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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문학에 취하다] - 조선 시대의 그림 상식이란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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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희 지음 ㅣ 아트북스 ㅣ 2011년01월

 

이 그림을 보자. 조금 턱이진 언덕위에서 여울물이 급히 흘러내려 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언덕위로는 잔뜩 우거진 숲이 높은 산자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는 산자락은 구름처럼 울퉁불퉁한 바위 봉우리가 삐죽한 높은 산까지 이어진다.

傳안견《적벽부도(赤壁賦圖)》161.5x102.3cm 국립중앙박물관
오래된 그림이기도 하려니와 보관상의 문제도 있었던 듯 오른쪽 절벽 뒤쪽의 산기슭 부분에 심한 박락이 있다.


아래쪽을 보면 작은 배 하나가 떠 있다. 배안을 보면 노 젓는 사공에 시중드는 동자 그리고 주인과 손님인 듯한 인물 셋이 몸을 돌리고 내밀면서 바위 쪽에서 흘러내리는 폭포 구경에 한창이다.

《적벽부도》의 부분
상한 부분이 있지만 주인 한 사람에 손님 두사람 그리고 시중드는 동자와 배를 젓는 사공의 모습이 확연하다. 그리고 주인과 객 사이에는 작은 술상이 펼쳐져 있다.

이런 요소만으로는 그림의 내용을 상상하기 다소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달랐다. ‘턱’하고 이 그림을 펼쳐보면 금시 천하의 명문장이 입에서 흘러 나왔다. ‘동파 선생, 동파 선생’ 하는 북송 시대의 대학자이자 시인인 소식(蘇軾)이 지은 「적벽부(赤壁賦)」다.

‘임술년 가을 칠월 열엿새’로 시작해서 ‘강위의 맑은 바람(江上之淸風)과 산간의 밝은 달(山間之明月)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그림이 되며, 가져도 말리는 이 없고, 써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외다. 이는 조물주가 만든 무진장이니, 내는 그대와 함께 누릴 것이오’라고 하는 명문장이다.

김홍도 「적벽야범(赤壁夜泛」(《중국고사도 8곡병》의 한폭)
98.2x48.5cm 국립중앙박물관
적벽부 내용을 그린 그림은 수없이 반복돼 그려지면서 일반인 사이에는 교양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그림에는 적벽부 문장의 주요 요소가 그대로 담겨 있다. 머리 속의 글이 눈앞에 보이는 그림과 하나 하나 대조가 가능할 정도이다 .옛 사람을 그림을 본다고 하지 않고 읽는다고 하는 것은 이걸 말한다.

그림 한 점을 더 보자. 소나무 아래에 한가롭게 두 노인이 앉아 있는 그림이다. 머리 위로는 이리저리 구분 소나무 하나가 펼쳐져 있다. 또 두 노인이 앉은 약간의 둔덕 옆으로는 많은 물이 소리라도 들릴 듯이 흐르고 있다.

이인문 그림 김홍도 글씨《송하한담도》
109.3x57.4cm 180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나무 아래에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눈다는 제목의 그림인데 특이하게 동갑나기인 이인문과 김홍도가 그림과 글씨를 나눠 맡았다.

이 그림 역시 그림속 요소들만으론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위에 적힌 화제를 읽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화제는 화가 이인문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당나라 때의 시인 왕유의 오언율시「종남별업」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김홍도가 쓴 화제 부분. ‘중년에 불도를...’의 시 왼쪽에 ‘을축년 정월 도인과 단구가 서묵재에서 글씨를 그림을 그려 육일당 주인에게 주노라(乙丑元月 道人與丹邱 書畵于書墨齋中 贈六逸堂主人)’라고 씌여 있다. 저자에 의하면 육일당 주인은 화원 박유성으로 세사람이 모두 동갑 화원으로 매우 친했다고 한다.
‘중년에 불도를 좋아해/늙그막에 남산 기슭에 집을 지었네’로 시작하는 이 시는 뒤에 ‘우연히 산노인을 만나/얘기 나누느라 돌아갈 때를 잊었네(偶然値林? 談笑無還期)’라고 끝나는데 바로 앞에 유명한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라는 구절이 있다.
김홍도 「남산한담」 (《산수일품첩》중) 29.4x42cm 개인 소장
김홍도는 이전에도 이 시를 좋아했는 듯 작은 산수 인물도에도 이 시를 적어 놓고 있다.

어쨌든 이 시의 등장으로 인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그것을 동경하는 뜻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읽혀지는 것이다.

옛 그림은 이처럼 문학적 내용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그림과 문학의 대응 방식으로 여럿 있는데 이 책에서는 29점의 그림을 선정해 그림읽기의 본으로 그림 속에 담긴 문학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내용을 보면 위에서처럼 그림 전체가 문학 작품을 나타낸 것, 작품의 제작 내용이 훗날 문학적 향기를 풍기게 된 것(추사의《세한도》, 김홍도 등의《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병풍), 시의 한 구절을 따와 상상력의 날개를 펼친 것(최북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박제가《어락도》)등 다양하다.

박제가《어락도(魚樂圖)》27.0x33.5cm
장자는 벼슬길을 재촉하는 혜자에게 ‘물속 고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알겠냐’며 거절했는데 실학자 박제가 역시 ‘알면서 내게 묻는데, 나는 그것을 물가에서 알았네(知之而問我, 我知之濠上也)라는 장자의 한 귀절을 적어 놓고 속깊은 심사를 슬쩍 내비치고 있다.

책의 저자는 어떤 면에서 이 방면의 적임자라 할 수 있는데 그녀는 이화여대 국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술사에 뛰어들었다. 과거에 쓴 논문 중에도 진경산수의 탄생에 관해서 당시 중국의 여행붐과 기행문학의 등장과 연관시킨 글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옛 그림을 소개, 해설하는 책 가운데 그림의 배경이 된 문학만을 딱 잘라서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책은 많지 않다. 사군자나 화조화를 다루면서 중국에서 유래한 상징성을 가지고 해설한 책은 더러 있기는 하다. 술술 읽히는 그림책이란 점에서 쉽게 권하고 싶으며 또한 앞의 책과 짝해서 읽어도 좋을만한 책이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24.11.13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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