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묵의 건축
김개천 지음 |컬처그라퍼 | 2011년 7월
우리의 전통건축을 바라보노라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으며 초라하지 않다”는 말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휴가철을 맞이하여 어느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떠올리며 예쁜빛의 칵테일 한잔을 꿈꿀 시기에 이 책을 접고 나니 조용한 산사에서 한적하게 다도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병산서원 만대루 내부
질서는 있으나 구속은 없고 정면과 좌우로 멀리 있는 산을 긴 건물로 가까운듯 아늑하게 품는다.
병산서원 만대루 하부
통나무로 만들어진 계단 또한 예사롭지 않다.
책 표지에 실린 병산서원 만대루를 보노라면 사방으로 활짝 트인 마루에 걸터 앉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서원은 엄격한 질서의 체계로 지어졌다고 하나 다듬어 지지 않은 기둥을 보노라면 위용보다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여수 진남관
진남관은 기둥만으로 차 있는 무를 이룩한 유이다. 마치 우주처럼 외부없는 내부로 지었다.
'있으라'고 하여 신이 우주를 창조한 감동보다 '없으라'고 하여 스스로 있는 허공으로 진남관을 지은 인간의 감동이 더 크다.
이 책은 전통건축 24선을 선별하여 담고있는데, 자연과의 조화라는 미적인식에서 벗어나 조형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와 철학이 담겨져 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저자는 건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선학과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아름다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통건축에 대해 철학적 견해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그 깊고도 어려운 세계 속에서 잠시 헤매이다보면 관조스님이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어려운 시험을 마치고 난후의 여유시간처럼 눈과 마음에 안락한 안식처를 제공한다.
담양 면앙정
면앙정은 조선중기에 활동한 문신 송순의 정자로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는듯한 큰 지붕에서 소박함이 느껴진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 칸 지어내니
반 칸은 청풍이요 반 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
면양정 마루
일반적인 중국의 건축은 간단힌 기본 구조와 대칭적 구조로 다채로운 전체를 이루게 하고 다양한 변화 속에 통일된 풍모를 유지하게 하나 가장 훌륭한 것은 형태가 없듯 한국의 전통건축은 인조를 떠나 주변의 자연을 움직이고 변화하게 하여 인위적 장소의 자연화를 추구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음에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내뿜는 우리의 건축물은 우주 내에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다.
양동마을 심수정
심수정은 1560년 세워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917년 중건되었다.
ㄱ자로 꺾인 대청마루로 인해 전체가 투명한 구조로 연장된다.
심수정의 삼관헌은 세개의 전경을 가지며 창 밖의 무한으로 연결된다.
선물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포장이 화려한 선물, 두 번째로는 포장보다는 내용이 알찬 선물인데 우리의 전통건축을 보노라면 한눈에 보기에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 무한한 세계를 담고 있어 포장보다는 내용에 신경을 쓴 선물과 같다. 마치 러시아 인형인 마트료시카 처럼 속을 들여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봉정사 영산암 입구
막음과 열림이 무화(無化)되어 서로를 주고 받는다.
우리의 전통건축이 알면 알수록 새로운 깊이를 보여주듯 이 책 또한 펼칠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마치 경전을 읽는 것처럼 어려운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책이 어려운 만큼 우리의 건축 또한 쉽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송광사 우화각
사실 책에 나온 내용에 대해 1%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것만은 알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재독 삼독하는 동안 1%씩이라도 더 알아가고 종국에는 그 깊은 세계에 조금이나마 가까워 지지는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게된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읽고 싶고 갖고 싶은 책.
우리의 건축 또한 그렇다. 잘모르지만 눈에 담고 싶은 아름다움을 가진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