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이태호 | 생각의 나무 | 2010년 5월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듯 시작되는 이 책은 54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야기의 중심은 우리 땅을 우리 방식으로 그린 진경산수이며, 그 가운데에는 정선이라는 대 화가가 존재한다.
이징, <화개현구장도>, 1643년, 견본수묵, 89.0x56.0cm, 보물 1046호, 국립중앙박물관
문헌기록과 이야기를 참고하여 정여창 선생의 옛 터를 그린 작품으로 상상의 실경도 전통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진경산수의 선례는 17세기 전반 문인들의 별장이나 은거지를 그린 산수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념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17세기 후반 현종~숙종연간에는 실경산수의 전통이 뿌리를 내렸고 겸재에 이르러 실경산수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완연히 다른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했다.
정선, <금강전도>,1740년대, 지본담채, 130.7x59.0cm, 리움.
관념적인 풍경에서 벗어나 우리 땅을 그린 정선의 진경화풍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들뿐 아니라 20세기 이상범이나 변관식, 이응노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진경(眞景)이란, 실재하는 경치를 일컫는 진경과 참된 경지의 진경. 후자에는 신선경이나 이상향이라는 선경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지본수묵, 79.2x138.2cm, 리움. <송석원 길에서 찍은 인왕산 전경> p.63.
겸재가 그린 진경작품은 현장을 실제로 보면 <인왕제색도>를 제외하고는 실경과 그리 비슷하지 않다. 이러한 점은 진경의 의미를 다시 생각게 하는데, 이는 “조선의 풍광을 그리면서도 선경(仙境)의 의미가 내포된 성리학적 이상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저자는 금강산을 탐승한 이후 겸재의 진경 작품이 왜 실경과 닮지 않았는가에 대해 해명하려 관심을 쏟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내 유럽의 풍경화 현장을 찾으며 ‘기억’에 의존해서 그렸기 때문이라고 설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윤겸, <진주담>, 1756년, 지본담채, 24.0x63.5cm, 국립중앙박물관. <내금강의 명소인 진주담 실경> p.335.
김윤겸의 그림은 실경에 접근해 있다.
실경현장을 정확히 서술하지 않고 기억에 의존하여 그린 화가는 정선의 화풍을 따른 화가로 호생관 최북, 손암 정황, 복헌 김응환, 도암 신학권등을 꼽았으며 정선 일파 가운데 진재 김윤겸, 이호 정충엽등은 실경사생에도 관심을 보인 화가로 보고 있다. 또 문인화가로는 능호관 이인상, 연객 허필, 단릉 이윤영, 학산 윤제홍, 기야 이방운 등이 현장 사생을 도외시한 화가에 속한다.
정선은 대상을 변형하는 효율적인 화면구성법으로 엄정한 수직구도와 수평구도를 선호했고, 전체를 조망할 때는 원형 구도법을 이용하였다.
(좌) 정선, <박연폭포>, 1750년대, 지본수묵, 119.5x52.0cm, 개인소장.
(중) 정선, <박생연도>, 174년대, 지본수묵담채, 90.8x35.3cm, 간송미술관.
(우) 정선, <박생연도>, 1750년대, 견본수묵, 소품, 개인소장.
<개성 근교 박연폭포 실경>
정선의<박연폭포>는 비록 실경과는 다르지만 뇌성벽력이 천지에 진동하는 것 같은 폭포의 물소리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는 물줄기의 기세를 실감케 해준다. 이러한점에서 실경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화폭에 실어내는 정선의 조형적 역량은 천부적이라 할 수 있다.
강세황, <박연도>《송도기행첩》, 1757년경, 지본 수묵담채, 32.8x54.0cm, 국립중앙박물관. p.295.
강세황의 작품은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본 대로 현장에서 직접 사생한 예로 이러한 사실적 사생방식은
제자격인 김홍도에게 전수되어 회화적인 완성을 보게된다.
정선의 작품은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으나, 심사정이나 김홍도의 실경작품을 현장과 비교해보면 그림과 비슷한 구도가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잡힌다.
김홍도, <명경대도>, 18세기후반, 견본수묵담채, 133.8x54.4cm, 개인소장. <명경대 실경> p.410.
실제 경치와 비교해 볼때 유연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경직성에서 탈피하였다.
김홍도의 진경화법은 눈에 비친 풍경을 정확히 그려냈는데, 다른 화가들에 비해 대상의 실제를 닮게 인식하는 진경의 의미에서 근대성에 접근해 있다. 특히 <소림명월도>처럼 평범한 일상의 풍경으로 까지 소재를 확대하였다.
김홍도, <소림명월도>, 1796년, 지본담채, 26.7x31.6cm, 호암미술관.
시대 변화로 보면 18세기 전반 영조 시절에는 실경을 과감히 변형한 정선이 화단을 주도 하였고 18세기 후반 정조 시절에는 현장을 충실히 사생한 김홍도가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영조 년간에는 정선시대로 전기 고전 형태를 지닌 엄격 양식이 정조 연간에는 김홍도 시대로 전반기 화풍을 완전히 소화하여 다양하고 발랄한 후기 고전 양식이 발달했으며 말기에는 전성기 양식이 후퇴하여 형식화된 성향이 지배한 것으로 평가했다.
변관식, <옥류천도>, 1963년, 지본담채, 116.0x150.1cm, 개인소장. <옥류동 실경> p.189.
조선시대 최고의 금강산 작가가 겸재 정선이라면 20세기에는 소정 변관식을 내세울 만하다. 변관식은 외금강의 옥류동을 즐겨 다뤘다.
현장을 사생하거나 사생한 초본을 토대로 실경을 닮게 그리는 경우 이 두 가지 유형은 20세기 금강산 그림에도 적용되었다.
이인문, <총석정도>, 1790~1800년, 지본담채, 21.2x33.8cm, 간송미술관. <총석정 실경> p.136.
정선식 금강산 그린은 얼마든지 재창조될 소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조선 후기 산수화와 실제 풍경을 비교하고 연구한 기록서인 이 책은 우리가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그림 속 실경을 비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또, 조선초기부터 20세기 금강산도 까지 금강산이 창조한 예술형식의 시대적 차이를 보여주는 등 분명 많은 지식을 내포하고 있다.
다만, 논문 형식의 글은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점과 미술사에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저자가 직접 그림 속 우리 땅을 찾아 발품을 판 노고를 집에서 편안히 책장을 넘기며 볼 수 있게 해 준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