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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 책 속에서 찾아낸 한국미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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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젊은 인문학자 27인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정민·김동준 외 지음 ㅣ 태학사 출판 ㅣ 2011년2월

 

편견이란 속 좁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에도 있다. 미술사 연구에도 그 편견이 있다. 문헌에 대해 관심을 쏟으면 본류가 아니라고 간과한다. 조선시대 서화골동의 수집역사 같은 데를 매달리거나 문헌 자료를 파고들면 당장 ‘그림은 어쩌고’라는 소리가 뒤따른다.

전 심정주(傳 沈廷胄) 《누상위기도(樓上圍棋圖)》18세기,
30.6x26.4cm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의 부친 심정주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이며 위쪽의 글은 심사정의 손자뻘 되는 심익운(沈翼雲)이 지었다. 익운은 왕손을 폄훼했다는 죄로 서인으로 강등돼 처단되고 아들은 걸인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술사 연구자들도 알고 있다. 미술사 연구가 그림 자료와 그를 지탱해주는 문헌자료 두 바퀴로 굴러간다는 것을. 문헌에 대한 몰두가 편견 아닌 편견처럼 치부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그림을 능숙하게 읽어내고 곁들여 한문 문헌자료까지 능숙하게 다루기가 힘들기에 때문일 것이다.

정약용(丁若鏞) 《매조도(梅鳥圖)》1813년, 26.7x51cm 개인
2009년 정현 교수의 의해 새로 밝혀진, 다산이 유배지의 소실에게서 낳은 홍임이란 딸을 위해 그려준 매화 그림이다.

이 책은 주로 옛 문헌을 들추는 인문학자들이 자신들의 책읽기 과정에서 찾아낸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인문학의 정교한 문헌 읽기는 미술사 연구자들이 한수 접히는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삐딱하게 보면 인문학 연구자들의 미술사로의 영역 확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넓게 봐서 미술사 연구의 색다른 추임새라고 하면 그뿐이다. 그건 그렇고 인문학은 옛날로 말하면 문사철이요 요즘으로 말하면 역사, 철학, 문학이다. 대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중심돼 의외에 얘기가 구수하고 읽는 맛이 쫀득쫀득하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문헌과 해석』이란 전문지 1997년부터 학제간 관심사를 논하던 연구자들이 자신이 관심이 있는 그림을 하나씩 소개하는 식으로 꾸며져 있다. 그런데 이 인문학연구자들의 라인업이 화려하다. 한문학이나 사학자는 당연이고 그 외에 음악사, 연극사, 중국고전희곡, 국어사, 복식사, 한국경학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선조조 기영회도(宣祖朝 耆英會圖)》1585년, 59.2x40.3cm 서울대박물관

음악사 연구자는조선시대 기록화에 보이는 악사들 그림과 관련해 글을 썼다. 그리고 연극사 전문가는 민간 산대놀이의 원형인 궁중 산대(山臺)에 대해 쓰면서 중국 자료를 제시해 지금은 맥이 끊겨버린 궁중연희 장면을 상상케 한다.

《봉사도》제7폭, 1725년 51x40cm, 베이징 중앙민족대학교소장.
중국 사신이 조선을 다녀가며 그린 화첩중 하나로 아래 오른쪽에 두사람이 밀고 있는 거대한 산대(山臺)의 모습이 보인다.

이처럼 미술사 정면에서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재미있는 얘기들이 무궁하다. 그 중 성균관대학 안대회 교수는 명나라 마지막황제 숭정제(崇禎帝, 재위 1611~1644)가 만들어 썼던 거문고에 대한 기록을 몽땅 찾아냈다. 그에 따르면 실학파의 박제가(朴齊家, 호는 楚亭)가 연경에 갔을 때 손형(孫衡)이란 사람에게 거문고 하나를 받았는데 그게 바로 숭정 어제의 거문고였다. 청나라로 바뀐지 오래지만 ‘명나라 물건을 가지고 있기가 꺼림직하다’며 주었다고 한다.
나빙(羅聘)《박제가 초상화(朴齊家 肖像畵)》사진(1790년 그림) 연경에 갔을 때 중국화가 나빙이 그려준 것으로 원본은 폭격에 불타버리고 사진만 전한다.

