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국보순례
유홍준 | 눌와 | 2011년 7월
블록버스터 전시나 비엔날레와 같은 대형 전시를 관람한다고 해서 그곳 유명 작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이 모두 나에게 와 닿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손에 꼽을 정도.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작품을 만날 때의 그 느낌은 참 반갑다. 미술작품이 보는 이를 사로 잡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단순히 색감이나 분위기가 취향에 맞을 수도 있고, 뛰어난 묘사력과 같은 기술적인 면에 감동했을 수도 있고, 수 백 년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거대함이나 작가의 숭고한 정신이 전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작가의 작품 속에서 나의 경험과 시간들을 만났을 때, 그 작품은 더 친근한 것이 되고 기억에 남는 것이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 문화재들에는 모두 사연이 있다. 저자가 경험했던 작품과의 개인적인 추억이 있고 작가가 작품을 만든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김명국, 죽음의 자화상,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연담(蓮潭) 김명국은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가 가장 연담다운 작품으로 꼽은 이 <죽음의 자화상>은 상복을 입은 채 어디론가 떠나는 자의 뒷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세밀한 얼굴 묘사도 근엄한 표정도 없지만 충분히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박수근, 나무와 여인, 1956 개인소장
박완서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소설 『나목裸木』은 한국전쟁 중 밥벌이로 PX에서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손수건에 초상화를 그려주던 박수근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나목은 50년 전 우리네 삶의 표정을 담고 있다. 아기를 업은 여인과 짐을 이고 가는 여인 사이에 놓인 나목은 겨울 바람에 소스리 떨지만 다가올 봄의 향기를 애닯도록 절실히 기다린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고려 10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신 법정 스님의 마지막 거처였던 강원도 산골의 오두막 집에는 소탈한 서안(書案)과 모서리의 달항아리, 벽위의 불두(佛頭) 사진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액자에 들어 있던 나말여초 불상은 어느 불상 도록에도 비중 있게 실려 있지 않았고 저자 또한 특별히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왜 법정 스님은 숱한 국보, 보물로 지정된 명작이 아닌 이 철불을 고르셨을까.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이 철불을 보면 저자가 스님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듯 이제 나 역시 이 철불을 보면 법정 스님을 떠올릴 것이다.
백자달항아리, 조선18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본래 나라(나라) 도다이지 관음원(관음원) 주지였던 가미쓰카사 가이운 스님이 소장하고 있던 이 항아리로 스님 사후에 대낮에 든 도둑이 이 항아리를 들고 도망가다가 경비원들이 뒤쫓아가자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달아났다고 한다. 작은 가루까지 쓸어 담아 오사카시립동양미술관에 기증된 항아리는 이후 손때 묻었던 자국까지 그대로 복원되었다. 이음자국만 미세하게 남아 있었으나 이것도 얼마든지 지울 수 있었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이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기로 했다. 이 항아리의 역사를 위해서 남겨두기로 한 것이다.
분청사기는 물을 끼얹은 듯 맑고 신비로운 자태를 자랑하고 백자는 하얀 순백의 미로 인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때문에 탁한 질감에 거칠어 보이는 분청사기는 청자, 백자의 관심 밖에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미시마다완, 조선 17세기 미국 프리어갤러리
저자가 20년 전 프리어갤러리에서 만났던 흑인 경비원과의 대화가 소개한다. 도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경비원은 갤러리에서 근무하며 도자기가 갖는 저마다의 표정을 알게 되었고, 처음엔 불성실하게 여겨졌던 분청사기에서 차츰 욕심 없는 친근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미감의 차이일 뿐 분청사기는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 소탈하고 넉넉한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성덕대왕신종, 통일신라 771년 국립경주박물관
'서양의 종은 귀에 들리고 한국의 종은 가슴 깊은 곳에 울린다.'
청자기린장식향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향 줄기가 어떻게 나오는가 알아보기 위해 소장처에서는 직접 향을 피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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