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가지 테마로 읽는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 벽화로 꿈꾸다
이종수 | 하늘재 | 2011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훼손 문제로 간간이 이슈가 되는 고구려 고분벽화.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고분벽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수렵도나 씨름도 등 유명한 이미지는 넘쳐나지만, 일반인은 물론 연구자들조차 실물을 보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잘 알지 못하면서도 새로운 테마는 아닌,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덕흥리 전실 북벽과 서벽 | 무덤주인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덕흥리 벽화고분의 묘주 모습.
북벽의 묘주를 향해 서벽의 13태수들이 배례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주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했던 의도가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구려 고분벽화라는 뻔할 수 있는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풀어나가고 있다(저자가 학부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대서가 아닌 듯하다). 가벼운 말투로, 상상을 동원해서 이리로 저리로 독자를 이끌어나간다. 고구려 고분벽화라는 극히 제한된 사료로부터 학문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당연히 제한적이다. 이를 과감히 깨고 방점을 두는 주제 외에는 과감히 생략하면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보태고 말솜씨를 곁들여 문화강좌 한편을 흥미롭게 듣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도록 했다.
안악3호분 묘주부인상 | 벽화 속 여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한 여주인.
안악3호분의 서쪽 측실의 남쪽 벽면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 묘주는 같은 측실의 서벽에 그려져 있다.
저자가 고구려 고분벽화를 써나가는 틀로 잡은 여덟 가지 테마는 다음과 같다.
1. 그는 누구인가 - 묘주의 초상
2. 성을 쌓다, 성을 그리다 - 성곽도
3. 그들만의 아름다운 이야기 - 생활 속의 부부초상
4. 연꽃만으로 충분하다 - 연꽃 장식무덤
5. 여인은 색으로 이야기한다 - 벽화 속의 여인들
6. 산악을 달리다 - 수렵도
7. 사신(四神),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다 - 사신도의 흐름
8.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 강서대묘 사신도
각각의 테마들은 저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주제들로, 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렸던 사람, 그 무덤에 묻힌 사람의 인생,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런 저런 가능성을 점쳐보며 자신의 주관적인 감상을 더하고 있다. 이렇게 자유롭게 풀어가서 너무 산만해질까봐 저어해서인지 책에 등장하는 20기의 벽화고분에 대해서는 책 말미에 각 벽화고분의 개요를 정리하여 알아보기 쉽도록 안내하고 있다.
오회분4호묘 천장석의 황룡 | 화려함을 자랑하는 오회분4호묘의 천장에 그려진 황룡으로,
통구사신총, 강서대묘 등 사신도를 그린 벽화고분의 천장에는 이렇듯
천장에 황룡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방향에서 무덤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
현대의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또 사람들의 관심사 또한 다양해지면서 전문적인 각각의 세계와 일반 대중의 관심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해졌다. 미술, 역사 분야이든 정치든 과학이든 그 전문적인 분야의 언어를 해석, 번역하여 대중에게 안내하는 역할로서라면 이 책은 충분히 그 기능을 하고 있는 듯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 더 욕심을 내어 고구려 고분벽화가 어디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등의 전체적인 그림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라든가, 고구려 고분벽화 외의 다른 지역과 시대의 고분벽화에 대한 정보가 궁금한 이들에게 한 마디쯤 해주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여기 등장하지 못한 벽화고분 내의 흥미로운 많은 캐릭터들에 대한 얘기도 더 듣고 싶다.
수렵총 현실 동벽(모사도) | 청룡, 기마인물, 삼족오가 모두 보이는 독특한 구성의 벽면.
사족이겠지만, 이러한 이야기꾸러미를 만들기까지 많은 도판자료와 연구자료를 참조하고 분석하였을 텐데, 대중서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언급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보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