궤와 오봉병에 대한 부분에 한 장이 할애되어 있다. 오봉병이 어진과 관련하여 어떻게 제작되고 사용되었나를 살펴보고, 오봉병의 도상적 의미, 양식 변천을 알아본다.
한번 논문집으로 출간되었던 것 중 필자의 부분을 다시 고쳐 낸 것. 미술사적으로 살펴본 것이지만 사료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라 내용이 다소 어렵고 지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본문이 다음처럼 돼 있는 식이다. “결국 모든 신하들이 핍진(逼眞)하며 일호(一毫)의 미진처가 없다고 생각한 어진 군복소복 2본, 예진 군복소본 2본, 복건소본2본의 상초(上綃)를 명하였다.” 의궤 내의 내용 번역이 더 이상 풀어 쓰여지지 않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관심 있는 일반인이라면 한번 쯤 도전해 볼 만한 책이다. 생각보다 흥미진진하다.
공유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