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과 박물관 그리고 나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박물관 회고록
지건길 지음 / 학연문화사 / 2011년 2월
태어날 때 발부터 나올 뻔해서 ‘꺼꾸리’라는 놀림을 당했던 아기는 한자로 쓰인 간판을 막힘없이 읽어대던 어린이로 자랐고, 초등학교 때는 6.25전쟁을 겪었다. 고3 예민했던 시절에는 출가를 결심하였으나 입산 사흘째를 넘길 무렵 스님의 간곡한 설득에 못 이겨 하산하고 만다. 만약 이때 하산하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이 소년은 바로 지건길 傳 국립중앙박물관장이기 때문이다.
춘천 중도 발굴 현장에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동문들과
사학과 지망을 꿈꾸던 청년은 울산 삼광리 고분군 발굴 기사를 보고 진로를 고고학으로 선택한다. 이때부터 고고학 인생이 시작 되는데, 모두들 구리 빛 피부에 구레나룻 수염을 길게 기르고 리빙스턴 헬멧에 랜드로버를 몰고 달리는 고고학자를 꿈꾸겠지만 졸업논문을 위해 부천 소사의 쓰레기터를 뒤지며 고고학의 세계를 경험했다.
이후 각 지방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하면서도 여러 고분 발굴 현장에 참여하였고,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서 괄목할 만한 곳인 무령왕릉과 천마총 발굴에도 참여한다.
무령왕릉 개봉 직전 위령제 (1971년 7월 8일) 무령왕릉 입구 막음벽돌 제거작업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학 사상 피장자의 신분이 확실하게 드러난 유일한 백제 왕릉으로, 발견당시 도굴되지 않은 상태였다. 밤까지 이어진 발굴조사는 갑자기 오는 비 때문에 힘든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밀폐되었던 공간의 냉기가 빠지며, 1500년만에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는 당시 왕과 왕비의 시신에 착장했던 장신구들과 패용품들, 그리고 부장품들을 삽으로 퍼담았던 것에 대한 우를 회고 하는데, 이는 당시 고고학이 처해있던 학문적 수준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천마총 발굴현장 내부(1973년 여름) 천마총 출토 금관
무령왕릉 발굴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반성과 각오를 의식하면서 시작된 천마총 조사는 대규모의 발굴사업이었다. 그러나 인원과 장비가 초라하기 짝이 없었는데, 얼마 뒤 컨베이어벨트라는 발굴 장비를 장만하여 우리나라 발굴사에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이때도 무령왕릉 발굴 때처럼 폭우가 쏟아졌는데, 저자는 하늘의 조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영국, 프랑스 합동 조사단에 의해 발굴중인 서쪽 브르타뉴의 Quelarn 돌멘(1980년)
천마총 발굴기간 당시 잠시 한국에 들렀던 프랑스 국립 고고학연구소 소장 골리에 박사의 주선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첫 번째 프랑스 유학이 이루어졌는데, 이후 두 번째 프랑스 유학에서 논문<서유럽 거석문화를 통해 본 동북아시아 거석문화의 형식, 편년, 기원문제>이 완성된다. 두 번째 유학당시 프랑스로 같이갔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내고 있는데, 고고학자와 한 집안의 가장 사이에서 느꼈을 고뇌를 느낄 수 있다.
관장 부임당시 뼈대를 갖춰가기 시작하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2000년 3월)
첫 번째 유학 후 중반의 젊은 나이에 부여박물관 관장으로 발령이 나 국립박물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이후 중앙청박물관과 광주박물관장, 경주박물관장을 거쳐 파리에서 문화원장으로 재직하게 된다. 살아 움직이는 문화를 느끼며 익숙해 갈 무렵, 개방형 임용제를 채택하여 공개 채용하는 국립중앙박물관장 자리에 선임되면서 제 7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삶이 시작된다. 당시 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 공사 중에 많은 문제에 봉착하지만 무탈한 재임기간을 보내게 된다. 박물관 재직당시 국보와 보물을 아낌없이 기증한 기증인들에 대한 회고와 아쉬운 이별을 맞았던 분들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
부여박물관 지하실에서의 안계리 유물 정리
저자는 발굴보고서는 발굴이 이루어진 해에 발간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발굴을 마친 뒤 만 십 년만에 완성된 안계리 발굴 보고서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주장은 고고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후학들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책 말미에는 고고학에 대한 정리와 백제 미술, 그리고 신라고분에 대한 정리가 있다. 또, 박물관의 역사에 대해서도 집필되어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회고록이지만 고고학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지건길 전 관장의 삶 속에 고고학이 묵직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평생 한 길만을 바라보고 걷다보면 그 애정이 자연스레 배어 나오게 되는것일까... 책 중간 중간 삽입된 발굴현장 사진 속 저자의 모습은 페이지를 넘길때 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발굴현장과 박물관에서 보낸 많은 시간이 이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책 제목이『나와 고고학 그리고 박물관』이 아닌 『고고학과 박물관 그리고 나』인지는 다 읽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