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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서각에서 옛 기록을 만나다] -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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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에서 옛 기록을 만나다
장서각연구소 편 ㅣ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 ㅣ 2011년 5월

얼마 전(2011년 7월 5일) 장서각이 신축 개관했다. 왕실도서관이라 불리는 장서각은 말 그대로 조선왕가의 도서관이었다. 고종은 대한제국의 황실을 회복하고 황실도서관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규장각, 홍문관, 집옥재, 시강원 등에 있던 서적을 인수관으로 옮겨 대제도서관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한일강제병합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일제는 이왕직서무계도서실로 칭하였다. 이후 소장 수량이 늘어나자 1915년 창경궁 낙선재 동남쪽에 서고를 짓고 1918년 장서각이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그리고 1981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으로 옮겨 현재에 이르렀다.

장서각은 규장각과 함께 조선 국가왕실 문헌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민간에서 수집한 문헌 등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왕실의 내력과 친족을 밝히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 왕실보첩과  군영등록류(등록은 글자그대로 베껴서 기록한다는 뜻) 자료, 낙선재본 고전소설을 비롯하여 의궤 등이 소장돼있다.

                       
           선원록, 1681년(숙종7), 51책, 필사본, 61.7x41.3cm.
조선시대 종부시에서 작성한 왕식족보, 조선전기부터 작성되어 오던 『종친록』과『유부록』을 한데 묶고,
기재형식과 체제를 수정 보완하여『선원록』이라 이름하였다.

              
돈녕보첩 대왕편, 고종 연간(1864-1896), 8책, 필사본, 45x34.6cm.
조선시대 돈녕부에서 작성한 왕실족보.
왕실보첩 중 유일하게 왕과 왕비, 세자빈의 친족을 수록하였다.

          
선원선계록, 1906년(광무10), 1책, 필사본, 30.9x16.1cm.
선원선계록은 전주이씨 시조로부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 이르는 계통을 밝히고 있다.
이 보첩은 태조 이성계에 그치지 않고 왕위를 계숭한 역대 왕과 그 가족까지 모두 기록하였다.

왕실보첩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 되어 편찬된 보첩들이 연속적으로 전하고 있어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본영도형, 1799(정조23), 195.8x111.5cm
1799년에 제작된 장용영 내부 평면도이다.

군영이란 조선후기 중앙의 군사 조직인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총융청, 수어청등을 합쳐부르는 말이다. 군영등록은 군사업무를 기록한 자료로 장서각에 소장된 군영등록은 대략 60종 555책이다. 군영등록은 조선후기 궁궐 및 도성 수비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한 오군영 가운데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의 등록이 집중되어 있다. 또 장서각에는 정조가 만든 친위부대인 장용영 관련자료와 19세기 말에 창설된 진군영과 총어영에 관한 기록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다.또 다른 보물로는 민간에서 수집한 문헌들이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를 비롯한 민간의 기층문화를 연구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이다.  

                       
                                 낙셩비룡                         남정긔, 조선후기, 김만중지음, 3책, 필사본, 37.2x22.0cm.

조선왕실에서 읽은 소설을 낙선재본 고전소설이라 하는데 이는 낙선재에 소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낙선재본 고전소솔은 1966년 정병욱이 발굴하여 소개하였는데, 현재 총 84종 2000여책이 남아있다. 낙선재본 고전소설은 궁체로 깔끔하게 정서되어 있으며, 연작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대부분 작가를 알 수 없는데, 분량이 방대하다 보니 여러사람이 나누어 필사한것으로 보인다.

          
어제자성편(한문본/한글본) 1746년(영조22)                  어제경민음, 1762(영조38), 금속활자본(무신자),          
목판본, 32..0x20.3cm.                                34.0x21.6cm. 영조가 백성들에게 금주령을 준수할것을 당부한글
영조가 사도세자의 교육을 위해 편찬한 책.                  언문으로 적어 서민들도 볼 수 있게 하였다.

임금이 지은 글은 어제御製라고 하는데, 영조는 역대 왕중에 가장 많은 글을 남겼다. 영조어제첩은 5000여 건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영조어제해제』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장서각에는 조선왕실의 음식물화를 알 수 있는 의궤와 조선후기 왕실 서고에 수장돼 있던 회화류가 보관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료들은 화원화가의 역량과 기록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자경전진작정례의궤

 
기축년 진찬의궤
1829년(순조29) 음력 12월 12일 순조임금의 등극 30년 보령 40세를 축하하는 궁중연회의 기록이다.
기축년진찬에 차려진 음식은 127종에 이르며 음식위에 붉은 종이로 만든 지화를 꽂았다.


낙화암도, 월중도 제 6면, 19세기초, 지본채색, 29.0x33.5cm.
왕실사적도는 역대 선왕과 관련된 유적등을 그린 그림으로
어람용으로 제작하여 왕실에 진상되었다.

또 다른 장서각 보물로는 민간에서 수집한 문헌들을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를 비롯한 민간의 기층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장서각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은 연구된 자료와 앞으로의 연구방향를 제시한다. 한 권에 역사를 담은 이 책 또한 장서각의 자료들처럼 중요한 기록이라 여겨진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24.10.30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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