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장식-조선왕조의 이상과 위엄을 상징하다
허균 지음 | 돌베개 | 2011.6
요즘 창경궁 옆 율곡로를 지나다 보면 창경궁-종묘 연결 복원공사로 종묘쪽에는 공사용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이 임시 담장에 입혀져 있는 그림은 경복궁 자경전 화초담의 모습이다.
경복궁 자경전 화초담. 꽃·나무·문자 문양이 집중되어 있다.
창경궁과 관련된 공사니 창경궁에 있는 많은 장식물을 그려놓았어도 좋았을 텐데... 그것까지는 너무 큰 욕심일 듯. 어찌 되었든 복잡한 시내를 지나는 와중에 아름다운 전통 문양으로 눈을 즐겁게 할 수 있어서 좋다.
새 책 『궁궐장식-조선왕조의 이상과 위엄을 상징하다』는 서울에 있는 조선왕조의 궁궐에 있는 장식을 소개하고 이의 유교적 상징체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개중에는 이런 것이 이 궁궐 안에 있었나 싶은 새롭고 아름다운 장식도 있고, 많이 접해서 익숙하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심드렁하게 지나간 것도 있으며, 보고도 눈 뜬 장님처럼 그냥 지나갔던 것들도 있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각 방에서 나오는 연도를 모아 담장에 가지런히 붙여 세우고 벽돌을 쌓고 회로 마감한 위에 십장생을 새겼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에 나타난 길상, 벽사 문양. 박쥐, 학, 불가사리, 귀면.
경복궁 경회루 누하주(樓下柱)와 상층 기둥. 경복궁의 누 아래 기둥은 바깥쪽 스물네 개의 네모기둥과 안쪽 스물네 개의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내원외방內圓外方). 상층도 마찬가지. 하늘은 원이고 땅은 네모로 생각했던 우주 원리를 표현한 것이다. 방형의 틀 안에 원형의 섬을 배치한 연못도 모두 같은 원리이다. |
봉황이나 해치 등 각종 상서로운 동물과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옛 사람들의 상상력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것들을 수천년 이어와서 귀한 것을 만들어 내는 데에 허투루 하지 않고 하나하나 적용하려고 했던 조상들의 태도에 감탄하게 된다.
경복궁 근정전 정면 계단과 답도. 봉황이 새겨져 있는데, 요순의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봉황을 궁궐에 적용시켜, 지금이 그와 같은 시기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창경궁 명정전 천장의 봉황
일제강점기에 그려졌던 벽화는, 현재 남아 있는 궁궐들이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 화재 등으로 옛 모습을 잃었던 부분을 채우고 있다. 편전이나 정무 공간에는 교훈이 될 만한 고사인물화 등이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 순종 재위시 일제에 의해 창덕궁 희정당(편전) 등에는 교훈적인 그림 대신 근대화가 김규진, 이상범 등의 벽화가 그려졌다. 누구에 의해 주제와 작가가 정해졌는지 모르지만, 궁궐도 역사 속의 상처가 새겨지는 것에는 자유로울 수 없나 보다.
창덕궁 희정당 <금강산만물초승경도> 신령스러운 구름에 싸인 금강산의 경치가 파노라마 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김규진, 1920년, 비단에 채색, 195×880cm
그림이나 조각만이 장식은 아니다. 시구나 문장을 적어 기둥에 걸어 둔 주련(柱聯)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시문 내용을 알게 되면 그것이 그 공간 전체의 운치를 변화시킨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는 자족을 노래한 것,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임을 노래한 것, 평화로운 민가와 도성의 모습, 임금의 장수와 자손만대의 복을 기원한 것, 우주만물의 순리에 따라 조화롭게 살자고 노래한 것 등 다양한 내용이다.
창덕궁 후원 부용정 주련
창덕궁 후원 부용지의 부용정에는 기둥마다 흰 바탕에 푸른 글씨로 쓴 주련이 걸렸는데,
天叢艶色霞流彩 천 포기 고운 빛깔은 아름답게 흐르는 노을이요 ..... 露繁風善早凉時 초가을 서늘한 때 이슬 짙고 바람 좋도다 |
등의 내용이다. 시를 읽으며 앉아 있는 부용정이 신선이 노는 곳처럼 느껴졌을 법하다.
수많은 장식들, 상징, 이야기를 접하다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한번 궁궐을 찾아가서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싶을 때 책 맨 뒤에 있는 궁궐별 궁궐장식을 보면 된다. 작은 사진과 함께 본문 페이지가 실려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