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손철주 지음 ㅣ 현암사 출판 ㅣ 2011년 5월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라는 책을 통해 독자들을 알게 하고 보게 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그림을 통해 옛 생각에 잠기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눠 그림을 소개하는 이 책에서 계절의 의미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림을 통해 일관적으로 전달되는 지혜와 지식을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양기훈, <밭갈이>,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39.4x27.3cm, 국립중앙박물관(p.63)
'그림에 뇌경(牢耕, 소 밭갈이)이라 적혀있다. 소가 갈아야 할 땅 속으로 제가 들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밭 가는 소는 이제 그림속에서만 존재한다.
<청화백자 잔받침>, 17세기, 높이2.2x입지름17.9cmx바닥지름8.8cm, 리움(p.55)
잔받침에 쓰인 글은 조선 중기 문인 이명한(李明漢)이 이조에 딸린 관청인 사옹원 관리에게 보낸 칠언절구 시이다.
'눈꽃보다 자기 술잔을 사랑한다 하고, 봄이오니 왠지 목이마르다'는 이글을 보고 어찌 안 만들 수 있을까..
[밉지않은 청탁의 달인]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한국미술책이라 하면 왠지 어려울 것 만 같고 난해할 것 같다는 느낌을 한 번에 불식시켜주는 이 책은 어느 곳에서든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지식을 받아들이라는 강요도 주입식 설명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작품에 대해 다소 간소한 분량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에 부담감이 없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주변잡기식 이야기만 펼쳐지는 것도 아니니 미술사에 잘 몰라 한국미술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는 독자들에게는 적격이라 할 수 있다.
오명현, <소나무에 기댄 노인>, 18세기, 종이에 담채, 20x27cm, 선문대박물관(p.27)
몸도 못가누는 양반이 느슨해진 속곳을 고쳐묶는다. 바로 앞 서의 상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저자는 말한다. 추처분하지 않고 정겹다고.. 지나는 이도 고개 돌려 못 본 척 해줄 것 같다고..
김후신, <취한양반> 18세기, 종이에 담채, 28.2x33.7cm, 간송미술관(p.175)
여기 또 한 명의 거나하게 취한 양반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취하면 흐트러지는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죽림칠현(竹林七賢)중 유영(劉怜)은 술 마시러 갈 때 삽을 든 하인을 대동했다고 한다.
이유는 취해 쓰러지면 그 자리에서 묻으라는 의미.
저자는 말한다. 술 마시러 갈 때 속풀이 음료 대신 삽을 챙기라고.
대부분 남녀노소 누구나 관심을 갖는 그림은 재미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그림 이퀄(=) 풍속화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이 책에도 시각적인것 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것만 같은 그림이 등장한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저자의 허를 찌르는 덧붙임말이 재미를 더한다.
이재관, <빨래하는 여인>, 19세기, 종이에 수묵 담채, 63x129cm, 개인소장(p.67)
춘추시대 월나라 아낙들의 빨래터인 완사계(浣沙溪)에서 절세가인 서시(西施)가 빨래를 한다.
서시의 별칭은 침어(沈魚)였다고 하는데, 물고기가 아름다움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는 뜻이다.
김두량, <숲속의 달>, 1744년, 종이에 담채, 49.2x81.9cm,국립중앙박물관(p.163)
"갑자 중추에 김두량이 그렸다(甲子仲秋金斗樑寫)" 라는 관서를 통해 267년 전 추석의 풍경임을 알 수 있다.
한후방, <자로부미>, 18세기, 종이에 채색, 29.8x38cm, 리움(p.257)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는 쌀이 생기면 백 리 먼길을 걸어 부모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를 여읜 뒤에 부귀를 얻었는데, '쌀을 지고 가 부모를 뵈려 해도 할 수 가 없다'라며 탄식했다.
'달리는 말을 문틈으로 보듯이 부모는 가시는 구나'라고 했던 자로의 고사를 그린 작품이다.
해박한 지식이 없어서, 또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서 모르는 그림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흔히 알고 있는 그림을, 유명한 그림을 자꾸만 보게 되어 그림의 선호도마저도 개성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되었었다. 그 동안 눈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을 준다.
중간 중간 “우두망찰” “겯고틀다” 등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친절한 풀이가 함께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주살나다” 라는 말을 더 쉽고 익숙한 “뻔질나다”로 써도 됐을텐데.. 라며 잠시 귀찮고 번거롭다 느끼지만 읽다보면 새로운 단어를 알아가는 것에서도 소소한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양기성, <밥상 높이>, 18세기, 종이에 채색, 29.8x38cm, 리움(p.137)
'거안제미(擧案齊眉)' 밥상을 눈썹과 나란히 한 여인은 맹광이다.
후한의 학자 양홍의 품격을 본 후 결혼한 맹광은 늘 양홍을 흠모하며 공경했다.
양홍을 부러워할 사람에게 저자는 말한다. 좀스럽게 구는 남편이 밥상차리라 소리치다가 얼굴에 국물 뒤집어 쓴다고.
공경은 해야 받을 수 있다고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견해도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결코 억지스럽지 않다. 옛 것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마음보다 자연스레 넘어가는 책장이 더욱 아쉽기만 하다. “아는만큼” 그리고 “보는만큼” 보인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이 책을 보면 그림이 저절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