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 홀리다
-조선민화 현대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ㅣ 효형 ㅣ 2010년7월
우리는 가끔 외국인 보다 우리미술의 가치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예술가도 그렇고 미술품도 그렇고 외국에서 더 높은 가치평가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민화의 경우도 그러하다. 조선 미술에서 아웃사이더 평가를 받아왔던 민화는 일본에서 먼저 도록이 출간되는 등 외국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있으니 바로 『민화에 홀리다』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민화에 대해 다각도로 고찰하여 민화의 예술성과 실용성을 설명하였으며, 현대에 재해석된 민화작품을 볼 수 있다.
1996년 스페인국왕부부가 인사동을 방문하였을 당시
소피아왕비는<일월오악도>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기념으로 호랑이 그림을 가져갔다.
일반적으로 민화는 서민층의 회화라고 생각하는데, 민화의 시작은 왕실문화였다. 달과 해가 그려져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은 그 자체만으로도 왕의 존재를 표현했다. 또, 궁중모란도는 왕실의 가례뿐만 아니라 제사나 상제 등 길흉사에 쓰였는데. 이러한 민화는 양반사회를 거쳐 중인계급을 중심으로 서민에게 까지 퍼져나갔던 미술품이다.
서공임,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 수간분채와 니금, 380x139cm, 6곡병풍.
서공임, <궁중모란도>, 수간분채와 니금, 42x150cm, 10곡병풍.
1784년 정조는 자비대령화원 시험문제로 책가도冊架圖를 낙점하기도 하였는데, 후대에 그려진 책가도는 서책위주의 그림에서 장식위주의 그림으로 변모한다.
서공임, <책가도>, 수간분채와 니금, 180x490cm. 서공임, <책가도>, 수간분채와 니금, 42x70cm.
시간이 지나면서 민화는 문자 그대로 백성들의 그림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배경에는 민화 속에 등장하는 도상이 갖는 긍정적 의미는 모든 이의 관심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서공임, <결혼 축하드려요,행복하시길바랍니다>, 수간분채, 50x70cm/ 서공임, <연화도>, 수간분채, 43x120cm 대나무와 매화나무 위에 까치 한쌍이 그려진 죽매쌍화竹梅雙喜는 매화는 부부가 사이좋게 기쁨을 누린다는 의미이다. 원앙역시 부부의 화복을 상징하는데, 원앙과 연꽃이 결합된 원앙귀자鴛鴦貴子는 부부가 화목하게 자녀 여럿 두기를 축원한 그림이다.
서공임, <★은 이루어진다!>, 석화판에 분채, 25x25cm.
물고기 두 마리는 두 번의 과거에 연거푸 합격하길 기원하는 의미이다
서공임, <축, 합격!>/<수능, 본고사 만점, 이게꿈 은 아니겠지>/<성공예감>, 수간분채, 50x70cm
연씨를 쪼아먹는 까치와 갈대꽃을 그린 희득연과喜得連科 역시 과거급제를 뜻한다. 백로와 연꽃, 갈대꽃을 그린 일로연과一路連科와 두 마리 게와 갈대꽃이 들어간 이갑전려二甲傳臚도 같은 의미이다.
서공임, <아버지,어머니, 건강하게오래오래사세요>/<재화만발>/<득남을축하드립니다>, 수간분채, 50x70cm 국화, 호랑나비, 고양이, 돌이 그려진 수거모질壽居耄耋은 장수를 의미하며, 모란은 부귀영화를, 석류와 원추리가 조합된 의남다자宜男多子는 아들 낳기를 축원한다.
민화에는 다양한 문양이 그려져 복잡해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도상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사랑, 화목, 충절, 수양, 효도 등등.. 그것을 집약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문자도이다.
서공임, <예禮>, 수간분채, 50x70cm.
이처럼 민화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모든 이들의 과거급제, 부귀영화, 수복강녕, 화목, 다남 등의 바람은 공통되기 때문이다. 또, 민화는 어린 시절에 봤던 동화처럼 불가능한 것이 없다. 예를 들면 물고기를 잡아먹는 백로와 물고기는 천적이지만 민화에서는 이러한 기본 질서를 깨고 한 공간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양육강식의 원리도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림들은 상상력의 세계가 민화속에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작가미상, <만수지왕호도>, 종이에 채색, 서공임, <연화도>부분, 수간분채, 43x120cm.
40.5x119cm, 경기대박물관
한 동안 경시 받던 민화는 현대에 들어 그 관심이 증폭되었다.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가방에서도 우리 민화를 떠올릴수 있다. 원색의 화려한 조합으로 그려진 민화는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신선한 감각을 제공하기도 한다는것을 알 수 있다.
2000년, 크리스찬 디올에서 출시된 가방
우리는 민화를 경시했지만 민화는 한결같이 우리곁을 지켜왔다. 1988년 올림픽때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는 무섭고 사나운 동물이 아니라 민화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하고 귀여운 호랑이 였다. 또, 특급호텔에서 진행되는 기자회견장 배경에서도 민화병풍을 볼 수 있다. 너무나 친숙하고 편했기에 그 존재의 가치를 몰랐던것은 아닐까..
서공임, <연화도>부분, 수간분채.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
가장 인간다운 욕망을 투영한 그림, 보편적 미감을 간직하고 있는 그림, 현대에도 재해석될 수 있는 민화는 지금도 우리의 삶과 궤를 같이하고있다. 홀릴만한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