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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미술과 관련된 대부분의 책들은 각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을 모아 양식적 특징에 따라 편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 아무래도 흥미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많다. 어떻게 하면 알기 쉽게 전달하면서도 객관성과 균형 감각을 잃지 않을 것인가가 문제가 될 것인데, 이 저자들은 몇 가지 전략을 통해 이것을 해결한 듯하다.
이 책에서도 역시 첫 등장은 빗살무늬 토기로 대표되는 토기인데, 고조선 등 고대 역사와의 연대표와 대조하며 주요 유물이 제작되었던 시기를 한눈에 보여준다. 빗살무늬토기의 변천사도 도식화해서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당시의 토기 제작술도 일러스트로 설명하고 있다. 그밖에도 승탑 구조, 가람 배치도, 목조건축의 구성부재, 기둥의 종류, 공포 형식, 장식기법에 따른 계통 분류, 내부 도면, 불상의 수인, 양식별 변천과정 등 박물관의 패널 안내처럼 세심한 그래픽 자료들을 성의있게 배치함으로써 최대한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삼국시대가 해당되는 II장의 제목은 “불교미술의 시작”. 그렇지만 불상조각에 대한 설명들 뿐 아니라 고분벽화나 일본으로 건너간 화가들의 이야기, 공예품과 도자술의 발달 상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이해가 쉽도록 많은 도판으로 시대의 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도판의 배치나 상태가 매끄럽고 좋아서 HD급 화질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본문에서 서술하고 있는 이미지가 필요한 작품에 대하여서는 거의 모두 사진을 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미술사의 궤적을 모두 짚어나가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다 다룬다고 깊이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의 또하나의 미덕은 범위가 넓기 때문에 겉핥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별 카테고리 내에서 궁금해 할 만한 것들을 모두 짚어가되 너무 어렵지 않도록 하고, 중요한 유물은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코너 형식의 화보 중심 페이지가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석굴암 불상군의 경우 총 7페이지에 걸쳐서, 가운데 부분이 양쪽으로 펼쳐지도록 접지 형식으로 만들어 내부의 보살상들과 사천왕상 등의 배치까지 이미지로 모두 보여주고 있으며, 석굴암의 조화미와 본존불에 대한 논란 등도 흥미롭게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신라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로 배웠던 시기의 미술들은 이 책에서는 남북국시대로 서술하고, 고구려를 계승하여 벽화고분인 정효공주묘를 남겼음도 놓치지 않은 점도 주목된다. 20세기 초 근대미술을 비중있게 다룬 것도 특징이 될 수 있으며, “풍요로운 문인문화의 정착”, “제국과 식민 사이” 등 시대별 키워드를 전면에 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는 등, 나무 보다는 숲을 볼 수 있게 배려한 점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자면 한국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필수 아이템 같은 느낌이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풍부한 화보를 통해 흥미를 북돋워주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하나쯤 장만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슬쩍 들여다보고 싶어질 만 하다. 그림과 그 아래에 써 있는 캡션만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고 좋은 정보들이 정리되어 있어, 중학생에서 일반인까지 훌륭한 읽을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이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였으나, 객관적 서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다보니 문체나 서술방식이 기존의 한국미술사 책과 많이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정성이 전체적으로 읽기 편안하고 흥미로운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각 시대 장마다 맨 뒤에는 본문에서 *로 표시했던 어려운 용어들의 자세한 해설 페이지가 실려 있다. 마지막까지 훌륭한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