초정은 이를 가져와 친구 성해응(成海應)에게 보였고 성은 이에 대해 「숭정금명(崇禎琴銘)」이란 글을 지었다. 그후 초정은 병자호란때 끌려가 죽은 삼학사중 한 사람인 윤집의 후손인 윤행임(尹行恁)에게 ‘마땅히 가질 만하다’고 이를 주었다.

구소환패금(九霄環佩琴) 당나라 124cm. 숭정금은 현재 전하지 않고 위는 중국 거문고를 소개하기 위한 사진이다.

윤행임은 당쟁에 휘말려 사약을 받아 죽었는데 거문고는 어떤 연유인지 추사 김정희의 손에 들어갔다. 그런데 추사가 두 번째 유배를 가면서 함경도 북청으로 가자 바로 그곳 감사가 윤행임의 아들 윤정현(尹定鉉 호는 梣溪)였다. 이에 윤은 추사에게 선친이 애지중지하던 숭정금의 존재를 물었고 후에 귀양에 풀려난 추사는 서울로 돌아와 거문고를 윤정현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김정희(金正喜) 《침계(梣溪)》122.7x42.8cm 간송미술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추사 손에 이 거문고가 있었을 때 추사는 자신의 당호를 숭정금실로 삼은 자료가 남아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추사의 《숭정금실(崇禎琴室)》다. 추사체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이 큰 편액글씨 뒤편에는 실로 구구절절한 사람들 얘기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김정희(金正喜)《숭정금실(崇禎琴室)》138.2x36.2cm 간송미술관

또 하나, 장서각의 윤진영 선임연구원은 그야말로 빛바랜 사진 한 장에서 잊혀진 역사를 줄줄이 캐내고 있다. 사진은 『민족의 사진첩 Ⅲ』속에 나오는「구한말의 가족사진」. 회갑연이란 특별 가족행사를 치루면서 아들, 손자, 며느리 다모여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아무 설명이 없는데 윤 연구원은 이 사진이 『한국신문사진사』속의「박씨 부인 수연일」사진에서 설명이 잘려 나간 것을 알아내고 박씨 부인의 남편 주인섭(朱寅燮)의 행적을 족보에서 캐기 시작했다.

왼쪽은 최석로 『민족의 사진첩 Ⅲ』의 사진이며 오른쪽은『한국신문사진사』속의「박씨부인 수연일」사진.

그랬더니 주인섭은 무과에 합격해 오늘날 군단장급인 오위장 벼슬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계속해서 회갑연 사진의 뒷배경이 된 병풍 두 틀이 「곽분양 행락도」와「십장생도」병풍이란 것을 확증하면서 주인 주씨가 퇴임 후에 단성사 부근인 광교통에서 책과 그림을 팔던 가게를 했던 사실도 찾아냈다. 나아가 병풍 중 하나인「십장생도」병풍은 그의 손을 떠나 1920년대에 행촌동에 있던 테일러 상회를 거쳐 미국 오레곤주 대학박물관으로 들어간 것까지 추정해 보였다.

《곽분양 행락도(郭汾陽 行樂圖)》병풍19세기, 414.8x130.5cm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

여기까지도 흥미진진한데 주인섭의 손자가 바로 일본에 유학한 초창기의 서양화가로 일컬어지는 주경(朱慶 1905~1979)이란 사실까지 밝혀냈다. 낡아빠진 사진 한 장을 단서로 과거의 어둠속에 파묻힌 사실에 접근하는 모습은 마치 한편의 잘 구성된 탐정 이야기라도 읽는 듯하다. 문헌학 전문가가 보여주는 특별한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십장생도(十長生圖)》병풍 1880년, 521.0x201.9cm 오레곤대학교 박물관

부제 ‘젊은 인문학자 27인의 종횡무진 문화읽기’는 좀 생각해 봐야 하는데 여기에는 첫째 그림만 정면으로 다룬 것이 아닌 글도 있다는 점, 둘째 인문학이 이제부터 그림을 하겠다는 공격적인 뜻은 아니라는 변명이 포함돼 있는 듯하다. 실제 익숙한 미술사 글과는 조금 뜻밖의 글도 포함돼 있어 낯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사철의 기본이 문장인 만큼 읽는 재미는 충실한 그림이야기집이란 점은 변함없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24.10.3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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